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대통령이 1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진행된 내란 우두머리 혐의 2차 결심공판에 출석해 자리에 앉아 윤갑급 변호사와 김계리 변호사가 대화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제공 영상 캡쳐
윤석열 전 대통령은 내란 우두머리 혐의 사건 결심공판에서 12·3 비상계엄에 대해 “결코 국헌문란이 될 수 없다. 폭동이 될 수 없다”면서 “대통령의 국가긴급권 행사는 내란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재판장 지귀연 부장판사)는 13일 오전 9시 30분 윤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사건 결심공판을 열었다. 윤 전 대통령 측 서류증거(서증) 조사가 장시간 이어진 뒤 내란 특검은 윤 전 대통령에게 사형을 구형했다.
윤 전 대통령의 최후진술은 14일 0시 11분쯤 시작됐다. 윤 전 대통령은 준비한 최후진술을 읽어나가다가 일부분은 건너 뛰었다. 최후진술은 1시간 30분만인 오전 1시 41분쯤 종료됐다.
윤 전 대통령은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부인하면서 “이 사건이 갖는 헌법적 함의와 대통령으로서 국가 위기 상황에서 헌정 붕괴와 국정 마비를 막으려 했던 엄중한 책임감에 대해 살펴봐달라”고 했다.
윤 전 대통령은 내란 특검의 공소장에 대해 “객관적 사실과 맞지 않는 망상과 소설일 뿐”이라고 했다. 비상계엄에 대해서는 “국가비상사태를 주권자인 국민에게 알리고, 극복하는데 함께 나서주십사 호소하기 위해서”라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을 선포한 이유로는 최재해 당시 감사원장과 이창수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을 더불어민주당이 탄핵한 것을 꼽았다. 윤 전 대통령은 “헌법기관장인 감사원장을 탄핵한다는 것은 한마디로 헌정 시스템을 뒤엎겠다는 이야기”라면서 “국회의 독재에 주권자인 국민을 상대로 비상벨을 울릴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다음은 윤 전 대통령 최후진술 전문.
윤석열 전 대통령 최후진술
존경하는 재판장님, 재판부 판사님
1년 가까운 긴 시간 공정하고 현명한 소송지휘로 충실한 심리를 해주셔서 깊이 감사드립니다.
불과 몇 시간의 계엄을 내란으로 몰아 국내의 모든 수사기관들이 달려들어 수사했고, 이후에 초대형 특검까지 만들어져 수사를 했습니다. 임무에 충실했던 수많은 공직자들을 상대로 원하는 진술을 하지 않으면 마구잡이로 입건해 신병을 확보하고 무리한 기소를 남발하였습니다. 현대 문명국가 역사에 이런 일이 있었나 싶습니다. 하지만 “숙청과 탄압”으로 표현되는 광란의 칼춤 속에서도 법과 원칙에 따라 중심을 잡고 재판을 이끌어 주신 재판부의 노고에 경의를 표합니다.
어느 방송인은 “방송으로 전국에, 전 세계에 시작한다고 알리고 두세 시간 만에 국회가 그만두라고 그만두는 내란 보셨습니까?”, “총알 없는 빈총 들고 하는 내란 보셨습니까?”라고 말하였습니다. 이 말이 지난 1년간 이 나라를 휩쓴 광풍의 허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이 사건 공소장은 객관적 사실과 맞지 않는 망상과 소설일 뿐입니다. 저도 과거 26년간 수사와 공판 업무를 담당했지만, 이렇게 지휘체계도 없이 중구난방으로 여러 기관들이 미친 듯 달려들어 수사하는 것은 처음 봅니다. 올바른 지휘체계가 없으니 제대로 된 판단도 없이 무조건 내란몰이라는 목표로 수사가 아닌 조작과 왜곡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를 오래전부터 지배해 온 어둠의 세력들과 국회에서 절대다수의 의석을 가지고 있는 민주당의 호루라기 소리에 맹목적으로 달려들어 물어뜯는 이리떼들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리떼들의 내란몰이 먹이가 된 바로 그 비상계엄령을 저는 2024. 12. 3. 밤 10시 30분경 선포하였습니다.
