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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만드는 물건이 없다는 중국 광둥성에서 성인용 로봇 생산 업체를 취재했습니다.

원래는 성인용 인형을 만들던 곳인데, 올해부터 성인용 로봇을 생산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과 흡사한 실리콘 피부를 입힌 인형에 '대규모 언어 모델'을 장착한 겁니다.

소비자들은 즉각 반응했습니다. 대화가 가능한 로봇으로 진화한 뒤부터 판매량이 25%가량 급증했습니다. 구매자들은 주로 유럽과 미국에 집중돼 있는데, 한 달에 천 대 이상을 생산합니다. 심지어 미·중 관세전쟁의 영향도 거의 없다고 했습니다.

기자가 인터뷰한 여성형 로봇 '페이페이'는 최대 10가지로 세분화 된 성격 가운데 하나를 고를 수 있었습니다. 기자는 로봇과의 성적인 대화를 기사로 옮길 자신은 없어서, 가장 평범하고 무난하다는 성격으로 설정했습니다.

대화하는 내내 기자의 움직임을 따라 눈동자와 고개를 돌리고 어설프게나마 웃는 표정도 따라했는데, 일단 아래 영상을 끝까지 보시길 권합니다.


■현실로 걸어들어온 성인용 로봇…계속 음지에 남을까?

보셨다시피 상당히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대화를 이어갑니다. 다만 대답이 즉각 나오지는 않습니다. 답답합니다. 영상에는 굳이 넣지 않았지만 사람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는 때도 있었습니다.

인공지능이 장착된 머리는 분리해 봤더니 깜짝 놀랄 정도로 무거워 두 손으로도 오래 들고 있기 힘들었고, 움직일 때마다 나는 '서걱서걱' 기계음은 내내 거슬렸습니다.

손가락으로 팔을 꾹 눌렀다 떼면 실리콘이 즉각 튕겨 올라옵니다. 핏줄까지 섬세하게 그려내 얼핏 보면 진짜 사람과 구분하기 어려운 피부지만, 딴딴한 촉감과 탄성에서는 생명력이라고는 손톱만큼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표정이 변하는 걸 볼 때면 인간의 얼굴에 이렇게 많은 근육이 존재하고 있었던 건가 생각해 보게 됩니다. 누가 봐도 흠잡을 데 없는 예쁜 외모 역시 사실 너무나 이질적입니다.

'불쾌한 골짜기'가 사라지지 않았음에도 중국, 미국 등지에는 기자가 취재한 업체 외에도 인공지능을 장착한 성인용 로봇을 생산하고 있거나, 성인용 인형에서 로봇으로의 전환을 선언한 업체들이 여럿 있습니다. SF 영화 속 성인용 로봇이 현실 세계로 튀어나온 겁니다.

아무리 그래도 다수의 대중과는 괴리되어 있는, '음지의 세상' 얘기 아니냐고요? 그런데, 미래 세상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며 스포트라이트를 받고있는 일반 휴머노이드 업계에서는 성인용 로봇이 더 이상 불편한 음지의 존재로 취급받지 않습니다.

기능이 통합되며 경계가 흐려지는 변화가 조금씩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인용 로봇의 손과 기자의 손을 비교해 봤다. 핏줄까지 제법 자연스럽게 모사했지만, 머리에는 각종 설정을 세팅하기 위한 모니터가 달려있다.

■성인용 로봇은 '움직임'을, 휴머노이드는 '피부'를…흐려지는 경계

성인용 로봇 회사를 취재한 당일, 소음에 페이페이와의 인터뷰가 어려웠을 정도로 회사를 오가는 손님들이 많았습니다. 소비자냐고 물었더니 협력업체라는 말이 돌아왔습니다.

그간 성인용 인형을 만들면서 피부와 눈동자, 신체 표현 등에 걸쳐 사람과 가장 흡사한 결과물을 만드는 노하우를 쌓았는데, 일반 휴머노이드를 생산하는 업체에서 이런 기술적 노하우를 배우고 싶어한다는 겁니다.

팔다리 달린 고철 덩어리로 보이는 것 보다 사람과 흡사한 외양을 갖춘 휴머노이드 쪽이 더 소구력 있습니다. '불쾌한 골짜기'를 서서히 좁혀 나간다는 전제하에서는 말입니다. 휴머노이드 업계의 지향점과 대중의 기대 모두 '인공지능부터 움직임까지 모든 면에서 더 사람 같은 로봇'을 만드는데 쏠려있는만큼, 외양도 사람을 닮아가는 게 자연스러운 흐름입니다.

한눈에 보기에도 신기한 데다, 우리가 어릴 적부터 SF 영화 속 휴머노이드를 보며 무의식적으로 기대해 온 형태이기도 합니다.

성인용 로봇 업체 입장에서는 움직임이 지상과제입니다. 격투도 하고 뛰어다니고 춤도 출 만큼 앞서나가 있는 휴머노이드 업체의 기술적 진보를 따라잡는 것이 목표입니다. 이 업체도 더 다양한 움직임이 가능하도록 로봇에 기능을 추가시켜 나갈 계획이라고 했습니다.

한 번쯤 생각해 볼 부분은, 다른 목표로 로봇을 만들던 두 업계가 결국 최종적으로 만들 로봇은 서로 비슷할 수 있다는 겁니다.

