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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공급 과잉에 속 타는 화학
한국 석유화학 업계 부진 끝날 기미 안 보여
최대 수출국 중국 부상... 글로벌에서도 몸집↑
러시아산 원유로 현금 불린 중국, 투자까지
일본 구조조정 사례에 집중...사정 여의친 않아
"산업의 쌀 위해 인프라 투자·지원 계속해야"
금호석유화학의 여수고무2공장 야경. 금호석유화학 제공


한국 석유화학 업계를 향한 경고음이 점점 커지고
있다.
최대 수출처였던 중국이 범용 제품 생산량을 늘리면서 수입을 줄이고 가격 경쟁력을 무기로 글로벌 시장에서도 몸집을 키워가고
있다. 나아질 기미가 안 보이자 불황 뒤 호황이 올 거란 기대마저 희미해진다. 자금줄이 마르며 대규모 투자도 어려워 업계가 뼈를 깎는 수준의 자구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

석유화학 업계 부진, 언제 끝날지 모른다

현대건설이 3월 27일 울산 샤힌 프로젝트 현장에 아파트 50층 높이의 석유화학 설비를 성공적으로 설치했다. 이송된 프로필렌 분리타워를 크롤러 크레인으로 들어올리고 있다. 현대건설 제공


22일 국제 신용평가사 S&P 글로벌 레이팅스(S&P)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
2022년 말 시작된 하락세가 뚜렷한 회복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며 "비용 절감 등을 통해 기업의 수익성이 일시적으로 반등할 수는 있겠지만 여전히 미드 사이클 수준을 크게 밑돌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이번 하락 국면은 앞으로 2년 안에 벗어나기에는 너무 깊은 수준"이라는 우울한 전망을 내놨다.

불황과 호황을 반복하는 사이클 산업인 석유화학 업계에 언제 다시 호황이 찾아올지 알 수 없다는 분석
이 많다. 조용원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석유화학 제품 수요가 경제 성장률처럼 우상향하는데 공급 능력은 계단식으로 늘다 보니 두 곡선의 교차 상황에 따라 사이클이 생긴 것"이라며 "최근
(한국산) 수요가 줄면서 사이클이 무너지는 것
"이라고 설명했다. 박장현 한국화학산업협회 정책연구본부장은 "과거에는 사이클이 분명했고 조금만 버티면 수익이 발생하는 구조였는데 지금은 업계에서도 사이클이 무너졌다는 인식이 강하다"며 "1~3년 전까지만 해도 2026, 2027년쯤에는 업황 회복이 될 거란 전망이 있었는데 이제는 2030년은 가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그래픽=김대훈 기자


국내 석유화학 업계에 먹구름을 몰고온 건
국내 수출 물량의 절반 이상을 사가던(2005년 기준) 중국
이다. 국내 업계는
나프타분해설비(NCC)를 중심으로 '산업의 쌀'이라고 불리는 에틸렌 등 범용 제품을 팔아왔다
. 그러던
중국이 2020년 들어 NCC 설비를 늘리기 시작
하더니 2022년 세계 1위 에틸렌 생산 능력을 갖췄고 자급률이 100%를 넘어섰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최근에는 COTC(Crude Oil To Chemical) 공정1을 도입해 효율성을 끌어올리고 있으며 여기에 중동까지 자체 생산량을 늘리면서 경쟁은 더 치열해지고 있다.

조 연구위원은 "중국이 한국에서 합성수지 등 중간재를 수입해 플라스틱을 만들며 석유화학 산업을 발전시켜 왔다"며 "자급하는 품목과 비율이 늘다 보니 한국이 중국으로 수출하는 양도 줄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어 "(저렴한) 중국산이 아세안 등 대체 시장까지 침투하면서 상황이 더 좋지 않다"고 했다. 즉
지금 수출의 40%대를 차지하는 중국 수출은 앞으로 더 줄고, 다른 판로 개척도 어려울 거란 전망
이다. 여기에 국내 시장 역시 내수 악화, 건설 경기 침체 장기화 등으로 수요가 받쳐주지 않는다.

