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0년 신속대응부대 개념으로 창설된 스트라이커 전투단은
가볍고 신속한 군대 트렌드를 적용시켜
빠른 시간에 파병할 수 있도록 만든 부대이다



로드리게즈 훈련장에서 열흘 일정으로 훈련를 시작했다
훈련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는데 이후 8월 7일 사건이 발생한다




마침 훈련장 초소 문이 열린 상태에서
일어난 일에 미군 병사들도 당황했고
뒤이어 그들을 쫓아갔다.





이번엔 인근에 있던 브래들리 장갑차 위로 올라가
점거하며 내려오라는 미군을 무시하고 시위를 진행했으며
여기서 끝냈다면 일부 학생들의
돌발적인 행동과 의견 표현 정도로
끝날 수도 있었으나 문제는 이게 끝이 아니었다

이걸 본 일부 미군 병사들이 성조기를 뺏기 위해
시위대와 실랑이를 벌였으나 막을 수 없었고



현장에 있던 미군과 기자들이 보는 앞에서
국기를 밟고 불태워 훼손시켰으며


25분간 시위가 진행된 끝에 밖으로 쫓겨났으나 밖에서도
구호를 외치며 철조망을 넘어 진입하려다 출동한 경찰에 체포되며
상황은 일단락 됐으며 당시 현장에 있던 기자들을 통해
전달되어 큰 파장을 일으켰는데

확실한 법적 처벌을 요청한다고 밝혔으며


라고 직설적으로 논평하며 유감을 표했다.

한반도의 전쟁을 막는 구국을 위한 투쟁이라고
명분을 밝혔으나 반응은 차가웠다
시위 기획 당시 한총련 내부에서도 시위 진행에
대해 찬/반 여부가 갈렸다고 한다

당시 고건 국무총리는 해당 시위자들에 대해 공식 기자회견에서
엄중히 처벌하라는 발표를 진행했으며 그 다음 주에 총리 공관으로
미군 사령관과 지휘관들을 초청해 한번 더 사과의 뜻을 전달했으며
시위에 참가한 한총련 소속 학생 12명 모두 구속되었다.

2003년은 2002년에 일어났던 미군 여중생 압사 사고과
안톤 오노 사건 등 여러 가지 사건과 이슈가 겹치며
반미 여론이 강해지던 시기로
사회, 온라인 할 것 없이 미국에 대한 비난과
Fucking USA 같은 조롱과 풍자성 게시물이 많이 올라오던 때다.

- 2003년 7월 시위 당시 연행되는 학생들 -
2003년 7월 한총련 학생 20명이 을지로 미군 기지에 난입해
계양된 국기를 불태운 사건이 있었고 불과 한 달 후
8월 미군 훈련장에서 비슷한 사건이 발생한 것으로
이 사건에 대한 국민들과 정부, 언론의 반응은 부정적이었고
반미 감정이 심하다 해도 군 부대에 난입해 국기를 태운 건
선을 넘었다는 반응들이 많았으며
운동권 일부에서도 대중적 지지를
잃게 만든 판단력이 부족한 행위라고 자조 섞인 표현을 했다.

한편으론 나라 망신이며 한미 외교 동맹 관계와
국가 실익에 큰 피해를 줄 수 있으며 역으로 미국 내 반한 감정을
확산시킬 수도 있다는 현실적인 논평과 분석도
많았던 사건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