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년전에도 이탈리아에서 동계올림픽이 열렸습니다. 이때는 토리노가 개최도시였죠.

크로스컨트리는 스키를 타고 평지와 오르막이 섞인 설원을 달리는 종목입니다. 거리는 세부종목마다 다른데, 50km를 주파해야 되는 경우도 있다고 하네요.
2006년 토리노 올림픽에서는 여기에 2명의 선수가 팀으로 달리는 경기가 추가되었습니다.
이 '팀 스프린트' 여성부 경기에서 사건이 하나 일어났습니다.

경기가 절반 정도 진행되었을때 캐나다의 사라 레너(Sara Renner)의 스키 폴(ski pole)이 부러지고 만겁니다.
아주 잦은 일은 아니지만, 그렇게 희귀한 일도 아니라는 모양입니다. 특히 이렇게 동시에 단체로 출발하는 경기에서는요.
코스 중간중간에 코치들이 만약을 대비해서 예비 폴 여러개를 들고 대기한다고는 하는데....
위 움짤에서도 볼수 있듯이 당장 한쪽이 부러진 상태에서는 탄력을 받기 위한 이 기술을 쓸 수가 없으니 당황할 수 밖에 없고, 세계 최고의 무대에서는 이런 잠깐의 지연도 치명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다행히도 몇초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이 선수는 새로운 폴을 건네 받았고, 경기를 계속 이어나갔습니다.

캐나다는 막판까지 스웨덴과 치열하게 싸웠지만 2위로 경기를 마무리 지었습니다.
0.6초 차이로 금메달을 놓친 것은 아쉽지만, 한손에 부러진 폴을 들고 있는 상태가 길어졌으면 메달 자체를 생각할 수가 없었을 겁니다. 빠르게 새로운 폴을 준 코치의 역할이 컸다고 봐야겠죠.
그런데 이게 도대체 제목에 있는 올림픽 정신과 무슨 관계냐구요?
사실, 폴을 건네 준 사람은 캐나다 코치가 아니라 노르웨이 코치였습니다. 그리고 위에서노르웨이의 순위를 확인해 보세요.
이러면 이야기가 좀 다르죠?
이 사실을 아는 상태에서 영상으로도 상황을 한번 보시죠.
당시 노르웨이 크로스컨트리 팀의 감독이었던 비요르나르 하켄스모옌(Bjørnar Håkensmoen)의 이 행동은 결론적으로는 자신이 책임진 팀의, 그리고 고국의 메달 하나를 날려버린 것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후 인터뷰에서 그는 스포츠인으로서 당연히 해야할 일을 했을 뿐이라면서,
"이미 전날 밤 팀 회의에서 (그런 상황에선 그렇게 하기로) 이야기를 했습니다."
"우리는 올림픽 정신을 지킬 겁니다. 그게 없다면 우리는 끝입니다. 노르웨이의 모든 스키인들과 코칭스탭들은 이 원칙을 지킵니다"
"도움이 필요한 선수를 외면하고 얻은 승리가 무슨 의미가 있답니까?"
라고 답했습니다.
아쉽다는 반응이 없었던 것은 아닌 모양이지만, 노르웨이 내 여론은 전반적으로 이 감독에게 상당히 호의적이었다고 하네요.

캐나다 여론이요? 당연하게도 그야말로 폭발적이었다고 합니다.
일간지 중 하나는 다음날 1면에 노르웨이어로 감사합니다(TAKK)라는 문구를 크게 써놓았다고 하고, 노르웨이 선수단의 스포츠맨십에 감동한 캐나다인들의 감사 편지와 전화가 주 캐나다 노르웨이 대사관에 쇄도했다고 합니다.
감격한 어느 사업가의 주도로 기부금을 모아 보답으로 메이플 시럽을 선물로 보내자!라는 캠페인도 진행되었다고 하네요.

메이플 시럽은 캐나다가 자랑하는 특산품입니다. 국기에도 단풍잎이 있잖아요? 전략물자로 비축까지 한다고 합니다.
노르웨이 대사 또한 최고의 선물이라고 말했을 정도니 캐나다를 잘 대표하며, 동시에 유럽인들이 실제로 맛볼 일이 많지 않은 이걸 선물로 보내는 건 이상할게 없는데, 그게... 캐나다인들이 이 캠페인에 너무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모양입니다.

노르웨이에 메이플 시럽 540ml가 든 캔7,400개가 도착했거든요....
순수한 메이플 시럽은 물보다 밀도가 커서 1.33g/ml이라고 하니까... 대략 5.3톤입니다.
이 정도면 관세를 물어야 할 양인데, 노르웨이 정부는 취지를 인정하여 수입관세를 특별히 면세해주었다고 하네요.
감사편지와 함께 레시피도 동봉되어 있었다고는 하는데... 시럽 5톤은 혼자 먹기엔 너무 엄청난 양이죠?
미담의 주인공인 호켄스모엔은 "달콤하면서도 조금 색다른 맛이네요. 종종 먹긴 할텐데 하루에 다섯번 먹지는 못할거에요."라면서, 캐나다 대사와 연안 크루즈를 타고 다니면서 항구에 도착할때마다 팬케이크를 구운 후 사람들에게 메이플 시럽을 듬뿍 부어서 나눠줬다고 합니다.
그리고 남은 메이플 시럽의 대부분은 기부에 썼다고 하네요.

2019년에 나온 기사의 사진을 보면 아직도 남은 캔이 좀 있는듯?
이 일로 인해 캐나다-노르웨이 관계가 한차원 더 좋아졌다는 말도 있고, 최근까지도 캐나다에서는 가장 유명한 노르웨이인을 꼽으라면 이 사람의 이름이 많이 나온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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