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AFP=연합뉴스
13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소식통을 인용해 “IMF 회의에 참석했던 스콧 베센트 미 재무장관과 란포안 중국 재정부장이 3주 전에 IMF 본부 지하에서 비밀리에 만났다”며 “이 자리에서 세계 2대 경제대국 간의 무역이 붕괴된 상황에 대해 논의했다”고 보도했다. FT는 해당 회동이 스위스 합의의 출발점이라면서도 회동의 정확한 시점을 특정하지 못했다. 회의 장소로 추정한 IMF 본부에 대해서도 미 당국의 확인을 얻지 못했다.
이와 관련, 중앙일보는 지난달 24일(현지시간) 오전 7시께 중국의 고위 인사가 10여명의 수행원을 이끌고 백악관 바로 옆에 위치한 재무부 본부로 입장하는 장면을 전 세계 언론 중 유일하게 포착해 보도했다.
당시 10여명의 중국측 인사들을 이끌던 이는 란포안 재정부장으로 추정됐다. 그러나 중국측 수행원들이 중앙일보 취재진의 사진 촬영을 완강히 막아서면서 란 부장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지 못했다.
지난달 24일(현지시간) 오전 7시께 중국 재정부(기획재정부에 해당) 고위 인사가 10여명의 수행원을 대동하고 미국 워싱턴에 위치한 미 재무부 본부 건물로 입장하는 모습이 확인됐다. 사진은 양측의 회동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중국측 수행원. 이들은 G20 재무장관 회의에 참석하기 위한 신분증을 착용하고 있었고, 신분증엔 '중국(China)'라는 국적이 표기돼 있었다. 워싱턴=강태화 특파원
다만 당시 재무부 본부에 입장했던 중국의 협상단들은 모두 G20 재무장관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발급된 신분증을 패용하고 있었고, 중앙일보는 그들의 신분증에 모두 ‘중국(China)’이라는 국적이 표기돼 있는 것을 확인했다.
이 보도를 통해 미·중 간 물밑 협상이 실제로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 파악됐지만, 중국은 당시 미국과의 물밑 접촉 사실에 대해 “미국과 어떠한 협의나 협상을 한 적이 없고, (관련 언급은) 모두 가짜뉴스”라며 완강히 부인했다.
반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중앙일보 보도 직후 백악관에서 요나스 가르 스퇴르 노르웨이 총리와의 회담 도중 “오늘 오전 그들(중국)과 회의를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회의 참석자들이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고, 어쩌면 나중에 공개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당시 ‘재무부 회동’이 중국과의 스위스 합의의 출발점이 된 양국간의 장관급 회담일 가능성을 시사한 말로 해석된다.
이같은 중앙일보 보도는 중화권 언론에서 크게 화제가 됐다. 대만 중앙통신은 지난달 27일 “중앙일보는 중국 고위 관계자가 수행원 10여명을 대동하고 미 재무부 청사에 들어갔다고 보도했다”며 “미국과 중국이 관세 문제에서 이견을 보이는 중에도 양국간 협의가 이미 이뤄지고 있음이 드러났다”고 전했다.
이날 싱가포르 연합조보도 “미·중이 다른 의견을 보이며 관세전쟁이 교착 상태에 빠져 있는 거로 보였지만,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중국 고위 인사들이 미 재무부를 방문했다”며 “중국 고위 관리가 미 재무부를 직접 방문하는 건 중국에 매우 민감한 사안”이라고 전했다.
글로벌 G2로 불리는 미국과 중국의 ‘관세 전쟁’에서 누가 먼저 휴전을 요청했는지는 양국의 자존심을 건 중요한 문제가 될 수 있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12일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중국과의 관세 유예 합의에 대해 “이번 합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중국이 시장을 개방하기로 한 것이고, 이는 중국과의 무역 관계의 완전한 재설정(total reset)”이라며 미국의 승리를 선언했다. 반면 중국 관영 매체인 환구시보의 후시진 전 편집장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중국의 위대한 승리”라는 반대 주장을 펼쳤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12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중국과의 관세 부과 유예 합의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중국이 지난달 미 재무부로 직접 찾아가는 형식의 물밑 협상에 응했던 사실에 대해 외교 소식통은 “관세 전쟁이 양국 정상들이 직접 등판한 자존심 싸움 양상으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윈윈 구조’를 만들기가 쉽지 않은 구조”라며 “이 때문에 중국 고위 인사가 미 재무부로 찾아가 협상에 임했다는 사실 자체가 중국 입장에서 극도로 민감한 사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