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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혜영 장편소설 '홀'

편집자주

치열한 경쟁을 버텨내는 청년들에게 문학도 하나의 쉼표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수많은 작품 중 빛나는 하나를 골라내기란 어렵지요. 소설집 '여름에 우리가 먹는 것'으로 제55회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한 송지현 작가가 청년들의 '자연스러운 독서 자세 추구'를 지지하는 마음을 담아 <한국일보>를 통해 책을 추천합니다.
게티이미지뱅크


얼마 전 선배 작가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편혜영 작가의 장편이 할리우드에서 드라마화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편혜영 작가는 내가 대학에 입학해서야 알게 된 작가 중 한 명이다. 그러니까 교과서 속 소설들을 비로소 벗어나 만나게 된 동시대 한국 소설이었다는 것이다. 소설을 읽는 내내 텍스트만으로도 이렇게 진저리 칠 정도로 끔찍할 수 있구나, 문자가 불러오는 이미지가 이토록 강렬할 수 있구나, 하고 새삼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독서의 완성은 친구들과 소설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까지였다. 우리는 똑같은 글자를 읽고도 각자의 고유한 장면을 상상했다. 그런 시간들이 있었기에 나는 소설과 지금까지도 함께인 것이 아닐까. 선배들이 이야기한 작품은 '홀'로, 단편 '식물애호'를 장편으로 개고한 소설이라고 했다.

편혜영이라는 작가를 좋아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듯이, 나는 그의 소설 특유의 그로테스크한 이미지와 서스펜스적인 분위기를 좋아해왔다. '홀' 또한 주인공 오기가 낯선 공간인 병실을 인지하면서 시작한다. 오기는 전신 불구가 되어 눈을 깜빡이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상태다. 그리고 그는 자신에게 벌어진 일을 하나씩 기억해낸다. 바로, 아내와 함께 떠난 여행길에서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것. 사고 전, 오기는 아내와 정원이 딸린 타운하우스에 살고 있었다. 아내는 정원꾸미기에 늘 열심이었다. 그러나 이제 아내는 없다. 그에게 남은 가족은 피가 섞이지 않은 장모뿐. 오기는 속내를 알 수 없는 장모와 함께 황폐한 정원만이 남은 자신의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홀·편혜영 지음·문학과지성사 발행·209쪽·1만5,000원


서스펜스는 독자나 관객이 등장인물보다 더 많은 정보를 알고 있을 때 생기는 긴장감, 혹은 앞으로 일어날 사건에 대한 불확실성에서 오는 감정적 긴장을 말한다. 이 소설은 그 정통적인 서스펜스의 형식을 따른다. 정보의 비대칭으로 인한 긴장감은 소설을 읽는 내내 지속된다. 장모는 오기의 아내가 남긴 기록을 알고 있다. 그러나 오기는 장모가 무엇을 아는지 모른다. 그리고 독자는 이 모든 사실과 함께 한 가지를 더 알게 된다. 오기 역시 어떤 기억을 의도적으로 피하여 진술하고 있다는 것. 독자는 오기가 완전히 솔직하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 소설을 읽어 나간다. 오기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러나 그는 끝내 독자에게 솔직해지지 않는다. 자기 자신을 직면하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여기서 또 다른 질문이 생긴다. 오기는 솔직해지지 않은 것일까, 혹은 그러지 못한 것일까?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 늘 솔직할 수 있나? 자신이 알고 있는 '자기 자신'에 대한 정보가 늘 정확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정보의 비대칭성은 소설 속 장치이기 이전에, 삶의 본질에 가깝다. 타인에 대한 오해는 물론이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조차 우리는 언제나 제한된 정보만 가지고 살아가는 법이다.

결국 편혜영 작가는 바로 이 지점에서부터 소설을 시작하는 듯하다. 삶은 언제나 무언가를 숨기고 있고, 인간은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모른다. 그리고 나는 그런 소설들을 아주 좋아한다. 장르적 문법이 먼저가 아니라, 삶의 비의와 불확실성을 그려내어 자연스럽게 장르를 불러오는 방식의 소설들. 그리고 어떤 소설들은 더 멀리 간다. 이를테면 하나의 장르로 묶이기엔 우리가 규정한 장르의 개념이 너무 얄팍해서, 작가 그 자체가 장르가 되어버리는 것.

송지현 소설가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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