반국가세력, 체제전복세력, 외부 주권침탈 세력과 연계하여 거대 야당 민주당이 거짓 선동으로 여론을 조작하고 정부와 국민 사이를 이간질했습니다. 반헌법적인 국회 독재를 벌이며 헌정을 붕괴시키고 국정을 마비시키며 나라가 망국의 위기에 처하도록 했습니다.
저는 대한민국의 독립과 국가 계속성, 헌법수호의 막중한 책무를 이행해야 하는 대통령으로서 이러한 국가비상사태를 주권자인 국민에게 알리고 이를 극복하는데 함께 나서주십사 호소하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했습니다. 국회의 반헌법적인 독재로 나라가 위기에 처해있는데 주권자인 국민을 깨우는 일 이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대의제 권력의 망국적 패악에 대해 주권자가 직접 나서서 제발 정치와 국정에 관심을 가지고 날선 비판으로 감시·견제를 해달라는 호소였습니다.
국회의 경비와 질서 확보를 위해 투입된 소수 병력 중 일부는 비무장 상태로 국회 담벼락 아래 그냥 앉아 있었고, 일부는 빈총만 들고 국회 마당에서 수천 명의 군중에 둘러싸여 폭행당했습니다. 누구도 국민을 억압하거나 국회의원들의 계엄해제 요구 의결을 위한 의사일정을 방해하지 않았습니다.
특전사 92명과 수방사 15명이 밤 12시 무렵 국회 경내로 들어갔지만 이미 엄청난 인파가 들어와 있고 군은 너무나 소수여서 질서 확보 업무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뒤늦게 추가 병력이 국회 인근에 도착했지만 바로 계엄 해제 요구 의결안이 통과되자 전 병력은 즉각 철수하였습니다.
선관위에는 계엄법 제7조에 의한 행정·사법 사무 관장 권한에 따라 선거관리 시스템의 보안 점검을 하려고 들어갔지만, 시간과 준비 부족으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서버 장비의 사진만 찍고 나왔습니다. 그동안 선거소송에서 가짜 투표용지가 다량 발견되었고, 불과 1년 전 국정원의 선관위 전산시스템 보안 점검 결과 국가기관이 갖추어야 할 기준에 현격히 미달하여 외부 해킹에 무방비인 심각한 상황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선거제도는 현대 대의민주주의 국가의 통치 질서를 형성하는 핵심적인 제도입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의 선거관리는 그 투명성과 공정성이 확실하게 담보되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관위가 투명하고 공정한 검증을 거부하고 있었기에 선거관리의 중요성과 국민적 관심을 고려하여 점검하도록 한 것입니다.
이들이 국헌을 문란하게 했습니까?
폭동을 일으켰습니까?
계엄선포 시부터 해제 시까지 6시간 걸렸으나 새벽에 계엄 해제를 위한 국무회의를 소집하는데 시간이 지체되었을 뿐이지, 실제로는 계엄선포 두 시간 만에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 의결이 이루어지자 즉시 병력을 철수시켜 계엄 상황을 종료하였습니다. 아울러 저는 국무회의 소집 중에 미리 계엄 해제 대국민 담화도 발표하였습니다.
처음에는 국민들께서 도대체 대통령이 왜 계엄을 선포했는지 어리둥절해하셨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많은 국민이 계엄을 선포하게 된 절박한 상황을 알게 되셨고, 제가 탄핵소추되어 탄핵심판에 임하게 되자 국민의 과반수 이상이 저에 대한 탄핵에 반대하셨습니다. 계엄선포의 이유와 불가피성을 공감하셨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많은 국민들께서 제가 계엄선포라는 비상벨을 울린 이유에 대해 공감하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12.3 비상계엄은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절의 계엄과 같이 국민을 억압하는 군사행정 독재가 아니라 국민의 자유와 주권을 지키고 나라와 헌정을 살리기 위한 것으로 생각하시는 국민들이 여전히 많습니다. 특히 미래세대인 청년과 학생들은 계엄의 이유와 나라의 위태로운 상황에 대해 인식하며 자신들의 역할과 행동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으로 압니다.