게티이미지뱅크


이럴 때일수록 가격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투자가 필요하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다. 적자가 시작된지 몇 해 지나 자금줄이 마른 데다 국내외 수요까지 불확실해서다. 반대로
중국·인도 등은 러시아산 원유로 확보한 현금 총알이 두둑
하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2022년 미국·유럽연합(EU) 등을 중심으로 러시아산 원유에 대한 가격 상한제(배럴당 60달러)가 실시 중인데 이들 국가는 이를 개의치 않고 공격적으로 사들여 가격 경쟁력에 실리까지 챙겼다.

최창윤 삼일회계법인 대기업 TS부문장은 "최근 2,3년간 두바이 기준 평균 유가가
70~80달러 선인데 (중국, 인도 등은) 이보다 싸게 구매하니 이익의 차이도 크게 벌어졌다
"며 "(러시아산도) 전쟁 종결 후 국제 가격으로 수렴하면 유가 측면의 어드밴티지도 없어지겠지만 (러시아산 원유로) 그간 막대한 돈을 번 기업들은 또 다른 투자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는 외국 자본인 에쓰오일만이 '샤힌 프로젝트'로 고도화 시설을 짓고
있다.

반등 가능성 있을까... "구조조정의 방정식 풀어야"

그래픽=김대훈 기자


최근 국내 석유화학 업계의 반등 가능성도 나온다. 그러나 안정효 삼일회계법인 경영연구소 연구원은 "나프타 가격이 떨어져 이익이 늘었다는 분석이 나오는데 이는 한국뿐만 아니라 글로벌 기업에도 마찬가지 상황이라 호재라고 보긴 어렵다"고 했고, 최 부문장도 "석유화학 기업들의 1분기(1~3월) 성적이 개선됐다고 하지만 이는 비용 절감에 속도를 낸 결과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일본으로 눈을 돌린다. 일본은 저렴한 한국산 석유화학 범용 제품이 밀려들어오면서 1970년대 정부가 나서 고강도 구조조정에 나섰고 석유화학 산업의 체질을 바꿨다. 배진영 성균관대 화학공학과 교수는 "
(한국은) 6개 정도인 NCC 설비를 2, 3개로 줄일 필요가
있다"며 "
중국이 치고 나가는 저렴한 제품들보다 고부가가치인 스페셜티 개발에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현실성은 높지 않다.
기업마다 처한 상황이 다르고 특정 기업끼리 결합이 독과점 행위로 간주될 우려도
있다. 그럼에도 정부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게 중론이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 기업들의 유동성, 재무 구조 등을 중심으로 채찍을 가해야 한다"며 "이때 기업 간 통합이나 엑시트(EXIT)가 이뤄지면 금융을 지원하는 식이면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SK케미칼의 코폴리에스터로 만들어진 화장품 용기. SK케미칼 제공


스페셜티 확보를 위한 연구개발(R&D) 지원도 필요
하다.
금호석유화학
은 NB라텍스·합성고무 소재,
SK케미칼
은 고기능성 플라스틱인 코폴리에스터,
한화솔루션
은 초고압케이블 소재 등을 앞세우고 있는 상황이지만 비중이 크지는 않다. 배터리 소재 개발로 전환한 기업들은 캐즘(Chasm·일시적 수요 정체)의 늪에 빠져 있다.

업계가 뿌리를 지킬 수 있게끔 도와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최 부문장은 "'
산업의 쌀' 농사를 계속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보조금 지급, 관세 장벽 등도 고려해 봐야
한다"며 "
시기를 놓쳐 인프라 경쟁력을 지켜내지 못하면 쌀이 아닌 (수입에 의존하는) 밀의 시대가 올지 모른다
"고 했다. 정부는
석유화학 업계 사업 재편 등 다양한 지원책이 담긴 경쟁력 높이기 방안을 6월 말 발표할 예정
이다.

1
COTC(Crude Oil To Chemical) 공정원유에서 직접 석유화학 제품을 생산하는 정유·석유화학 통합공정. 중간 과정이 없어 생산비용 절감이 뛰어나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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