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스 스터디 - 삼성증권 유튜브 채널
[케이스 스터디]
구독자 244만명. 삼성증권 공식 유튜브 채널의 규모다. 테크 크리에이터 ‘잇섭’(276만명), 경제 전문 채널 ‘삼프로TV’(277만명)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
은행, 증권, 보험을 통틀어 대부분 금융권 유튜브가 대부분 사내 홍보용에 그치는 현실에서 삼성증권은 예외다. 홍진경(176만명), 신세경(145만명) 등 인기 연예인 채널조차 100만~200만 선임을 고려하면, 금융 전문 채널로서 삼성증권의 성과는 더욱 두드러진다. 연예인 채널도 넘는 증권사 유튜브
“이렇게까지 최첨단이라고?” 삼성증권 미디어전략팀 사무실에 들어선 이는 가장 먼저 공간에 놀란다. 일반적인 증권사 부서와 달리 촬영 장비와 편집 모니터가 줄지어 있고, 화면 속에는 최근 출시된 '베오3' 같은 최신 AI 툴과 프로그램들이 쉼 없이 구동된다. ‘이곳이 증권사 맞아?’라는 생각이 들 만큼, 미디어 제작사에 가까운 풍경이다.대중적 수요를 잡아낸 삼성증권의 공식 유튜브도 이곳에서 탄생했다. 해외주식 광고 ‘내일을 향해 사라’는 1천만 조회수를 넘겼고, ISA·절세 계좌 캠페인 ‘난 부럽지가 않아’는 600만 회를 기록했다. 최근 생성형 AI로 제작한 블록버스터풍 광고 ‘씬의 한 수 – 작전명 mPOP’은 270만 조회수를 모으며 “광고인데 재밌다”는 댓글을 쏟아냈다. 증권사의 전통적 문법과는 거리가 먼 콘텐츠들이 연이어 수백만 뷰를 기록하며 히트를 쳤다.
지금이야 영상을 올리면 수백만 조회수, 이른바 ‘K뷰’, ‘M뷰’가 찍히는 채널이 됐지만 오늘의 풍경이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건 아니다. 증권사 유튜브의 ‘개점 시기’는 대부분 비슷하다. 유튜브가 한국에 진출한 2008년 무렵에 채널을 열었다. 내용은 HTS·MTS 사용법 같은 기능 안내 영상이 대부분이었다. 존재감은 미미했고, 고객 접점 채널로 보기 어려웠다.
분기점은 2020년 초 코로나19였다. 대면 영업이 막히고, 투자 정보 습득 창구가 온라인으로 급속히 옮겨가면서 증권사 유튜브의 활용도가 달라졌다. 사내 임원진들이 앞다퉈 유튜브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간신히 채널명만 유지했던 증권사 유튜브에 콘텐츠들이 쏟아졌다. 그러나 다수는 사내 소식이나 홍보 영상에 머물며 구독자 확보에 실패했다. 외주 제작으로 명맥만 유지하는 곳도 적지 않았다. 결국 ‘막강한 전문가와 양질의 리포트’라는 무기를 갖고도, 대중의 언어로 풀어내지 못해 삼프로TV(277만명)·슈카월드(361만명) 같은 크리에이터에게 주도권을 내줬다.
삼성증권은 달랐다. 타 증권사들이 삼성증권보다 먼저 100만 구독자를 넘어섰지만, 이후 성장세가 주춤하며 제자리에 머무른 반면 삼성증권은 2024년 200만 구독자를 돌파하며 단숨에 격차를 벌렸다. 무엇보다 주목할 점은 2030세대 구독자 비중이 60%를 훌쩍 넘겼다는 사실이다. 동학개미와 서학개미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며 투자 수요가 급증하던 시기, 이들을 가장 왕성하게 흡수한 채널이 삼성증권 유튜브였다.
삼성증권의 전략은 단순하지만 명확했다.
보여주고 싶은 콘텐츠가 아니라, 시청자가 보고 싶어 하는 콘텐츠를 만드는 것.
엄지손가락 몇 번에 소비되는 영상 문화 속에서 투자 정보를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시청자를 끝까지 끌어당길 재미가 필요했다. 방일남 미디어전략팀장은 “투자 정보를 정확하게 전달하면서도, 시청자가 볼 수 있도록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를 반드시 포함시키려 했다”고 설명했다. 이는 곧 미디어전략팀이 만드는 모든 콘텐츠의 핵심 원칙이 됐다. 블록버스터급 영상이 증권사에서?
