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성단체연합 등 여성·시민사회 단체들이 13일 서울 서대문구 현대백화점 신촌점 앞 광장에서 '내 삶을 바꾸는 성평등 한 표 캠페인 선포식'을 하고 있다. 뉴스1
영국 시사주간 이코노미스트가 발표하는 ‘유리천장 지수’에서 올해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29개국 중 28위다. 지난해까진 12년 연속 꼴찌였다. 한국의 성별 임금 격차는 2023년 기준 OECD 회원국 가운데 꼴찌이고, 여성 국회의원 비율(19.1%)은 세계 126위다. 구조적 차별이 개선되지 않았다는 의미다. 디지털 성폭력, 교제살인 등 성범죄는 날로 잔인해지고 있다. 2030세대 여성들이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촉구 집회에 모든 연령·성별 중 가장 많이 참석한 건 안전한 세상에 대한 갈망과 성평등 정책을 퇴행시킨 윤석열 정부에 대한 분노 때문이었다.
이 같은 민심을 경청하고 정책화할 책임이 정치권에 있으며, 대선은 관련 공약을 내놓고 국민의 심판을 받는 장이 돼야 한다. 그러나 성평등 공약은 명백하게 퇴보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응원봉 민심’을 존중하겠다더니, 이재명 대선 후보는 10대 공약에서 여성 분야를 통째로 뺐다. 민주화 이후 성평등 이슈가 민주당 주요 의제에서 제외된 건 처음이다.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도 성평등 공약이 전무하고, 이준석 개혁신당 대선 후보는 여성가족부 폐지를 주요 공약에 올렸다. 권영국 민주노동당 대선 후보가 유일하게 비동의 강간죄 도입과 낙태죄 대체 입법 등 여성 목소리를 반영한 공약을 내놨다.
선거 초반 나타난 정치권의 성평등 인식은 참담하다. 김문수 후보는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을 “미스 가락시장으로 뽑으라”고 말해 여성 대상화 시각을 드러냈고, 김문수 민주당 의원(동명이인)은 여성을 출산 여부로 평가하는 ‘출산 가산점’ 제도를 언급했다가 대선캠프 보직에서 사퇴했다. 이러니 정치가 나라 발전의 최대 걸림돌이란 비판을 받는 것이다.
성평등과 다양성 보장은 인권 문제이기도 하거니와, 경제적 효과도 확연해 관련 정책을 강화하는 것이 선진국들의 뚜렷한 추세다. '젊은 남성 표심 이탈' 운운하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질뿐더러 여성 표심을 무시하는 근시안적 접근이다. 각 대선 후보는 더 늦기 전에 시대 변화를 반영하는 성평등 공약을 내놔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