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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롬 파월 미국 Fed 의장. (사진=연합뉴스)
상호관세 유예 협상이 시작된 지 두 달이다. 도널드 트럼프 집권 2기 관세정책의 근간인 미란 보고서의 시나리오대로 관세에서 환율 문제로 넘어가는 분위기가 뚜렷하다. 빠르면 5월 안에 발표할 미국 재무부의 2025 상반기 환율 보고서 결과를 보면 이 움직임이 보다 명확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 제조업, 오히려 악순환?
미란 보고서의 핵심은 이렇다. 1971년 금 태환 정지 선언 이후 달러 가치가 고평가돼 제조업이 뿌리째 흔들리고 일자리를 빼앗겼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거시적으로는 무역적자와 재정적자가 동반 확대돼 국가 부도 위기까지 몰렸다고 강조했다. 국별로는 자국 통화가 크게 저평가된 중국, 한국, 대만 등 동아시아 국가의 책임이 크다는 것도 빼놓지 않았다.

문제는 달러 가치 고평가를 시정하더라도 과연 제조업 수출이 늘어날 것인가라는 점이다. 특정국 통화가 약세가 돼 수출이 늘어나기 위해서는 ‘마셜-러너(M-L) 조건((외화표시 수출수요 가격탄력성+자국통화표시 수입수요 가격탄력성)>1)’을 충족해야 한다. 한 마디로 미국의 수출입 구조가 환율과 같은 가격경쟁력에 민감해야 한다는 의미다.

제3국 시장에서 교역국과의 수출경합지수(ESI)를 구해보면 미국의 제조업은 기술, 품질, 디자인과 같은 환율 이외 비가격 경쟁력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달러 약세 유도에 성공하더라도 수출 증대 효과가 크지 않을 것으로 보는 것도 이 근거에서다. 1970년 이후 달러 가치 하락률과 수출 증가율 간 상관계수도 ‘0.2’로 낮게 나온다.

모든 정책은 의도했던 효과가 나타나지 않으면 부작용이 발생한다. 가장 우려되는 것이 수입 물가 상승에 따른 내수 부진이다. 이미 지난 1분기 성장률이 –0.3%로 역성장했다. 기저효과로 2분기에는 2% 이상이 가능해 보이지만 관세 영향이 본격화될 3분기 이후에는 성장률이 잠재 수준 밑으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자산시장 수축에 따른 역자산 효과도 우려된다. 관세 부과 이후 달러인덱스가 110에서 100 내외로 떨어지는 과정에서 글로벌 자금의 탈미 현상으로 주식, 채권, 부동산 가격이 모두 내렸다.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이 추정한 자료에 따르면 미국의 경우 역자산 계수는 그 어느 국가보다 높게 나온다.

물가에 미치는 영향은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 관세에다 달러 약세까지 겹치면 제조 비용과 생필품 가격이 동반 상승하는 악순환 고리가 형성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지난 3월 경제전망(SEP)에서 Fed는 통화정책의 잣대가 되는 가격소비지출(PCE) 물가상승률을 성장률 하향 조정폭보다 2배 이상 상향 조정했다.

5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이후 제롬 파월 Fed 의장이 스태그플레이션을 우려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일부 글로벌 투자은행은 올해 말까지 금리인하가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6월 점도표에서 중립 금리가 상향 조정되면 작년 9월 이후 추진해 왔던 피벗(pivot)도 종료될 것으로 예상된다.

Fed가 금리를 내리지 못한다면 트럼프 진영이 당면한 최대 현안인 부채 디톡스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라는 점이다. 미국 재무부 금고에 현금이 바닥이 난 상황에서 6월로 다가온 ‘X-date’(국가부도 예정일)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미란 보고서가 제시한 방안이다. 만기가 돌아오는 미국 국채를 보유한 국가를 대상으로 100년 무이자 국채로 떠넘기는 일이다.

‘함께 무너질 수 없다’는 중국과 일본은 미국 국채를 서둘러 팔면서 관세로 시작된 전쟁이 환율에 이어 국채까지 확대되는 양상이다. 과연 트럼프 진영은 이 상황까지 몰고 갈 것인가. 트럼프 대통령 취임 100일 전후에 열렸던 2025 밀켄 콘퍼런스에서 잘못된 미란 보고서로는 ‘마가(MAGA·미국을 더 위대하게)’를 달성할 수 없다는 교훈이 그 답이다.
◆ 이제 시스템 손봐야트럼프노믹스의 3대 근간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Fed 역사상 가장 공로가 컸던 토머스 라우바흐 전 국장을 기리기 위한 콘퍼런스가 열렸다. 올해는 5년마다 통화정책 프레임워크를 재점검하는 자리라 그 어느 때보다 관심을 끌었다. 이번 콘퍼런스에서 논의된 내용은 8월에 열릴 잭슨홀 미팅에서 핵심 의제로 다뤄질 예정이다.