저에 대한 탄핵을 결정한 헌법재판소조차도, “피청구인인 대통령은 행정부의 수반이자 국가원수로서 야당의 전횡으로 국정이 마비되고 국익이 현저히 저해되어 가고 있다고 인식하여 이를 어떻게든 타개하여야만 한다는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게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 사건 계엄선포 및 그에 수반한 조치들은 국정 최고책임자로서 피청구인이 가지게 된 이러한 인식과 책임감에 바탕을 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라고 판시하였습니다.
제가 계엄을 선포한 이유와 필요성에 대해서는 비상계엄에 대한 찬성과 반대의 입장과 관계없이 모두가 그 목적을 정확히 알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폭동이나 국헌문란의 목적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체제전복세력과 반국가세력들은 2022. 3. 대선 직후부터 아직 취임도 하지 않은 대통령 당선인을 상대로 선제탄핵 시위를 벌이기 시작했습니다. 대선 불복이었습니다. 12.3 비상계엄 선포 전까지 무려 178회의 퇴진·탄핵 시위가 지속적으로 이어졌습니다. 이 집회에는 거대 야당인 민주당 인사들도 연단에 섰습니다. 단순한 일부의 반정부 시위가 아니라 제도권과 연계된 조직적 퇴진·탄핵 시위였던 것입니다.
국정원에서 수사한 여러 간첩단 사건에서도, 간첩들은 자유민주주의와 한미동맹에 충실한 윤석열 정부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흔들고 마비시키라는 지령을 받고 있었음이 확인됩니다. 이들은 북한의 지령을 전파·공유하며 쉴 틈 없이 국론을 분열시켜 왔습니다. 민주당 역시 이들과 연계하여 헌법상 입법부의 권한을 남용하여 공직자들을 줄탄핵하고 입법 및 예산 폭거를 하며 국정마비를 획책했습니다.
선출된 정부의 국정과제 이행에 필요한 입법에 발목을 잡아 일을 할 수 없게 만든 것은 다들 알고 계실 것입니다. 우리 헌정사와 의회사에 유례가 없었던 일들이 수없이 자행되었습니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헌법 질서, 우리 안보와 경제의 주춧돌인 한미동맹, 북핵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한미일 안보협력에 충실하게 매진하는 정부를 거대 야당이 체제전복세력 및 반국가세력들과 연계하여 국회의 헌법상 권한을 남용함으로써 식물정부로 만들었습니다. 우리의 헌정질서를 뒤엎고 자유진영 국가들과의 연대를 붕괴시키려 한 것입니다.
특히, 북핵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한미동맹을 핵기반으로 강화하고 한미일 해군·공군 협력을 통해 공동으로 미사일 대응을 하는 것을 집요하게 방해하였습니다. 이러한 매국선동과 핵심 국익의 지속적인 훼손이 반국가세력이 아니면 무엇입니까? 애국세력입니까?
자유민주주의에 충실하게 나가려는 정부가 아무 일도 못 하게 경제와 민생에 관한 입법을 거부하면서 위헌적인 법률을 양산하고, 안보와 경제를 짓밟았습니다. 핵심 국익을 훼손하는 법률을 반복 상정함으로써 대통령의 거부권을 유도하여 국론분열을 야기하였습니다.
국정원의 대공 수사권 폐지에 이어 국가보안법 폐지를 추진함으로써 체제전복을 빌드업하였고, 국가기밀과 첨단 산업기술이 중국으로 줄줄이 유출되는 심각한 현실에서 간첩죄 개정도 반대하였습니다. 중국의 반간첩법에 대한 최소한의 상호주의 대응도 못하게 한 것입니다.
국가안보에는 방산 기술과 산업인프라 확충, 방산 시장 확대와 방산 협력 국가 간의 연대가 매우 중요합니다. 거대 야당이 장악한 국회는 방산 수출에 국회 동의를 받으라는 법안을 추진하여 자유진영 국가들과의 안보협력에 칼을 들이대고 북한, 중국, 러시아가 반대하는 방산 수출에 제동을 걸고 방산 기술 보안을 위태롭게 하였습니다.
핵심적인 안보 예산에 대한 거대 야당의 폭거를 보면 더욱 기가 막힙니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공격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한 감시·정찰 자산과 미사일 방어 요격 시스템 사업예산을 대폭 삭감하여 사업추진이 불가능하도록 했습니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에 대한 확실한 대응은 안보뿐 아니라 국가 위험도를 줄임으로써 투자 유치와 경제 활성화에 매우 긴요한 것입니다.
