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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4회 스승의 날]
청각장애인 특수교사 이길선 선생님
수어통역사와 호흡 맞춰 수업 진행해
'눈맞춤'으로 공감하고 손짓으로 소통
특수교사 이길선(왼쪽)씨가 수어통역사 김현숙씨와 함께 12일 서울 관악구 정문학교에서 6학년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강예진 기자


"우와 비행기다!"

12일 오후 1시쯤. 교실 밖으로 비행기가 보이자 학생 두 명이 창문으로 달려갔다. 학생들이 수업 중간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지만 교사 이길선(46)씨는 놀라거나 당황하지 않았다. "자, 비행기 지나갔으니 다시 앉자"며 부드럽게 아이들을 이끌었다.

서울 관악구의 특수학교인 정문학교의 일상적인 모습이다. 6명의 6학년 학생이 모인 수업 시간 40분 동안 화장실을 가겠다고 교실을 나간 학생이 4명, 비행기를 쫓아 창가로 달려간 횟수만 3번이었지만 분위기는 흐트러지지 않았다. 창밖 소리에 집중력을 잃던 학생들도 이씨가 눈을 맞추며 대화를 시도하면 웃으며 다시 수업에 참여했다. 이씨는 학생들과 함께 '개미와 베짱이' 동요를 부르며 책임감에 대해 가르쳤고 아이들을 닮은 캐릭터를 보여주며 손을 맞잡기도 했다.

봉사로 교사의 꿈 키워

이길선씨가 장난감 세탁기를 통해 학생들에게 세탁기에 대해 알려주고 있다. 강예진 기자


이씨는 15년째 장애 학생들을 가르치는 특수교사다. 그도 청각장애인이다. 스무 살 무렵부터 청력을 잃기 시작해 30대에 인공와우(달팽이관) 이식 수술을 받았다.

식품영양학을 전공한 이씨는 장애아동 보호시설 봉사를 계기로 교사의 꿈을 갖게 됐다. 특수교육과로 편입한 뒤 청각장애 특수학교 교생 실습을 하며 목표는 더 단단해졌다. 이씨는 "쉬는 시간마다 수화로 저랑 한 마디라도 더 나누려고 주변을 떠나지 않던 학생들의 모습이 선하다"고 떠올렸다. 이씨는 서른이 되던 2009년 임용고시에 합격했다. 특수교사 생활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자폐 아동의 경우 상대 눈을 마주치지 않고 혼잣말하듯 말하는데 그때마다 아이 표현을 놓치곤 했다. 코로나19 대유행 땐 학생과 동료 교사, 학부모 모두 마스크를 써 의사소통이 더 어려웠다.

말 못 하던 아이가 구구단 익혀

이길선(오른쪽)씨가 수어통역사 김현숙씨와 함께 학생과 대화하고 있다. 강예진 기자


이씨는 '눈맞춤'으로 교감했다. 눈을 피하던 학생들도 이씨가 끊임없이 바라보자 시선을 맞추기 시작했다. 이날 이씨 수업을 참관한 교육실습생 김지우(22)씨는 "이길선 선생님은 학생들이 뭘 얘기하고 싶은지 늘 주의 깊게 지켜본다"고 했다. 수화에 능한 이씨는 손짓 사용도 자연스럽다. 이씨는 "자폐 아동들은 시각적 요소를 잘 인식한다. 제 손을 유심히 보더니 필요할 때 손짓을 활용하더라"고 설명했다.

장애가 있는 이씨는 누구보다 아이들 처지를 잘 헤아린다. 그는 "학생들이 이해할 때까지 반복하는데, 제겐 이것이 당연해 고되거나 답답하지 않다"며 "이런 여유는 제 장애 덕분에 생긴 것 같다"고 미소 지었다. 경도 지적장애 아동으로 3~6학년까지 3년간 가르쳤던 '첫 제자'는 특히 기억에 남는다. 생각을 말로 표현 못 하고 울음으로 대신하던 아이는 이씨의 관심과 애정을 자양분 삼아 읽고 쓰기는 물론 덧셈 뺄셈과 구구단까지 익혀 학교를 졸업했다. 이씨는 "특수교사는 졸업 후 제자 방문을 받는 일이 적은데, 이 친구는 졸업 후에도 가끔 찾아와 근황을 전한다. 그때 정말 행복하다"고 말했다.

통역사 바뀌면 적응기 반복

이길선씨가 손을 맞잡은 채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강예진 기자


이씨처럼 장애가 있는 교사들의 교육 환경에 2023년 하반기 큰 변화가 생겼다. 서울시교육청이 수어통역사와 문자통역사를 지원한 것이다. 문자통역사가 기기를 통해 문자를 입력하면 교사들은 태블릿으로 실시간 전달받는다. 수어통역사는 청각장애 교사가 듣기 힘든 작은 소리를 듣고 재빨리 수어로 알려준다. 이씨는 회의나 연수 땐 문자통역사, 수업 중엔 수어통역사 도움을 받는다. 이날도 자리에 앉으라는 이씨의 말에 몇몇 학생이 작은 목소리로 아쉬워하자 교실 뒤에 있던 수어통역사 김현숙(52)씨가 아이들의 말을 이씨에게 수화로 즉시 전달했다.

개선할 부분도 있다. 교육청 정책상 통역사 용역 업체가 1년마다 바뀌는데 학기 중 통역사가 교체되면 난감하다. 통역사가 교사, 학생과 유대감을 처음부터 다시 쌓아야 해서다. 3월부터 정문학교에서 근무하고 있는 김씨는 "초기엔 아이들 특성 파악이 쉽지 않았다. 아이들이 마음을 열 시간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씨는 "같은 통역사와 일하도록 계약을 연장하거나 학기 시작 전 절차를 마무리해 중간에 통역사가 바뀌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짚었다. 이어 "동료 교사들의 배려에 의지하기보다 장애를 가진 교사들에게도 필요한 지원을 하면 수업도, 학교생활도 모두 행복하게 할 수 있다"고 힘줘 말했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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