사실 휴머노이드로 유명한 중국 유니트리 같은 업체나 성인용 로봇 업체나, 소비자가 직접 체감할 수 있는 인공지능 수준, 특히 소비자와의 정서적 거리를 좁히는 핵심인 대화 기능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오픈 AI나 메타 등의 인공지능을 장착했기 때문인데, 개인적으로는 시종일관 예의 바른 유니트리 G1보다 놀라울 정도로 당돌한 대답을 하는 페이페이와의 대화가 더 흥미롭게 느껴졌을 정도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중국 유니트리의 휴머노이드 G1과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성인용 로봇 페이페이. 하지만 장착된 인공지능의 대화 수준은 비슷하다.

■목표는 하나!… '반려 로봇'

두 업계의 목표도 서로 닮아가고 있습니다. 결국 추구하는 것은 사람을 위한 '반려 로봇'입니다.

중국의 또 다른 성인용 인형 업체는 지난해 홍콩 일간지에 '성인용 인형에 인공지능을 장착시킬 것'이라고 소개하며, 집안일을 하고 노인과 장애인을 돕는 로봇을 만드는 것도 앞으로 회사의 계획에 포함되어 있다고 밝혔습니다. 사람을 대신해 위험한 일을 해줄 로봇도 만들 거라고 했습니다. 어찌 보면 사업 영역 확장을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성인용 로봇 제조회사 대표도 KBS와의 인터뷰에서, 말벗을 필요로 하는 노인들의 외로움에 대해 언급하며 자사에서 판매하는 것과 같은 로봇이 평상시에 이들을 위한 반려로봇이 되어줄 수 있다고 했습니다. 말할 수 있고 표정을 지을 수 있는 로봇은 사람과의 거리를 더욱 좁힐 수 있고 감정적 교감이 가능하다고도 했습니다.

성인용이라는 단어만 지우고 본다면 일반 휴머노이드 업체 관계자를 인터뷰한 내용이라고 해도 크게 손색이 없고, 대중들이 로봇에 기대하는 부분과도 겹칩니다.

휴머노이드 발전에 속도가 붙는 지금, 기술의 빠른 발전 덕택에 영원히 섞이지 않을 것 같았던 두 업계의 경계가 점차 모호해지고 있는 셈입니다.

중국 베이징에 전시된 한 휴머노이드. 가정용이지만 성인용 로봇처럼 사람의 피부와 외형을 모사했다. 전시관에 방문한 많은 외신 매체 기자들이 옆에서 기념사진을 찍을 정도로 눈길을 끌었다.

■성인용 로봇, 사라질까 남을까?

휴머노이드를 소재로 사용한 다수의 SF 영화나 만화에는 로봇과 인간이 서로에게 부모와 자식, 이성간의 애정을 포함하는 다양한 층위의 사랑을 느끼는 상황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런 작품을 보면서 사람이 인공의 산물인 로봇과 진정으로 교감하며 애정을 느낄 수 있을지 스스로에게 한 번쯤 질문을 던져보셨을 겁니다.

사람과 다름없는 외형에 차이를 의식할 수 없을 정도로 자연스러운 움직임, 유쾌한 대화 능력까지 모두 갖춘 휴머노이드가 나온다면 단순한 애착을 넘어선 마음까지 나눌 수 있을까요? 언젠가 그런 세상이 오더라도 반려로봇과 성적인 관계를 맺는 것만은 여전히 금기시될까요?

사실 적지 않은 작품의 창작자들이 그런 금기가 사라져 굳이 성인용 로봇을 따로 구분해 제작할 필요가 없는 미래 사회를 이미 상상해 그려냈습니다.

현시점에서도 일부에서는 노인이나 몸이 불편한 사람들을 돌보는 로봇을 중심으로 결국 돌봄 기능과 성인용 로봇의 기능이 통합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조심스레 점쳐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성인용 로봇이라는 말은 점차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가정용 휴머노이드가 집집마다 보급될 걸로 기대되는 미래 10년 전후로는 어쩌면 이런 문제를 두고 사회적 논란이 촉발될지도 모릅니다.

물론, 성인용 로봇을 둘러싼 성적 대상화 논란 등 윤리적 문제와 대중의 날 선 눈초리 앞에서 대다수의 휴머노이드 업체들이 결국 인체 모사 대상에서 특정 부위만큼은 제외한 채 로봇을 만드는 길을 택할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2015년 소프트뱅크가 로봇 페퍼를 내놓으면서 이용자 약관에 로봇을 대상으로 한 성적인 행위를 금지한다고 명시한 전례도 있습니다.

그러면 성인용 로봇은 지금처럼 일반 가정용 휴머노이드와 구분되는 로봇으로 남아있게 될 겁니다


■"우리 친구부터 시작하자"…시작할 수 있을까?

성인용 로봇 페이페이는 서로가 어떤 관계가 되어야 가장 적절할지 묻는 기자에게 "우리 친구부터 시작하자"고 했습니다. 시작할 수 있을까요?

망설임 없이 선뜻 '그러자'고 대답할 수 있는 세상이 될지, '말도 안 되는 소리 말라'고 무시하는 세상이 될지, 미래를 정확히 예측할 수는 없습니다. SF 영화가 현실이 될 수도 있지만, 어쩌면 '불쾌한 골짜기'가 끝까지 사라지지 않으면서 로봇을 그냥 청소기나 식기세척기 수준으로만 대하는 것이 기술 진보의 최종 종착지가 될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어찌됐든, 페이페이 앞에서 선뜻 대답하기는 어려웠습니다.

성인용 로봇이 실재하게 된 세상은 이미 충격적입니다. 하지만 친구부터 시작하자는 말에 '그러자'고 답하고, 그리하여 만에 하나 성인용 로봇의 개념이 사라지게 된다면 그 세상은 더 충격적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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