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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3대' 심현자·원주현·기중현씨가 본 '요즘 학교'>
좋은 선생님 보며 교사 꿈 이뤘지만 교권 추락 절감
"생기부 쓸 때마다 머뭇…자율성 침해에 자괴감"
"아이들, 소수점 단위 내신 경쟁에 극심한 불안"
"공교육 역할 믿어" 건강한 시민 키우는 건 학교 몫
원주현(맨 오른쪽)·기중현(맨 왼쪽) 교사가 지난 12일 인천 서구 가림고등학교 앞에서 스승인 심현자 교사에게 스승의 날 꽃다발을 건네준 뒤 웃고 있다. 심 교사는 2000년 인천여고에서 고3이던 원 교사에게 세계사를 가르쳤다. 또, 2010년대 중반 가림고에서 기 교사의 담임이었다. 전국중등교사노조 위원장이기도 한 원 교사는 "중현이처럼 좋은 교사를 꿈꾸던 제자가 학교 현장에서 맞닥뜨리게 될 문제를 해결했으면 하는 마음에 단체 활동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인천=유대근 기자


"중현이는 그때도 선생님 같은 학생이었는데···, 잘 적응하고 있어?"

지난 12일 인천 서구 가림고등학교의 늦봄 교정에서 두 교사가 젊은 후배를 바라보며 말했다. 눈빛과 표정엔 애틋함과 대견함이 가득했다. 2010년대 중반, 세 사람은 이 학교에서 함께 지냈다. 중현이는 고등학생이었고 심현자(55·현 인천 석정여고 교사)씨는 담임, 원주현(43·현 인천여고 교사)씨는 국어 교사였다. 초등학교 선생님이 꿈이었던 중현이는 "나중에 판서를 잘하고 싶다"며 연습을 통해 글씨체까지 바꾼 독종이었다.

모범생 중현이는 어느새 교대를 졸업해 올해 인천 별빛초에 처음 부임했다. 어엿한 3학년 담임 기중현 선생님이 된 것이다. 사실 원 교사도 고3 때 인천여고에서 심 교사에게 역사 과목을 배웠으니 심 교사가 두 명의 선생님을 키워낸 셈이다.
이제는 사제지간이 아닌 동료 교사가 된 이들은 지난 스승의 날(5월 15일)을 앞두고 오랜만에 모였다. 세대가 다른 세 교사에게 요즘 선생님들의 삶에 대해 물었다.

"나도 선생님처럼 되고 싶어" 택한 교직, 현실은···



세 사람이 교사가 돼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자신을 가르쳐 준 선생님의 영향이 컸다. 기 교사는 "어릴 때부터 곁에서 본 반듯한 어른이 선생님이었으니까 자연스럽게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심현자 교사가 인천 서구 가림고등학교 졸업식에서 당시 고3 제자였던 기중현 교사와 함께 웃고 있다. 원주현 교사 제공


이처럼 '반듯한 선생님'은 대물림 된다. 원 교사의 기억 속에 '심 쌤'(심현자 교사)은 '무턱대고 찾아가도 다 받아주던 선생님'이었다. 학교에서 제대로 수업하지 않던 세계사를 배우고 싶어 심 교사에게 가 가르쳐달라고 졸랐더니 자신과 친구 몇 명을 빈 교실에 앉혀놓고 어떤 보상도 없이 '과외'를 해줬다. 고교생이던 원 교사는 ‘나도 나중에 저런 선생님이 돼야겠다’고 생각했다. 2000년대 초만 해도 교사가 꿈이라고 하면 모두가 응원해 주던 시절이었다.

