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삼성전자의 V9 낸드. 사진제공=삼성전자

낸드플래시의 생김새. 여러 단의 층을 수직으로 쌓고 수억 개의 미세 구멍을 뚫어 만듭니다. 이 구멍이 ‘채널홀’이고 낸드 공정의 백미입니다. 단수가 올라갈 수록 깊고 얇게 뚫어야 합니다. 사진=삼성전자, 강해령의 하이엔드 테크

[서울경제]

정보기술(IT) 시장에 관심 많으신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은 낸드플래시 공정에 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강해령의 하이엔드 테크]에서는 반도체 극저온 식각 공정에 대해 여러 번 다뤘죠. '1000단 낸드' 시대의 문을 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식각 공정으로 설명 드린 적이 있습니다. 장비 내 웨이퍼의 온도를 저온으로 낮춰서 미세 구멍(채널홀)을 더 효율적으로 뚫는 방법입니다.

마치 '최종병기'처럼 느껴졌던 극저온 식각 기술의 상용화가 눈앞으로 다왔습니다. 삼성전자(005930)가 하반기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는 400단 이상 10세대(V10) 낸드에서 인데요.

여기서 우리의 도파민을 자극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극저온 식각 장비(에처)에서 공급망 점유율 전쟁이 상당히 치열하게 전개됐기 때문인데요. 세계 양대 반도체 장비 회사 미국 램리서치와 일본 도쿄일렉트론(TEL)의 ‘극저온 식각’ 대결입니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 지금부터 취재된 내용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극저온 식각 장비의 대략적인 원리. 웨이퍼의 온도를 저온으로 낮춰서 웨이퍼의 고종횡비 식각을 수월하게 하겠다는 아이디어입니다.



전통의 강자 램, '컨텐더' TEL



램리서치는 반도체 식각의 왕으로 군림해오고 있습니다. 세계 건식 식각(드라이 에치·dry etch) 시장의 4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업체죠.

특히 낸드플래시 분야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가늘지만 깊게 뚫는 '채널홀' 공정에서 최고의 성능을 뽐내면서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낸드 메이커들의 사랑을 그야말로 독차지해왔습니다.

이 시장에서 도전자 격인 TEL 역시도 글로벌 식각 시장에서 상당한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회사입니다. 글로벌
드라이 에치 시장에서 약 30%의 점유율을 보유하고 있는 업체
인데요. 낸드플래시에서 100단 이상을 한 방에 뚫을 수 있는 '상남자적'인 고종횡비(HARC) 에치에서는 압도적 점유율을 차지했던 램리서치의 철옹성을 넘기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2023년 VLSI 학회에서 공개된 TEL의 극저온 식각 결과물. 이 슬라이드 한 장으로 세계 반도체 장비 업계가 깜짝 놀랐습니다. 사진제공=VLSI 2023 TEL 슬라이드.


그러나 최근 TEL은 이 채널홀 에치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입하기 위해 극저온 식각이라는 반격 기술을 들고 램리서치의 아성에 도전하기 시작했습니다. 2023년 반도체 장비 업계 엔지니어들의 눈이 번쩍 뜨이게 만드는 특허 기술과 데이터를 공개하며 이 씬(scene)에 거대한 균열을 가하게 된 것인데요. 그동안 낸드 에치 분야에서 최고의 입지를 다졌던 램리서치가 바짝 긴장한 순간이었습니다.

V10 극저온 공급망에서 점유율은 램리서치와 TEL 모두에게 의미가 큽니다. 세계 최고의 낸드 메이커인
삼성전자가 첫 도입하는 극저온 기술에서 우위를 차지했다는 상징성
에서도 그렇고요. TEL은 새로운 먹거리 발굴의 기회를·램리서치는 왕좌의 자존심 유지와 400단 다음의 최고층 낸드에서도 유리한 고지를 확보할 수 있다는 판단을 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램의 판정승, 선전한 TEL



자, 일단 400단 채널홀 에처는 한 개의 장비군만 있는 것은 아니고 복수의 종류로 나뉩니다. 쉽게 예를 들면 전방 수색대를 보내서 최전방의 경계를 허무는 에처가 있고요. 본격적으로 군사들을 투입해 100단 이상의 층을 미친듯이 뚫는 식각 장비가 있습니다.

램리서치와 TEL은 이 전장에서 불꽃튀는 경쟁을 벌였습니다.
결론적으로는 램리서치가 판정승을 거둔 것으로 파악됩니다.


램리서치가 특정 공정에서 TEL 장비를 앞지르면서 점유율 우위를 차지했다는 게 업계의 중론입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램리서치가 V10 R&D 단계에서 TEL보다 늦게 참전한 것은 맞지만, 장비의 성능과 함께 안정감과 신뢰성(reliability)이 빠르게 올라온 것으로 안다"고 말했습니다.

기존 식각 최강자의 장점도 누린 것으로도 알려졌습니다. 램리서치는 삼성 낸드 라인에 설치돼 있는
기존 식각 장비를 개조할 수 있는 극저온 모듈을 개발
했습니다. 낸드 회사들의 가장 큰 고민인 설비 투자 비용을 최고로 효율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메리트죠. 업계에서는 "이미 삼성 낸드 라인에 수많은 램리서치의 채널홀 에처가 깔려있는 만큼 1위의 장점을 영리하게 활용한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TEL도 아주 선전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TEL이 초반 맹공에서 기대했던 채널홀 식각 판을 뒤집어 놓는 정도는 아니지만 말이죠. 램리서치가 그야말로 ‘압도적’이었던 낸드 채널홀 식각 쪽에서
TEL이 드라이 에치 시장의 점유율 정도로 확 끌어올렸고, 올해 이 장비에 관한 신규 수주를 꽤 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는 것이 눈에 띕니다.
첫 진입 단계에서 이 정도 점유율이면 상당히 의미 있는 수준이라는 평가입니다.

