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2월 강원도 강릉에서 발생한 차량 급발진 의심 사고 현장. 강릉소방서 제공
2022년 12월 강원도 강릉시에서 발생한 차량 급발진 의심사고로 손자인 이도현군(당시 12세)을 잃은 70대 할머니와 가족들이 자동차 제조사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패소했다.
춘천지법 강릉지원 민사2부(재판장 박상준)는 13일 이군의 가족 측이 KG모빌리티(KGM·옛 쌍용자동차)를 상대로 제기한 9억2000만원 규모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전자제어장치(ECU) 소프트웨어 결함으로 인해 급발진이 발생했으며, 급가속 시 자동 긴급제동 보조 시스템(AEB)이 작동하지 않아 이 사건 사고를 예방하지 못했다”는 가족 측 주장을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운전자가 가속페달을 제동페달로 오인해 가속페달을 밟았을 것으로 보여 이 사건 사고가 ECU 결함으로 인한 것이라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판결 선고가 끝난 뒤 이군의 아버지 이상훈씨는 즉각 항소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 사고는 2022년 12월 6일 강릉시 홍제동에서 발생했다. 운전자 A씨(72)는 이군을 태우고 티볼리 승용차를 몰던 중 급발진 의심 사고로 손자를 잃었다.
이후 A씨와 이군의 가족은 사고가 ‘급발진’으로 일어난 것이라며 차량 제조사인 KGM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하고 치열한 법정 공방을 벌였다. 사고기록장치(EDR) 감정, 블랙박스 영상 음향분석 감정을 비롯해 국내 최초로 사고 현장 실도로 주행 재연 시험과 차량 ECU 전문가의 법정 증언 등이 이어졌다.
유족은 “약 30초 동안 지속된 이 사건 급발진 과정에서 운전자가 가속페달을 브레이크로 착각해 밟는 건 불가능하다”며 “ECU 소프트웨어 결함에 의한 전형적인 급발진 사고”라고 주장했다.
반면 KGM 측은 ‘풀 액셀’을 밟았다고 기록한 EDR 기록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분석 등을 근거로 페달 오조작이라고 반박했다.
A씨는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상 치사 혐의로 형사입건되기도 했다. 하지만 A씨는 경찰 수사에서 ‘죄가 없다’는 판단을 받았다. 지난해 10월 경찰은 ‘증거불충분’으로 A씨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결론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사고 차량 감정 결과 ‘제동장치의 기계적 결함은 없는 것으로 판단되고, 운전자가 가속 페달을 밟아 사고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감정 결과를 내놨다.
그러나 경찰은 국과수 감정 결과는 사고 차량의 실제 엔진을 구동해 검사한 결과가 아니라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다. 실제 차량 운행 중 제동장치의 정상 작동 여부와 예기치 못한 기계의 오작동을 확인할 수 있는 검사가 아니기 때문에 국과수 분석 결과를 증거로 삼기에는 부족하다고 결론지었다.
유족 측은 지난 4월 급발진 사고 입증을 위해 국내 처음으로 재연 시험을 했다. 2018년식 티볼리 에어 차량에 제조사에서 제공한 변속장치 진단기를 부착한 상태로 진행됐다. 전문 감정인과 경찰, 아마추어 레이서 입회하에 사고 발생 현장 도로를 통제한 상황에서 재연 시험이 이뤄졌다.
유족 측은 시험 결과를 토대로 사고기록장치(EDR)의 신뢰성이 떨어진다고 주장하는 반면 KG모빌리티 측은 해당 시험에 적용된 조건이 국과수의 분석 결과 등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