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리 돌린저, 광주 명예시민 돼
1980년 당시 계엄군 무전감청 등 임무
윤상원 열사에 “카리스마 타고난 리더”
1980년 당시 계엄군 무전감청 등 임무
윤상원 열사에 “카리스마 타고난 리더”
14일 오후 광주 동구 전일빌딩245에서 5·18민주화운동을 증언하는 데이비드 리 돌린저씨. 그는 5·18 당시 최후항전지인 옛 전남도청에 하룻밤 머물려 계엄군에 항전한 유일한 외국인이다.
“(시민군들이) 무전기 감청을 도와줄 수 있는지 물었고 허락했다. 내가 실질적인 광주시민이 된 것 같아 기뻤다”
1980년 5월 5·18민주화운동 최후항전지인 옛 전남도청에 하룻밤을 머물며 계엄군에 항전한 유일한 외국인인 데이비드 리 돌린저(한국명 임대운)씨는 14일 당시를 이같이 회상했다. 돌린저씨는 이날 오후 5·18 당시 계엄군의 헬기사격 총탄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광주 동구 전일빌딩245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시민들은 자신의 신념과 자신의 자녀, 앞으로 태어날 후손의 미래, 한국의 미래를 위해 죽었다”고 밝혔다.
당시 미국 평화봉사단원으로 한국에 파견돼 있던 돌린저씨는 결혼식 참석차 광주에 갔다가 5·18을 목격했다. 계엄군의 무자비한 진압에 시민 피해가 속출하자, 그는 자연스럽게 고립된 광주와 외신기자들을 연결하는 통역을 자처했다.
이후 시민군 대변인 고(故) 윤상원 열사의 요청으로 계엄군 무전기 감청 임무를 맡은 그는 5월 27일 계엄군의 전남도청 진압작전 때까지 시민군으로 활약했다. 돌린저씨는 “군인들이 체포된 이들을 발로 차고 총 개머리판으로 때렸다. 도청에는 총탄 자국과 핏자국, 깨진 창문을 통해 군인들이 오가는 모습들이 보였다”고 증언했다.
데이비드 리 돌린저씨가 14일 광주 동구 전일빌딩245에서 제45주년 5·18 기념전시 ‘증인:국경을 넘어’ 전시물을 살펴보고 있다.
돌린저씨는 윤 열사에 대해 “시민군들의 리더 모임에 초대돼 가자 일부 사람들이 왜 외국인이 와 있냐며 항의했다. 하지만 윤 열사가 ‘괜찮다. 문제될 것 없다’고 했고, 그는 ‘당신이 하고 있는 일은 광주시민들을 위한 행동’이라며 나를 격려했다”면서 “윤 열사는 카리스마를 타고난 강한 리더였다. 그는 평화봉사단원들이 시민들로부터 돌봄받고, 가족으로 대우받을 수 있도록 광주의 분위기를 만들었다”고 회상했다.
끝으로 12·3 비상계엄 사태에 대해 돌린저씨는 “속보를 보고 분노했다. 국회로 달려가는 시민들의 모습을 뉴스에서 보고 감동했다”며 “민주주의를 보호하려는 시민들의 모습이 감명이 깊었고, 그것이 바로 ‘광주정신’이라고 생각했다”고 강조했다.
광주광역시는 단순 목격자를 넘어 당시 시민군과 함께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헌신한 그에게 이날 명예시민증을 수여했다. 5·18기록관이 올해 제45주년 5·18 기념전시로 민주항쟁에 직접 참여하고, 항쟁을 목격한 외국인들의 헌신을 기리는 ‘증인:국경을 넘어’를 준비하다 그의 공적을 재발견하면서 명예시민증 수여가 추진됐다. 기념전시는 이달부터 내년 3월 31일까지 전일빌딩245 9층 5·18기념공간에서 계속된다.
전시를 주최한 5·18기록관 김호균 관장은 “5·18 당시 광주에 머물고 있던 외국인들은 언제든 광주를 떠날 여건이 마련돼 있었지만 돌린저씨 등은 떠나지 않았다”며 “그들은 고향이자 삶의 터전, 폭력에 고통받는 광주와 시민들을 두고 떠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