또 극저온 에처에서 TEL 또한 '아주 만만찮은'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삼성이 TEL의 신규 장비를 상당수 구매했고 "가격 경쟁과 안정성에서 밀렸을 뿐, TEL의 극저온 식각 장비 성능 자체는 램리서치 장비와 비등하거나 더 좋은 것으로 안다"는 취재 기록도 있습니다.

삼성전자 평택 사업장 전경. 이곳에서 올 하반기부터 V10이 양산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사진제공=삼성전자


삼성전자는 평택 1공장에서 V10 양산 이관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이르면 올 하반기 400단 낸드의 정체를 알 수 있을텐데요. 삼성전자에서 최초로 세번을 쌓아서 단수를 구현하는 '트리플 스택'이 적용되는 만큼 에처도 많이 필요해질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까지의 상황을 정리하고 앞으로 삼성 V10 채널홀 '극저온' 장비 양산라인을 상상해보면 △기존 에처 교체와 신(新)모듈 적용은 램·완전 신규 장비 구매는 TEL 위주 △극저온 식각 메인 플레이어는 램·나머지 스택는 TEL 장비 양상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사실 극저온 식각은 이제 시작입니다. V10은 400단이지만 낸드 회사들의 궁극적인 목적은 1000단 이상 낸드를 만드는 것이기 때문인데요. 구멍을 더 깊고 미세하게 뚫는 것은 물론 큰 폭의 원가 절감·리드 타임 감소까지 모색하려면 더욱 고도화한 극저온 식각이 필요하다는 합의가 있는 건 분명합니다.

따라서 V10에서 시작된 '극저온 식각' 시리즈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최근 만난 한 업계 관계자는 "절대로 이번으로 공급망 경쟁이 종결된 것이 아니다"라며 "앞으로 램리서치와 TEL의 대결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기존 채널홀 에칭 강자 램의 선두 수성과 '컨텐더' TEL의 도전을 지켜보시는 것도 반도체 업계를 재밌게 분석하는 방법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서울경제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47275 40대 여성 '묻지마 살인' 이지현 첫 재판…"정신감정 신청" new 랭크뉴스 2025.05.13
47274 아이폰 가격 인상 검토 중… ‘관세 탓’ 티 안 내려 고심 중 new 랭크뉴스 2025.05.13
47273 대선주자들, 일제히 TK 공략…이재명·김문수는 '박정희 마케팅' new 랭크뉴스 2025.05.13
47272 스타벅스가 대선후보 ‘금지어’로 지정한 이유…윤석열은 왜? [이런뉴스] new 랭크뉴스 2025.05.13
47271 하루 11건꼴 교권 침해 심의…“중학생 비중 가장 커” new 랭크뉴스 2025.05.13
47270 이재명, ‘민주당 약세’ 영남 찾아…전통 제조업 넘어 미래 비전 제시 new 랭크뉴스 2025.05.13
47269 300만원→0원…180도 뒤집힌 포항지진 손배소 판결, 왜 new 랭크뉴스 2025.05.13
47268 "누구 위해 사나"... 벤츠 타고 호텔 조식 먹는 80세 선우용여 new 랭크뉴스 2025.05.13
47267 "역대 가장 얇은 갤럭시" 5년 만에 신제품 나온 삼성…'S25 엣지'로 비수기 돌파 new 랭크뉴스 2025.05.13
47266 베일 벗은 삼성 초슬림폰 ‘갤럭시S25 엣지’... “5.8mm 두께에 초경량 163g 무게 구현” new 랭크뉴스 2025.05.13
47265 ‘당근’보다 ‘검증된 중고’ 찾는 스마트폰 소비자들 new 랭크뉴스 2025.05.13
47264 경기 이천 물류창고서 큰불‥대응 2단계 발령 new 랭크뉴스 2025.05.13
47263 "포항지진, 지열발전사업 과실로 촉발된 것인지 입증 안돼" new 랭크뉴스 2025.05.13
47262 ‘교육활동 침해’ 신고, 지난해 4234건…‘영상·녹음 무단배포’ 3배 늘어 new 랭크뉴스 2025.05.13
47261 김문수, 영남 찾아 지지층 결집 호소…"박정희는 위대한 지도자" new 랭크뉴스 2025.05.13
47260 "노재팬? 언제 적 얘기인데"…'화려한 부활' 日 맥주, 1분기 수입맥주 '왕좌' new 랭크뉴스 2025.05.13
47259 '험지' TK찾은 李 "영남·호남, 박정희·DJ 정책 무슨 상관인가" new 랭크뉴스 2025.05.13
47258 ‘공수처 1호 기소’ 김형준 전 부장검사 뇌물수수 무죄 확정 new 랭크뉴스 2025.05.13
47257 이재명 신고 하루만에 품절...'대선 굿즈'로 떠오른 빨강파랑 운동화 new 랭크뉴스 2025.05.13
47256 김문수, 영남권 표심 공략…윤 전 대통령 출당에 “도리 아냐” new 랭크뉴스 2025.05.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