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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은 40대 하청 노동자 이정제 씨가 테트라포드 작업을 마치는 날이었습니다. 3년여간 울산 동구의 조선소 앞 바다에 테트라포드를 설치하는 일을 했는데, 보강 작업을 마무리하고 테트라포드와 바지선을 연결하는 줄을 풀면 작업은 끝이었습니다.

그날은 잠수 일을 하던 기존 작업자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정제 씨는 크레인을 쓰는 작업자, 바지선 선장과 함께 셋이 작업을 마쳤고, 직접 줄을 풀게 됐습니다. '잠수 슈트'만 입고 약 30m 거리를 헤엄쳐야 했던 정제 씨, 줄을 풀고 바지선으로 다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물에 들어간 작업자가 안 나온다"는 선장의 신고가 해경에 전해졌지만, 정제 씨를 구조했을 때 이미 의식이 없는 상태였습니다.

결국 정제 씨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빈소를 찾는 원·하청 관계자들의 말을 들어봐도 납득이 되지 않는다며 유가족은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엄마, 내는 바다 안 들어간다"…'물이 무섭다'던 정제 씨는 왜 바다로 갔나
"엄마, 나 절대 물에 안 들어가고, 텔레비전으로 보면 줄 잡아주고 하는 거 엄마 봤지? 그거다." 이러더라고. (그래서) 그거면 가서 하지. 물에 들어가면 나는 절대 너 안 보낸다

하청 노동자 이정제 씨 어머니

정제 씨의 원래 역할은 '잠수 보조'였습니다. 잠수사와 연결된 줄을 잡아주고, 필요하면 공기를 주입하는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혼자 바다에 들어갔다가 사고를 당한 겁니다.

유가족들은 정제 씨가 "물을 무서워하는 사람"이었다고 말합니다. 3년 전 사고 하청 기업 아진건설에 입사한 뒤 물에 들어가는 작업을 해 본 적도 없는 사람이었고, 잠수 관련 자격증도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해류가 거세 해경이 배를 띄우기도 어려웠던 15일 낮에 정제 씨는 바다에 들어갔습니다.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에는 '수상 또는 선박 건조 작업 종사자가 물에 빠질 우려가 있을 경우, 사업주는 작업 장소에 구명정 또는 구명 장구를 비치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구명보트는 물론 구명조끼조차 없었습니다. 스쿠버 잠수 작업이었다면 2인 1조 작업이 원칙이고, 공기를 주입하는 표면 공급식 잠수 작업인 경우에는 감시인을 배치해야 합니다.

정제 씨가 숨진 작업 현장에서는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왜 이런 상황에서 정제 씨가 바다에 들어가야 했는지, 유가족들은 묻고 있습니다.

■항상 웃던 살가운 동생, 엄마 안심시키던 아들…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통상적으로 해왔다." 이런 얘기를 (하청 업체 관계자가) 하고 갔는데, 결국 계속 (바다에 들어가는 작업을) 시켜왔다는 얘기밖에 안 되는 것 같아요."

하청 노동자 이정제 씨 누나

유가족들은 부검을 마치고 하청 기업 측 관계자를 만났습니다. "그날 작업이 있는 줄도 몰랐다"는 말을 듣고는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또, "슈트를 입고 가면 몸이 뜨기 때문에, 수심 1m가 안 되게 느껴지는 바다를 걸어서 들어가는 작업이었다"고 설명했다고 합니다. 마치 정제 씨가 역량이 부족해 사고가 난 것처럼 말하는 태도에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왜 바다에 들어가지도 않는 정제 몸에 맞는 슈트가 있느냐"고 묻자, "통상적으로 (바다에 들어가는 작업을) 해왔다"는 답변도 들었다고 합니다.

정제 씨의 어머니와 누나는 정제 씨를 "살가운 사람"으로 기억합니다. 어머니가 작업이 걱정돼 전화를 걸면 "엄마, 걱정하지 마라. 내가 알아서 할게"라며 안심시키는 사람이었고, 누나는 "아무리 나쁘게 말해도 항상 웃던 사람"이라고 정제 씨에 대해 말합니다.

숙식도 일터에서 함께 해결하다 보니 자주 볼 수 없던 정제 씨. 이번 작업이 끝나면 어머니의 집에 들르기로 했지만, 정제 씨는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해경과 고용노동부는 작업 당시 구명 장비가 제대로 구비되지 않은 점, 줄 해체 작업을 할 때 꼭 바다에 들어갔어야만 했는가 등을 위주로 원청 현대산업개발과 하청 아진건설 관계자를 상대로 조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자격증도 없고 물을 무서워하던 잠수 '보조자' 정제 씨를 왜 바다로 보내야 했는지가 조사의 중점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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