교직을 사랑하는 세 사람이지만 최근 교단을 덮친 위기를 절감한다고 했다. 교권 추락 속에 지난 한 해에만 9,194명의 교사가 정년이 되기 전 사표를 쓰고 학교를 떠났다. 역대 가장 많은 수다. 33년 차인 심 교사는 교원의 자율성이 점점 사라지면서 무력감이 커진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내가 지도한 학생의 학교생활기록부에 한 줄 쓸 때마다 '이 문구를 적어도 문제가 안 될까' 하는 생각을 하며 머뭇거린다"며 "모든 교육 활동을 극심한 통제 속에서 하다 보면 '어쩌다 이렇게 됐지' 싶은 자괴감이 든다"고 말했다.


그래픽= 신동준 기자


또 학생 간 사소한 다툼이 있을 때 베테랑 교사로서 충분히 중재할 방법이 보이는데도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학폭위)의 처분이 내려질 때까지 몇 달간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심 교사는 답답한 듯 말했다.

"잘못한 아이도 혼내기 어려워요. '왜 낙인 찍느냐'고 항의하는 부모도 있으니까요. 학생이 반성하지 않으면 주변 친구들도 영향을 받아요.
'잘못을 저지르면 책임지고 반성해야 한다'는 순리를 배우는 공간이 학교인데···, 이조차 가르치기 힘들죠."


심현자 교사와 원주현 교사가 인천 서구 가림고등학교에서 같이 근무하던 당시 교정에서 함께 서 있는 모습. 원주현 교사 제공


"문학 통해 타인 삶 이해…보람 느끼는 순간"



교사들은 지금 학교의 사정을 읽는 열쇳말로 '불안'을 꼽았다. 학생도, 교사도 모두 극도의 불안함에 시달리는 시대라고 했다. 학생들은 경쟁에서 밀려날 수 있다는 공포 탓에 마음 졸인다. 원 교사는
"요즘 검정고시를 치려고 자퇴하는 학생들이 많다"며 "1점도 아니고 소수점 단위에서 내신 경쟁이 이뤄지다 보니 밀려났다 싶으면 차라리 학교를 떠나 홀로 대학 입시를 준비하려는 것"
이라고 설명했다.

또 모둠수업을 통해 평가하는 일도 쉽지 않다. 개인의 능력과 별개로 조원 구성에 따라 점수가 달라질 수 있는 까닭에 불공정하다고 여기는 학생들이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게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일그러진 구조 탓이다. 심 교사도 상황을 비슷하게 진단하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불안감을 느끼는 아이들이 많다보니 교사로서 가장 강조하는 말이 '나에게도, 남에게도 조금 더 친절해지자'는 것"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교사들은 공교육의 역할을 믿는다. "경제·문화적으로 1%부터 100%까지 학생이 모두 모여 교육받는 공간이 학교"(원 교사)이기에 모든 아이들을 건강한 시민으로 키우는 건 학교의 몫으로 남아 있다. 원 교사는 자신이 가르치는 국어 과목의 역할을 예로 들어 설명했다.

"고2 문학 교과서에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라는 작품이 나와요. 도시 재개발로 판자촌에서 밀려난 빈민들의 이야기인데 아파트에 사는
요즘 아이들 입장에선 빈민보다는 입주권을 살 수 있는 사람들의 입장이 더 와닿을지 모르죠. 그런데 수업을 통해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의 입장을 생각하고 얘기하다보면 아이들이 쓰는 글의 내용이 조금씩 바뀌어요. 교사로서 보람을 느끼게 되는 순간이죠."


세 교사에게 6·3 대선 이후 출범할 새 정부에 바라는 점을 물었다. 기 교사는 "현장 교사 출신이 시도 교육청이나 교육지원청뿐 아니라 교육부에 여럿 채용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학교 현장의 이야기가 정책을 만드는 과정에 반영됐으면 좋겠다는 취지다.

전국중등교사노조 위원장이기도 한 원 교사는 교사의 정치기본권이 회복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학생이 불행해지길 바라는 교사는 없다"며 "점점 더 극심해지는 서열화 탓에 아이들이 너무 힘들어하는데 (현실을 잘 아는 교사가) 업무 외 시간이라도 교육 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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