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경호처 무장 요원 노출 경호
묵념 때 '죽은 군인을 위한 노래' 틀고
유족들 좌석 식장 뒷전으로 밀려
묵념 때 '죽은 군인을 위한 노래' 틀고
유족들 좌석 식장 뒷전으로 밀려
5·18민주화운동 45주기인 18일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정부 기념식 도중 만일의 상황을 대비한 저격수가 배치돼 있다. 뉴시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습니까!"
그날의 상처가 거짓말처럼 되살아났다. 45년의 세월이 흘러 다 아문 줄 알았지만, 18일 5·18민주화운동 유족과 광주 시민들의 가슴속 부스럼엔 진물이 흘렀다. 이날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거행된 5·18 45주년 기념식이 지난해 12·3 내란의 밤을 소환한 터였다.
이날 유족과 시민 등 2,500여 명이 참석한 기념식장에선 1980년 5월 이후 가장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예년보다 짧은 38분짜리 기념식 내내 대통령경호처 내 대응공격팀(Counter-Assault Team·CAT) 무장 요원들이 눈에 띄는 위력 경호에 나섰기 때문이다. 이주호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을 경호하는 이들은 복면을 쓴 채 제1묘역 언덕 좌·우 측에 3명씩 배치돼 기념식장을 줄곧 주시했다. 기념식장 뒤쪽에도 2명이 경호를 섰다. 5·18 기념일에, 그것도 기념식장에서 보란 듯이 완전 무장한 경호원들이 모습을 드러낸 건 처음이다. 이들은 1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해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체포 영장 집행을 시도할 당시 대통령 관저를 순찰하던 모습이 언론에 포착돼 주목을 받았다. 이들의 등장에 기념식장과 5·18묘지는 한때 술렁였다. 한 시민은 "여기가 어디라고 총을 들고 폼을 잡고 지X이냐"고 목청을 높였다.
안창호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이 18일 광주광역시 북구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열린 5·18민주화운동 45주년 기념식에 참석하기 위해 기념식장에 도착한 뒤 시민 단체의 항의에 발길을 돌리고 있다. 연합뉴스
앞서 오전 9시 36분쯤엔 "내란 공범"이란 비판을 받고 있는 안창호 국가인권위원장이 기념식에 참석하려다가 "내란 부역자는 기념식에 참석할 수 없다"는 시민들의 격렬한 항의를 받고 기념식장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쫓겨나기도 했다.
유족의 감정선을 건드린 건 이뿐만이 아니었다. 기념식 식순 중 '묵념' 땐 기념식장에 '죽은 군인을 위한 노래'가 흘러나왔다. 5·18기념재단은 "정부는 기념식을 준비할 때, 이 사건이 왜 발생했는지, 가해자가 누구이고 피해자가 누구인지를 고려했어야 한다"며 "5·18 가해자인 군인을 위한 노래를 틀고, 무장 요원이 곳곳에서 무기를 들고 서 있는 기념식을 도대체 누가, 무엇 때문에 준비한 것이냐"고 비판했다.
이주호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18일 광주 북구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제45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교육부 제공
정부의 홀대 논란도 불거졌다. 이 권한대행은 기념사에서 "오월의 광주가 보여줬던 연대와 통합의 정신은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한 가르침"이라고 5·18의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나 유족들 사이에선 "겉치레 말"이란 평가가 나왔다. 양재혁 5·18유족회장은 "이 권한대행이 5·18 헌법 전문 수록에 대한 언급도 하지 않아 진정성을 엿볼 수 없었다"며 "3분짜리 짧은 기념사 낭독에 식순에선 헌화도 빠진 데다 통상 맨 앞에 있던 유족 좌석도 뒷전(네번 째 줄)으로 밀려나 유감"이라고 말했다. 기념식이 끝난 뒤 식장을 빠져나가던 한 유족은 "한마디로 주객이 바뀌었어, 주객이!"라고 불만을 터뜨렸다.
예년과 사뭇 다른 추모 분위기에 대한 아쉬움도 이어졌다. 기념식이 끝난 뒤 참배 광장에서 만난 류진석(67)씨는 "올해는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 참배 행렬이 이어지면서 대선 열기가 추모 분위기를 압도한 탓인지 일반 참배객이 확 줄었다"며 "여야 정치인들이 5월 영령들 넋을 위로하기보다 표를 구걸하러 온 것 같아 씁쓸하다"고 쓴소리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