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신 마비 판정을 받은 뒤 9년간 재활에 매달린 박진성씨
휠체어에서 다시 서기까지, ‘할 수 있는 작은 일들’의 힘
아들의 사고는 아버지의 목회와 삶의 방향도 바꿔놓았다
휠체어에서 다시 서기까지, ‘할 수 있는 작은 일들’의 힘
아들의 사고는 아버지의 목회와 삶의 방향도 바꿔놓았다
2017년 7월 사고 당시 울산대병원에 입원 중인 박진성씨의 모습. 오른쪽은 지난해 8월 박위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박씨가 홀로 15초를 버티며 서 있는 모습. 박씨 제공·인스타그램 캡처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전신 마비 판정 이후 끝없는 의문 속에 빠졌던 한 청년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할 수 있는 작은 일들을 놓지 않고 하나씩 이뤄내며 미국 대학에서 공부하는 현재를 살아내고 있다. 믿기 어려운 여정이지만 결국 이뤄냈다.
9년에 걸친 재활과 기다림, 그리고 삶의 방향을 다시 붙잡게 한 그의 결단은 지난해 8월 짧은 영상으로 드러났다. 인스타그램에 공개된 영상 속에서 그는 휠체어에서 홀로 일어나 15초간 서 있었다. 2017년 여름, 경추 골절 사고를 당한 박진성(28)씨였다. 그 모습은 공개 직후 410만 회가 넘는 조회수를 기록하며 수많은 이들의 시선을 멈춰 세웠다.
박씨가 다시 서기를 연습하는 동안 목사인 아버지는 장애인과 함께하는 교회를 세우는 길을 걷기 시작했다. 최근 국민일보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만난 두 부자는 절망의 한복판에서 시작된 고난이 어떻게 사명으로 바뀌었는지를 담담히 들려주었다.
사고 이후 망가진 청년의 삶
지난해 8월 서울 종로구 태재대학교에서 박진성씨와 그의 아버지 박형우 목사가 함께 찍은 사진. 박씨 제공
박씨는 19세에 친구들과 경북 경주의 펜션으로 휴가를 떠났다. 술자리가 이어진 새벽, 그는 수영장에서 다이빙하다 머리가 바닥에 부딪히며 경추 골절 사고를 당했다. 물속에서 17분여간 심정지 상태로 있다가 구조된 그는 대학병원으로 이송됐다.
당시 의료진은 “뇌가 심하게 부어 주름이 안 보일 정도”라며 “의식을 회복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사흘 만에 눈을 떴다. 여전히 삽관 상태였고, 섬망 증세 속에서 수술대에 올랐다. 의식을 되찾은 뒤에야 전신 마비 판정과 사고 경위를 들을 수 있었다.
박씨는 “처음엔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줄 알았다”며 “두세 달이면 다시 회사에 다니고, 예전처럼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울산대학병원과 신촌세브란스병원을 거쳐 여러 재활병원을 전전하며 약 1년간 병원 생활을 이어갔다. 박씨는 “아침마다 ‘오늘은 좀 나아졌겠지’ 하고 눈을 떴지만, 늘 그대로인 몸 상태가 가장 절망적이었다”고 말했다.
재활의 시간, 그리고 신앙 회복
박씨가 2017년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로봇 재활을 진행하고 있는 모습. 박씨 제공
퇴원 이후에도 병원을 오가는 재활의 시간은 계속됐다. 손가락을 정교하게 움직이기는 여전히 어렵지만, 오른쪽 다리와 발가락에는 조금씩 힘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는 가능한 기능을 최대한 활용하며 혼자 생활하는 연습도 이어갔다.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도 많았다. 박씨는 “지금도 혼자 할 수 없는 일이 생기면 마음이 무너질 때가 있지만 신앙이 자리 잡은 뒤로는 그 감정이 오래 머물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의 신앙은 처음부터 회복의 중심에 있지 않았다. 목회자 가정에서 자랐지만 고교 시절부터 교회를 떠났고, 사고 이후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는 “기적적으로 살아났는데도 신앙은 변하지 않았다”며 “기도도 ‘빨리 회복해서 나가 놀게 해달라’는 내용뿐이었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병원 생활이 길어지면서 그는 다시 교회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새벽기도와 집회를 오가던 중,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해 질문이 생겼다. 그 순간부터 그는 삶의 방향을 다시 고민하기 시작했고, 관련 책과 강연을 찾아보며 스스로 답을 구해 나갔다.
비슷한 시기 재활의 전환점도 찾아왔다. 서울에서 열린 어느 집회에서 재활센터를 운영하던 한 집사를 만나면서다. 그는 “비용은 걱정하지 말고 꾸준히 오라”며 치료를 제안했다. 처음에는 누군가의 지지가 있어야만 설 수 있었고, 그 상태로 수년을 버텼다. 그러던 어느 날 “손을 놓고 버텨보자”는 제안을 받았다. 그렇게 10초, 15초를 견디며 서 있었고, 반년 뒤에는 1분 50초까지 혼자 설 수 있게 됐다.