국방인력의 허리에 해당하는 부사관과 초급간부에 대한 열악한 처우로 이탈이 심했습니다. 이들 전문성 있는 인력들을 장기근무로 유도하려는 처우개선 예산도 틀어막았습니다. 배정된 예산은 국민의 세금 부담이 그리 큰 것도 아니었습니다. 누구의 이야기를 듣고 실행하는 것인지 이와 같은 핵심 예산만 딱딱 집어내어 삭감하는 것에 기가 찰 노릇이었습니다.
치안예산과 관련하여 대표적인 부분은 마약 수사를 막기 위한 인건비 삭감과 특활비 폐지입니다. 민주당 정부 때에도 마약 수사 조직을 경찰로 일원화하여 관록과 실력 있는 검찰의 마약 수사 조직을 폐지하더니 이번에는 경찰의 수사 예산까지 삭감하였습니다. 마약은 미래세대를 병들게 하는 것일 뿐 아니라 마약 시장을 장악한 세력은 모든 범죄조직을 장악하고 결국 한 국가의 정치·사회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됩니다. 오늘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부도덕한 하이브리드 비전투 전략·전술에서 마약전에 대한 국가적 대응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면서도 일부러 무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민주당은 마약 대응에 이토록 소극적이고 움츠러드는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어느 나라 정당이고 어느 나라 국회입니까?
검찰 수사권과 수사 활동비 폐지와 아울러 부정부패와 대형 금융 사기 사건을 전문성이 부족한 기관에 몽땅 넘겼습니다. 그러나 정적과 반대세력을 탄압하기 위해서는 수사와 공소를 모두 담당하는 초대형 특검들을 만들어 천억 원의 국민 혈세를 쏟아붓고 토끼몰이식 수사와 소설로 기소하고 여론선동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윤석열 정부 당시 공직자 줄탄핵은 22건이 발의되어 일부는 사퇴하고 일부는 탄핵소추 되어 직무가 정지되었습니다. 탄핵심판에는 보통 6~9개월, 길게는 1년 넘게 걸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장기간의 직무정지와 국정마비를 막기 위해 사퇴하더라도 후임자 선정, 인사검증, 인사청문까지 많은 절차와 시간이 소요됩니다. 취임한 이후에도 업무를 파악하고 조직 장악에 시간이 필요합니다. 해당 기관의 직원들도 새로운 기관장의 업무방침에 적응하기 위해 시간이 걸리고 이에 적응하느라 고생을 해야 합니다.
우리 헌정사 70여 년간 공직자 탄핵 발의와 소추는 거의 없었습니다. 윤석열 정부에서만 비상계엄 전까지 22건, 저에 대한 탄핵 결정 전까지 30건에 이릅니다. 심지어 대통령을 탄핵소추한 후에는 다시 국무총리를 탄핵소추하였고 부총리까지 탄핵하려 하였습니다. 과연 이것이 정상적인 탄핵소추권의 행사입니까? 국회에서 다수 의석만 가지면 이런 입법·예산 폭거와 무고한 공직자 줄탄핵을 마음껏 하도록 헌법이 허락한 것입니까?
이는 분명한 헌법상 권한 남용이고 헌법의 정신과 취지에 명백히 위배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반헌법적인 국회 독재를 왜 이렇게 집요하게 벌이는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자유민주주의 체제, 자유시장경제 체제, 자유진영과의 연대라는 헌법상 지향해야 할 국가의 노선을 뒤엎기 위한 것 아닙니까? 체제전복을 노리는 것 아닙니까?
감사원장과 서울중앙지검장 탄핵을 추진하는 것을 보고 저는 경악했습니다.
감사원장은 민주당 정부가 임명한 감사전문가로서 정치적인 인물도 아닙니다. 당시에 선거관리위원회가 벌인 초유의 채용비리 사건이 터졌습니다. 약 1천 명이 마치 가족회사처럼 불법채용되었다는 것이었고, 국민권익위원회의 기초조사를 거쳐 감사원이 감사를 하였습니다. 또한 민주당 정부 시절 사드 배치 관련 국가기밀을 중국 측에 유출한 안보 관계자들에 대한 감사를 진행하여 검찰에 수사 의뢰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반드시 필요하고 적법한 감사에 대해 민주당은 감사원장 탄핵으로 감사원의 업무를 방해하였습니다.
