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챗GPT가 한국의 고정밀 지도 국외 반출을 요구하는 상황을 그린 일러스트. 챗GPT


# 서울에 사는 직장인 A씨의 하루는 지도 애플리케이션(앱)을 켜는 것으로 시작된다. 시시각각 바뀌는 버스 도착 예정 시간과 교통 상황을 살피며 출근 준비에 속도를 낸다. 점심시간이 다가오자 지도 앱에 저장해둔 맛집 목록을 훑고 앱 안에서 예약을 한다. 퇴근 후엔 모처럼 미용실에 간다. 눈여겨본 미용실의 예약과 예약금 결제까지 지도 앱에서 한 번에 해결한다. 머리를 다듬은 뒤 출출해진 A씨는 배달 앱을 열어 햄버거를 주문한다. 배달 앱 지도 위에서 실시간으로 움직이는 라이더의 위치를 보며 음식을 기다린다.

정부가 구글의 고정밀 지도 데이터 반출 요청에 대한 수용 여부 결정을 애초 15일에서 오는 8월로 유보한 가운데, 지도 데이터의 중요성에 눈길이 쏠리고 있다. 한국 고정밀 지도 데이터에 대한 구글의 집념은 18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2007년 처음 1:5000 축척 지도 데이터 반출을 요청한 데 이어 올해까지 세 차례에 걸쳐 지도 데이터에 손을 뻗고 있다. 구글은 왜 이렇게 고정밀 지도를 집요하게 요청하는 것일까.

지도 데이터,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금맥’

지도 데이터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석유’라 불리는 데이터 중에서도 핵심 자원으로 꼽힌다. 온·오프라인을 연결하는 위치 기반 서비스에서 지도 데이터는 필수 불가결한 존재다. O2O(Online to Offline)라 불리는 이 서비스는 일상생활에서 전문 분야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영역에 침투해 있다. 네이버 지도와 같은 지도 서비스는 물론 배달(배달의 민족), 장소 예약(캐치테이블·야놀자), 이동(카카오택시) 등 다양한 플랫폼 서비스가 지도 데이터를 근간으로 한다.

지도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는 국내 산업 규모는 고공성장 중이다. 모정훈 연세대 산업공학과 교수는 최근 국회 토론회에서 “관련 시장 규모는 현재 약 342조원으로 2030년에는 2배 이상인 796조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지도 데이터를 가지고 있느냐 아니냐는 서비스 경쟁력 차이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지도 데이터를 사용하는 업체가 지도를 자체적으로 구축하는 것은 아니다. 지도 데이터를 만드는 데엔 천문학적 규모의 돈이 들어가기 때문에 대부분 업체는 빅테크 기업에 일정 금액을 지불하고 이들의 지도 API(이미 만들어진 프로그램)를 사용한다. 국내에선 네이버와 티맵이, 해외에선 구글이 대표적인 지도 API 사업자다.

지도 API 사업자는 업체로부터 받는 이용료 외에 각종 광고로 수익을 올린다. 글로벌 위치 기반 광고는 연평균 15% 성장률을 보이는 시장이다. 모 교수에 따르면 국내 위치 기반 광고 시장의 규모는 4115억원(2021년 기준)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구글이 한국 정부가 제안한 1:25000 축척 지도를 거부하는 속내는 여기서 가늠해볼 수 있다. 위치 기반 광고를 하려면 특정 건물, 특정 층에 자리한 맛집까지 잡아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선 고정밀의 지도가 필요하다. 1:5000 지도는 50m 거리를 지도상 1㎝로 표현해 골목길까지 세세하게 식별할 수 있다.

최근 네이버가 지도 앱 사용성을 개선하고 외국인 관광객 대상 프로모션을 펼치는 등 적극적 행보를 보이는 것도 구글에 이 시장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노력으로 풀이된다. 네이버는 국토지리정보원과 손잡고 고정밀 지도를 구축하는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고 14일 밝히기도 했다.

이 밖에도 모빌리티 자율주행이나 드론, 로봇 등 미래 먹거리로 꼽히는 산업에서 지도 데이터는 필수다. 단순한 위치 검색, 길 찾기 서비스 개선 도구의 의미를 넘어서는 ‘전장’인 셈이다.

“32조 경제적 효과” vs “생태계 다 죽는다”

연휴 마지막 날인 지난 6일 서울 경복궁 경내가 외국인 관광객과 시민들로 붐비고 있다. 이준헌 기자


고정밀 지도 데이터가 구글의 손에 들어가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크리스 터너 구글 대외협력정책 지식 및 정보 부문 부사장은 최근 SBS와의 인터뷰에서 “구글 지도가 개선되면 향후 2년간 관광객 680만명이 한국을 찾을 수 있다”며 이에 따른 경제적 효과가 226억달러(약 32조원)에 달한다고 강조했다. 세계인이 가장 많이 쓰는 구글 지도에 국내 관광지의 최신 정보가 게재될 경우 톡톡한 홍보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경제적 효과엔 과장이 섞였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한국에 올 생각이 전혀 없던 관광객 수백만명이 구글 지도 서비스가 개선됐다는 이유만으로 한국행을 결정하진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 구글 지도가 힘을 쓰지 못한 최근 수년 사이에도 방한 외국인 관광객 규모는 꾸준히 늘었는데, 이는 K팝을 위시한 콘텐츠의 힘이 컸다.

얻을 것이 불확실한 데 반해 잃을 것은 분명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구글이 국내 지도 API 시장에 진입할 경우 덩치를 무기로 빠르게 점유율을 키워나갈 것으로 예상되는데, 한 번 이 지도 안에 종속되면 이후 구글의 지도 API 이용료 인상 등에 응할 수밖에 없다. 실제 구글은 업체들이 적은 비용으로 자신들의 지도 서비스 위에 사업을 구축하게 유도하다가 독점적 지위를 굳힌 이후인 2018년 지도 API 이용료를 14배가량 인상한 적이 있다.

세금 문제도 엮여 있다. 구글은 이미 검색 엔진과 유튜브 등으로 한국에서만 매년 수조원대 매출을 올리면서도 국내에 서버를 두지 않는 방식으로 세금을 회피하고 있다. 국내 기업과 비교해 각종 규제에서 자유로운 데다 국내 재투자나 기부에도 소극적이다. 지도 사업이라고 다른 태도를 기대하긴 어렵다.

지난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도 반출 문제를 ‘비관세 장벽’으로 규정하면서 문제는 통상이 얽힌 고차 방정식이 됐다. 전문가들은 지도 반출이 산업 생태계에 미칠 장기적 영향, 기술 주권의 문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스타트업 민간 지원 기관 스타트업얼라이언스의 정주연 전문위원은 “단순히 기술·외교적 편의 차원에서 접근해선 안 된다”며 “국내 스타트업의 혁신 기반, 디지털 플랫폼의 경쟁력, 나아가 국가 안보와 통제권과 직결되는 전략적 사안”이라고 말했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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