“할 수 있다” 유튜브 위라클과의 만남
2022년 8월 서울 위라클 사무실에서 박위와 직원이 함께 박진성씨의 생일을 축하해주고 있는 모습.
삶의 또 하나의 전환점은 사고가 있던 그해 겨울, 전신 마비 유튜버로 현재 활동하는 박위와 만남이었다. 척수 장애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아버지는 전국의 척수장애인 150여명에게 연락을 돌렸고, 그 과정에서 박위를 소개받았다.
박위는 울산대학병원으로 박씨를 찾아왔다. 박씨는 “이전에도 아버지 소개로 휠체어를 탄 이들이 찾아왔지만 ‘재활로 회복되기는 어렵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그게 가장 싫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박위는 달랐다. 그는 “우리도 할 수 있다”고 했다. 휠체어에 앉아 있으면서도 당당한 태도는 박씨의 마음을 움직였다.
2022년 위라클 팬미팅 현장.
퇴원 후 집으로 돌아왔지만 세상은 여전히 낯설었다. 그러던 중 유튜브가 유행하는 것을 보고 박씨는 영상 편집을 독학으로 배우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박위로부터 “유튜브를 시작하려는데 편집할 사람이 없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렇게 그는 박위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위라클’의 초창기 편집자가 됐다. 박씨는 4년간 위라클과 함께하며 전국을 다니며 활동했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도 한층 넓어졌다.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가고 싶다는 마음으로 그는 3년 전 위라클을 떠나 미국 대학 진학에 도전했다. 학점은행제 과정을 거쳐 태재대 글로벌 로테이션 프로그램에 합격했고, 지난해 8월 미국에서 첫 학기를 마쳤다. 현재 박씨는 먼저 유학을 떠난 여동생의 집에 머물며 생활하고 있다. 수업이 있는 날에는 친구들과 함께 과제를 하고 주말이면 야구장을 찾아 경기를 관람한다.
최근 방학을 맞아 미국에서 가족과 함께한 여행.
병원과 재활센터가 삶의 전부였던 시간을 지나 그의 하루는 조금씩 ‘평범한 청춘의 시간’으로 채워지고 있다. 최근에는 방학을 맞아 미국을 찾은 부모님과 함께 가족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박씨는 “사고 직후엔 가족과 여행을 떠나는 삶을 상상하기조차 어려웠다”며 “이제는 같은 공간에서 같은 풍경을 바라보며 웃을 수 있게 된 것이 무엇보다 감사하다”고 말했다.
아들의 사고, 아버지의 목회가 바뀌다
아들의 사고는 아버지인 박형우(56) 목사의 목회 방향까지 바꾸어 놓았다. 박 목사는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라는 질문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며 “기도하려 해도 방향을 잃어 기도가 나오지 않았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아들의 병원 생활이 길어지면서 그는 지난 30년의 목회를 돌아보게 됐다. 대형교회에서 복지와 청소년 사역을 담당했지만, 아들 사고 이후에는 휠체어를 탄 이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는 “아들이 교회로 돌아오긴 했지만, 예배 외의 교회 생활은 거의 불가능했다”며 “그제야 교회가 장애인을 충분히 품고 있는지 스스로 묻게 됐다”고 말했다.
울산세움교회에서 주일 예배를 인도하는 박형우 목사의 모습.
그 무렵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고신울산노회에서 개척 지원 공고가 났다. 그는 이를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장애인 교회를 계획해 지원했고, 선정됐다. 그렇게 ‘육체도 세우고, 영혼도 세운다’는 비전을 품은 울산세움교회가 2019년시작됐다. 현재 교회에는 휠체어를 사용하는 성도 8명을 비롯해 활동 보호사까지 20명 안팎이 예배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지금, 다시 일어서려는 이들에게
2025 9월 샌프란시스코자이언츠 야구장에서 찍은 사진.
사고 전, 아버지와 아들은 주일예배에서 잠시 얼굴을 마주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지금은 거의 매일 통화하며 하루의 일과와 삶의 이야기를 나눈다. 박 목사는 “아들의 사고를 겪으면서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많이 달라졌다”며 “지금 맡고 있는 사역과 일상 속에서 감사할 부분들을 더 자주 발견하게 됐다”고 말했다.
박씨는 새해를 맞았지만 어려움 속에서 주저앉은 이들에게 다시 일어설 용기를 전하고 싶다고 했다.
“전신 마비 판정을 받았을 때 제 세상은 병원 침대가 전부일 거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눈 앞에 놓여있는 ‘할 수 있는 작은 일들’을 따라가다 보니 저와 아버지에게 전혀 다른 삶이 펼쳐졌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쉽지 않은 날들이 있지만 그럼에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됐습니다. 독자 여러분도 다시 일어설 용기를 얻는 한 해가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