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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주식 투자자라면, 너나없이 손사래 치는 공시가 있습니다. 유상증자입니다.

유상증자가 뭐길래 그럴까요.

잘만 하면 큰돈이 될 것 같은 사업이 눈에 띕니다. 어서 투자해야겠죠. 당장은 회사에 여윳돈이 없습니다.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이자가 부담스럽습니다. 투자를 더 받기로 합니다. 주식을 더 찍어서 팔기로 합니다.

이게 바로 유상증자입니다. 회사가 돈을 받고(유상) 주식을 더 찍어 파는(증자) 하는 행위입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특별히 나쁠 게 없습니다. 회사가 사업을 키우기 위해 주주에게 손을 더 벌리는 것뿐입니다. 정상적인 자금조달 수단의 하나입니다.

■ "유상증자는 호재"였던 시절

투자자들이 유상증자를 반겼던 때도 실제로 있습니다.

1995년 발표된 국내 논문의 한 대목입니다.

분석 결과에 의하면 유상증자의 공시 시점에서 정(+)의 주가 반응을 관찰할 수 있었으며, 이와 같은 정의 주가 반응은 우리나라에서만 존재하는 유상증자의 제도적인 특성이다.
-신용균(1995), 유상증자의 공시효과, 재무관리연구

논문은 1985년부터 1993년 사이 유상증자 발행을 연구했습니다. 분석해 봤더니, 유상증자 공시가 나면 주가가 올랐다고 합니다. 시장에서 호재로 받아들였다는 얘기입니다.

외국에선 악재로 보는 유상증자를 왜 한국 투자자들만 호재로 보는 걸까. 당시 논문도 이게 신기했던 모양입니다. 꼼꼼히 분석합니다.

두 가지 이유를 찾아냅니다. ①기존 주주에게 신주 살 기회를 우선 주고, ②신주를 구주보다 상당히 싸게 발행했기 때문입니다.

만 원짜리 주식을 8천 원에 싸게 판다고 하니, 당시 투자자들은 '할인 판매'에만 꽂혔던 겁니다.

하지만…

이후 30년 동안 국내 투자자들도 유상증자의 폐해를 깨달은 듯합니다.

올해 발표된 논문을 볼까요. 대부분의 유상증자는 공시 직후부터 악재로 받아들여진다고 진단합니다. 30년 전 외국 투자자들이 그랬던 것처럼요.

유상증자의 공시 직후 주주의 부의 가치는 가장 크게 하락한다.…유상증자로 인하여 주가
의 급락확률이 증가하게 되면서 주주의 부의 가치가 하락하게 되는 것이다.
-김종희(2025), 정보 비대칭의 환경에서 기업의 증자와 주주의 부의 가치 간의 관계에 대한 연구, 경영경제연구

■ 유상증자=주가 하락 공식(?)

지난해 국내 증시의 유상증자 규모는 26조여 원이었습니다. 새 주식이 26조 원어치 찍혀 나왔다는 겁니다.

5월 현재 코스피와 코스닥 합산 시가총액이 2,800조 원 정도임을 감안하면, 연간 1% 정도 꼴입니다.

대한항공과 한화솔루션 등 대기업들이 대규모 유상증자에 나섰던 2021년에는 그 규모만 50조 원에 육박했습니다.

출처: 예탁결제원

올해는 이달 중순까지 8조 원을 넘은 걸로 집계됩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삼성SDI가 대표적입니다. 두 곳 모두 조 단위에 나섭니다.

개인 투자자들은 반발했습니다. 삼성SDI 주주들은 회사 앞에서 트럭 시위를 벌였고,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주주 반발 등에 증자 규모를 축소했습니다. 금감원도 증권신고서를 보강하라고 정정 요구를 거듭했습니다.

이유는 주가 하락입니다.

새 주식이 발행되면 주식 수가 늘어납니다. 회사 가치는 그대로인데 주식 수가 늘어나면, 한 주의 가치는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대규모 유상증자가 주가를 끌어내리는 논리입니다.

코스닥 상장사인 차바이오텍은 지난해 말 2,500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발표합니다. 다음 거래일 주가는 35%가량 빠집니다.

이용주 차바이오텍 주주연대 대표 2년째 주가 부양을 촉구하는 1인 시위 중입니다. 이 대표는 "유상증자를 민감하게 주주들이 받아들여 항상 회사에다 전화하면서 '이번에 유상증자에 있는 거 아니냐' 물어보던 중 급작스럽게 발표됐다"면서, "자기들(대주주)의 주머니는 그냥 두고 주주들의 주머니만을 요구하는 그런 형태의 회사 경영"이라고 비판했습니다.


■ 투자는 더 받고, 배당은 더 안 하고

KBS는 코스피, 코스닥 상장사 2천여 곳 전체의 최근 5년 유상증자 이력을 전수 분석했습니다.

[관련기사] 유상증자·전환사채, 어쩌다 ‘공공의 적’이 됐나 (5월 20일, 뉴스9)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258903

5년 동안 4차례 이상 유상증자를 확정한 기업만 골라 봤습니다. 거의 1년에 1번씩 '상습' 유증을 한 기업들, 총 22곳이었습니다.

청호ICT, 주성엔지니어링, 국보 3곳이 유상증자 9차례로 가장 많았습니다.

알만한 유명 대기업도 있었습니다. CJ CGV와 제주항공이 4차례씩 했습니다.

유상증자를 자주 해도, 그 돈으로 경영을 잘해 영업이익을 키우고 배당이나 자사주 소각으로 주가를 올리면 주주들의 반발은 거세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상습 유증 기업 상당수는 5년 동안 한 번도 배당과 자사주 소각을 안 했습니다. 물론 사정은 다 있었습니다. "순이익이 부족해 배당 등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그럼에도 주주들 입장에선 달라지진 않습니다. 주주에게 '더' 투자 받아놓고, 주주에게 '더' 돌려준 건 하나도 없습니다.


■ 뛰는 시가총액, 기는 주가지수

유상증자를 남발하며 주식 수만 늘려놓고, 주주 환원은 안 해주는 일이 반복되다 보니 매우 한국적인 괴리가 나타납니다.

위 그래프를 볼까요. 코스피와 나스닥의 시가총액과 주가지수를 각각 겹쳐봤습니다.

2002년부터 코스피는 3배 증가했지만, 시가총액은 6배 늘었습니다. 시총이 느니 회사는 부자가 되는데, 주가는 그만 못 하니 주주는 가난해지는 역설입니다.

반면, 나스닥은 그런 일이 없습니다. 시가총액이 느는 만큼 거의 정확히 주가도 오릅니다.

이창민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는 "미국조차도 유상증자할 때 주주들이 굉장히 걱정하는 건 사실"이라면서, "주주 입장에서는 싫어하고 그러니까 미국에서는 기업들이 그걸 걱정해서 설명도 충실하게 하고 조심해서 하고 한다"고 밝혔습니다.

반면 한국 기업의 경우 "성실하게 설명을 안 하니까 주주들 입장에서는 의심이 더 증폭되는 경향이 있다"면서, " 단기적으로 재무구조 개선하려고 쓰는 게 아니고 진정한 기업의 성장을 위해서 쓴다 이런 것들을 설득하고 그게 설득이 되면 이제 소위 말해서 증자가 성공하는 건데 한국은 그렇지가 않다"고 지적했습니다.

한국 주식의 밸류업을 위해 할 일이 한둘이 아니지만, 유상증자 남발 근절이 최우선 과제 중 하나일 건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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