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21일 타이베이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에서 열린 '글로벌 미디어 Q&A' 행사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중국에 대한 미국의 수출 통제 조치를 “실패한 정책”이라며 작심하고 비판했다. 그간 “중국과의 기술 격차는 크지 않다”라거나 “우리가 특정 시장을 떠나면 다른 기업(화웨이)이 그 자리를 대신할 것”이라는 등 불만을 완곡하게 드러냈지만, 이번엔 수위가 세졌다. 중국의 빠른 추격에 위기감을 느낀 엔비디아가 더는 여유 부리기 어려운 상황에 놓였음을 보여준다.
아시아 최대 정보기술(IT) 박람회 ‘컴퓨텍스 2025’ 참석차 대만에 머물고 있는 황 CEO는 21일 열린 글로벌 기자간담회에서 이 같은 입장을 밝혔다. 미국의 반도체 수출 규제가 미친 영향과 정책에 대한 평가를 묻는 질문에 그는 “전반적으로 볼 때 수출 통제는 실패(failure)했다”고 잘라 말했다. 또 그는 “수출 통제가 오히려 화웨이 등 중국 기술 기업들이 경쟁력 있는 AI 하드웨어를 개발하는 데 속도를 내게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자사의 인공지능(AI) 반도체 ‘H20’ 시리즈의 중국 수출길이 막히면서 수십억 달러 규모의 재고를 전액 손실 처리했다고도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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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한 수출 통제…中 기술력만 키워”
지난 4월 30일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열린 'Investing in America' 행사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이 지켜보는 가운데 엔비디아 CEO 젠슨 황(오른쪽)이 연설하고 있다. 연합뉴스
황 CEO는 특히 중국이 독자적 기술력을 빠르게 키우고 있는 점을 경계했다. 그는 “4년 전 바이든 정부 초기에 엔비디아의 중국 내 시장 점유율은 95%에 달했지만, 지금은 50%에 불과하다”며 “사양 낮은 제품만 팔 수 있었기 때문에 평균판매단가(ASP)도 떨어져 그만큼 수익도 많이 잃었다”고 말했다. 엔비디아는 바이든 정부 당시 수출 규제를 피하기 위해 중국 전용 저사양 칩(H20)을 판매해왔지만, 지난 4월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서며 이마저도 제한됐다. 엔비디아는 최근 공시를 통해 AI 칩 수출 제한 강화로, 올해 1분기에만 약 55억 달러(약 7조6000억 원)의 손실을 봤다고 밝혔다.
향후 H20보다 사양이 더 낮은 제품을 개발할 가능성은 일축했다. 황 CEO는 “현재의 H20이나 ‘호퍼’ 아키텍처(H100, H200 등의 기반 설계도 격)는 더는 추가로 성능을 낮출 방법이 없다”며 “그렇게 되면 시장에서 쓸모가 없어진다”고 말했다.
중국 시장의 향후 전략적 중요성도 거듭 강조했다. 황 CEO는 “이제 미국만이 AI 기술을 제공할 수 있다는 생각은 설득력을 잃었다”며 “수출을 막을 게 아니라 기술 확산을 통해 경쟁에서 앞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내년도 중국의 AI 시장 규모를 500억 달러(약 70조원)로 전망하며, 이 기회를 놓치는 건 전략적 실책이라고 말했다. 엔비디아는 지난해 중국 시장에서 전체 매출의 14%에 해당하는 170억 달러(23조6000억원)를 벌었다.
지난 19일 개막 하루 전 기조연설에 이어 간담회에서도 삼성전자는 언급되지 않았다. 이날 황 CEO는 ‘고급 패키징 기술을 가진 TSMC 외에 다른 팹(공장)을 이용할 가능성’을 묻는 질문이 나오자 “현재 다른 대안은 사실상 없다”며 선을 그었다. TSMC 외에 패키징 기술을 가지고 있는 삼성전자나 인텔과의 협력 가능성은 낮다는 의미다. 삼성전자는 패키징 역량을 키우고 있으나, 업계 1위인 TSMC와의 점유율 격차는 더 커지고 있다. 지난해 4분기 기준 삼성의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은 8.1%로, 전 분기(9.1%)보다 하락했다. 같은 기간 TSMC는 67%를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