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앵커 ▶
1980년 5·18 항쟁 당시 시민군으로 참여했던 미국 청년들 중엔 데이비드 돌린저 씨가 있는데요.
'임대운'이라는 한국 이름으로 평생을 5·18 증언자로 살아온 그가 명예 광주시민으로 선정됐습니다.
광주의 참상을 기억하고 있는 그는,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주현정 기자가 만났습니다.
◀ 리포트 ▶
지난 1980년 5월.
광주 금남로 상공에 군용헬기가 요란히 날아들고 시민들을 향해선 무차별 사격이 이뤄졌습니다.
그날 그곳엔 미국 정부에서 파견된 청년 봉사단 소속 20대 초반 데이비드 돌린저 씨도 있었습니다.
[데이비드 돌린저]
"나이 든 할아버지가 달려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아느냐, 군대가 광주시민들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아느냐?' 묻더군요. 그러면서 '우리는 일어서야 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돌린저 씨는 시민군이 되어 최후 항쟁지였던 도청에 머물며 계엄군의 영어 무전을 감청하고 외신기자들과 시민 사이 통역을 맡았습니다.
광장을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시민군과 함께 도청에서 밤을 새웠고, 이후엔 유혈이 낭자했던 광주의 참상을 알리겠다는 신념으로 보고서와 책 등을 출판했습니다.
그리고 45년 만에 돌린저 씨는, '임대운'이란 이름으로 명예 광주시민으로 선정됐습니다.
그는 광주 시민의 5·18 정신이 자신을 완성시켰다고 말합니다.
[데이비드 돌린저]
"광주 시민은 제가 현재의 나 자신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제가 평생을 걸어온 길을 걸을 수 있도록 이끌어 주셨습니다."
돌린저 씨는, 올바른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까지 내놓은 시민군 동료들을 기억하기에 지난해 12월 밤 느닷없는 비상계엄 소식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밝혔습니다.
[데이비드 돌린저]
"제가 그때 서울에 있었더라면, 그곳(국회)에 가는 방법을 찾았을 겁니다. 그 장면(국회 앞 시민들)을 보며 1980년 광주의 정신을, 2024년 사람들에게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는 민주주의를 위해 필요한 건 '행동하는 양심'이라며, 대중의 용기있는 양심이 정치인이나 지도자의 결정에 언제나 큰 영향을 미쳐왔다고 강조했습니다.
MBC뉴스 주현정입니다.
영상취재: 강성우·문영식(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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