예컨대 팀의 주요 콘텐츠인 ‘투자네컷’은 리서치센터 애널리스트 리포트의 보편적 구조인 회사 개요, 실적, 전망, 투자 결론을 4컷 애니메이션으로 재구성한다. 원작자인 애널리스트와 협의해 오독을 최소화한 뒤 심의에 부친다. 결과적으로 리포트의 ‘핵심 논리’는 유지하고 러닝타임과 진입 문턱은 낮추는 게 핵심이다.지난 3월 11일 첫 번째로 소개된 투자네컷은 방산·비철금속 기업인 풍산을 다뤘다. 풍산의 주요 사업과 지난 실적, 앞으로 기대되는 기업의 행보를 알기 쉽게 제시했는데 이틀 만에 23만 회가 넘는 조회수를 기록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해외주식 거래 가능 국가가 30개에 달한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기획한 ‘투투픽(투자+투어)’ 시리즈도 눈길을 끈다. 해외 투자라고 하면 흔히 미국·일본·홍콩 정도만 떠올리지만 실제로는 유럽을 포함해 30개국 거래가 가능하다. 방 팀장은 “투자자들이 잘 모르는 정보를 어떻게 알리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국가별로 가장 많이 거래하는 종목을 뽑아 소개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영상의 구성은 단순하다. 독일의 관광지나 랜드마크 이야기를 하다가 자연스럽게 대표 기업을 끼워 넣는 식이다. 기업만 나열했다면 건조했을 이야기가 여행과 결합하면서 친근하게 다가온다. 그는 “재미있게 들어왔다가 원문 리포트를 찾아보는 계기를 만드는 게 목적”이라고 말했다. 덕분에 ‘해외투자=미국과 일부 국가’에 머물던 인식의 폭을 유럽과 신흥국까지 넓히는 효과가 있었다는 평가다.
최근 화제가 된 건 단연 생성형 AI로 제작한 영상이다. 270만 회 이상을 기록하며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MTS 광고 ‘씬의 한 수 – 작전명 mPOP’은 배경·인물·카메라 무빙·효과음까지 전 과정이 생성형 AI로 구현된, 전통적 금융 광고의 문법을 뒤흔든 작품이다. “광고인데 재밌다”는 댓글이 잇따를 만큼 반응이 좋았다. 방 팀장은 “‘이거 촬영에 얼마 들었냐, 블록버스터급인데 비용이 엄청난 거 아니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며 “사실은 중복된 출연자가 단 한 명도 없는 100% AI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이 밖에도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화제가 되자 이를 패러디한 ‘라이언보이즈’가 등장해 투자를 노래하고 트로트 장르를 빌려 제작한 뮤직비디오 ‘우상향 인생’은 AI 작곡 툴로 음원과 보컬을 구현해 ‘투자 트롯’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열었다. 언뜻 보면 증권사 콘텐츠라고 상상하기 힘든 시도들이지만 딱딱한 리포트를 예능·드라마·애니메이션의 문법으로 재해석하며 ‘재미와 정보’를 동시에 잡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핵심은 누가 칼자루를 쥐었는가보수적인 금융권에서 이런 실험이 가능했던 이유는 콘텐츠 제작의 전권을 현업 전문가와 미디어 전문가가 결합한 미디어전략팀에 맡겼기 때문이다. 많은 금융사에서 디지털 채널은 여전히 임원진의 승인 단계를 거쳐 ‘사내 홍보 영상’ 수준에 머문다. 윗선의 통제 속에서 현업의 감각은 반영되지 못하고 콘텐츠는 산으로 가기 쉽다.
삼성증권은 콘텐츠 제작의 전권을 미디어전략팀에 위임했다. 투자 정보 콘텐츠라면 리포트의 핵심 논리는 리서치센터 애널리스트가 검증하되 영상의 표현과 연출은 전적으로 팀에 맡겼다.
미디어전략 팀원 대부분은 PD, CG, 작가 등 영상 제작에 특화된 전문가들이다. 금융 지식은 얕지만 소비자 눈높이에서 증권 콘텐츠를 다시 읽어내는 데 강점을 지녔다. 방 팀장은 “우리는 내부 시각에 갇혀 ‘재밌겠다, 고객이 원하겠지’라고 생각하지만 실제 고객은 어렵다고 느낄 수 있다”며 “고객과 비슷한 연령대 ‘주린이’ 팀원들이 소비자 눈높이에서 콘텐츠를 만든다”고 설명했다. 현업 전문가의 금융 이해도와 미디어 전문가들의 표현력이 결합하면서 신뢰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확보하는 콘텐츠 제작이 가능했다. 이 시너지 구조가 삼성증권 콘텐츠 전략의 핵심 경쟁력이다.
전문가에게 헤게모니를 쥐여주는 방식은 경영사의 고전적 성공 사례에서 반복된다. TV 시장의 흐름을 바꾼 삼성전자의 ‘보르도TV’가 대표적이다. 당시 최지성 사장은 “디자인팀의 원안을 살려라”라는 한마디로 기술 부서가 아닌 디자인팀의 손을 들어줬다. 그 결과 얇은 두께와 세련된 외관을 구현한 보르도TV는 소니를 제치고 삼성 TV를 세계 1위로 끌어올렸다. “형상은 돌 속에 있다. 나는 불필요한 부분을 깎아냈을 뿐”이라는 예술가 미켈란젤로의 말처럼 본질은 이미 안에 있었고 전문가에게 권한을 맡긴 결정이 그 본질을 드러낸 것이다.
어렵고 방대한 금융투자정보란 ‘돌’을 콘텐츠 전문가에게 맡겨 대중이 이해할 수 있는 ‘형상’으로 깎아낸 삼성증권 역시 마찬가지다. 244만 구독자란 전례 없는 성과가 그 증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