앞으로 5년 동안 통화정책 프레임워크가 어떻게 바뀔 것인가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목표부터 살펴봐야 한다. 1913년 설립 이후 Fed는 물가안정을 제1선 목표로 통화정책을 운용해 왔다. 1930년대 대공황, 1980년대 초 2차 오일쇼크 이후 들이닥친 스태그플레이션 등으로 고비를 맞은 적이 있지만 금융위기 이전까지는 1선 목표를 잘 지켜왔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 이후 수확 체증의 법칙이 적용되는 네트워크 산업의 부상으로 통화정책의 프레임워크가 근본적으로 변하기 시작됐다. 생산할수록 물가가 떨어지는 고성장-저물가의 신경제 국면에서는 가만히 있어도 물가안정 목표가 달성된 것처럼 착시 현상이 발생한다. 통화정책 목표와 프레임워크 간 불일치는 2008년 이후 금융위기로 귀결됐다.

급한 불이었던 금융위기 극복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는 2012년에 착시 현상부터 제거하기 위해 통화정책 목표를 바꾸었다. 양대 책무(dual mandate)로 물가안정에 고용창출 목표를 추가했다. Fed 역사상 100년 만에 가장 큰 변화였다. 그 이후 코로나 사태가 발생하기 이전까지 통화정책을 되돌아보면 전자보다 후자에 더 주력해서 운용해왔다.

종전의 금융 시스템과 시장이 작동되지 않는 코로나 사태로 통화정책 목표와 프레임워크 간 불일치를 더 이상 끌고 갈 수 없는 상황까지 내몰았다. 인플레이션이 경기와 같은 총수요 요인이 아니라 공급망 붕괴와 같은 총공급 요인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때 도입됐던 것이 ‘유연한 평균물가목표제(FAIT·Flexible Average Inflation Targeting)’다.

코로나 사태가 끝난 지도 어느덧 2년이 지나간다. 무너졌던 금융 시스템(특히 통화정책 전달경로)과 시장도 어느 정도 복원됐다. 과도기 성격을 띠었던 FAIT를 폐지 혹은 어떻게 개편할 것인가를 놓고 자연스럽게 논의할 때가 됐다. 이번 콘퍼런스에서 이 문제가 핵심 의제로 다뤄졌던 것도 이 때문이다.

문제는 트럼프 정부의 관세정책으로 공급 인플레이션 여건이 지속되고 있는 점이다. 금융 시스템과 시장이 작동되는 여건에 FAIT를 지속해 나가면 정책금리와 시장금리 간 따로 노는 수수께끼(conodrumn) 현상이 발생한다. 작년 9월 이후 정책금리를 100bp(1bp=0.01%포인트) 내렸는데 10년물 국채금리는 100bp 올라가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통화정책 프레임워크를 변경하는데 전제돼야 할 것이 ‘수익률 곡선 통제(YCC·Yield Curve Control)를 도입할 것인가 여부다. 금융시장 효율성을 보장하는 정책금리와 시장금리 간 격차를 ±0.5% 포인트로 설정해 놓았을 경우 상단을 벗어나면 국채를 매입하고 하단 밑으로 떨어지면 국채를 매각해 국채금리를 밴드 폭으로 수렴시키는 방식이다.

양대 책무 중 고용창출 목표의 대리변수(proxy)인 실업률은 도입 당시 3.5%에서 4%로 상향 조정해 통화정책을 운용해 왔다. 물가 상승률과 실업률 간 역(逆)의 필립스 관계가 유지되는 여건에서는 실업률을 상향 조정하면 그 자체만으로도 물가안정 목표를 달성하는 데 주는 간접적인 효과가 크다.

남아 있는 것은 물가 목표치를 상향 조정하는 ‘인플레이션 타기팅’이다. 총수요 요인에 물가가 오르는 여건에 설정됐던 2%는 최근처럼 총공급 요인에 의해 물가가 오르는 여건에서는 지나치게 낮게 설정됐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여건도 됐다.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가 제안했던 4%에 공감대가 두껍게 형성됐기 때문이다.

설립 목표에 고용창출을 넣을 것인가를 놓고 고민해 왔던 한국은행도 이제는 통화정책 프레임워크를 재점검해야 할 때가 됐다. YCC 도입, 인플레이션 타기팅 상향 조정 등 이번 콘퍼런스에서 논의된 내용을 토대로 우리 입장을 정해야 한다.

한상춘 국제금융 대기자 겸 한국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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