이런 사정을 보면 선관위와 민주당의 유착, 국가기밀 유출이라는 간첩 이적 행위에 대한 조직적 비호를 대놓고 드러내는 것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헌법기관장인 감사원장을 탄핵한다는 것은 한마디로 헌정 시스템을 뒤엎겠다는 이야기와 다르지 않습니다. 전국의 모든 공직자와 산하 기관, 국영기업체, 금융위, 공정위, 금감원 등을 감사하는 감사원장이 무슨 해임 사유가 될 만한 비리가 있는 것도 아닌데 탄핵하여 직무정지를 시킨다면 국가행정과 공직기강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 헌정사는 물론 세계 헌정사에도 초유의 일입니다.
서울중앙지검은 부패, 경제 등 중요 사건의 50% 이상을 다루는 핵심 수사 사법기관입니다. 자신들의 부패를 수사하는 검사들을 압박하고 줄세우기 위해 탄핵을 추진하는 것을 보고 저는 ‘이제 판결이 마음에 안들면 판사도 탄핵하겠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탄핵소추권을 가지고 광란의 칼춤을 추고 결국 헌정을 무너뜨리겠다는 것입니다. 우리 헌법은 결코 이런 국회, 이런 의회주의를 허용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민주당에서 감사원장과 서울중앙지검장 탄핵을 추진하는 것을 보고 그때까지는 인내해 왔으나, 이제는 망국적인 국회의 독재에 주권자인 국민을 상대로 비상벨을 울릴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유민주주의와 공화제를 기반으로 하는 헌정질서가 붕괴되고 외교·안보·경제·미래투자·공직기강·법집행·수사 사법 등 국가기능의 정상적인 수행이 현저히 위태로워진 상황은 과거 우리나라에서 선포된 비전시 계엄 중 가장 위중한 국가비상사태라고 판단하였습니다.
다만 국가비상사태를 초래한 원인이 거대 야당이 지배하는 국회이기 때문에 대의제 권력의 패악과 독재를 주권자인 국민들에게 알리고 호소하며 깨우는 것 이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2024. 11. 말경 김용현 국방부장관을 한남동 대통령 관저로 오게 했습니다. 감사원장 탄핵에 관해 이야기를 하면서, 거대 야당이 헌법상 권한을 남용해서 헌정질서를 무너뜨리고 국정을 마비시키며 망국의 위기 상황이 되었다는 점을 이야기했습니다. 과거 비전시 계엄이 내려진 ① 1964. 한일회담 반대 시 6.3 사태 ② 미·중 데탕트와 미군 철수에 따른 1972. 10. 17. 특별선언, ③ 1979. 10. 26. 대통령 급서와 같은 상황보다 더 심각한 위기 상황이 되었음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거대 야당이 헌법상 권한을 남용해 헌정을 파괴하고 있지만, 저는 헌법상 대통령의 국가긴급권을 헌법의 틀 안에서 행사하고 주권자인 국민들에게 호소하여 국민을 깨우고 각성하게 하는 것으로 헌정 붕괴와 국정마비를 회복시키고자 한다고 하였습니다. 김용현 장관에게 헌법상 국가비상사태 선언은 곧 비상계엄 선포이니, 이를 검토해서 보고해 달라고 지시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몇 가지 사항을 분명히 해 두었습니다. 먼저, 이 계엄은 과거 계엄과는 다른 것이며, 여소야대 상황이니 이른 시간 내에 국회가 계엄해제 요구를 의결할 것이고 빠르면 반나절, 길어야 하루면 계엄이 해제될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또한 실시간 방송을 통해 계엄선포 대국민 담화를 할 것이며, 병력은 2개 중대 규모 250~280명으로 2개 팀을 구성하여 1개 팀은 국회에 몰려들 인파에 대한 질서유지를, 다른 1개 팀은 몇 군데의 선관위 전산시스템 서버 소재지에 각각 몇십 명씩을 보내 보안 시스템을 점검하고 국정원이 1년 전 지적했던 망분리, 방화벽, 비밀번호 문제 등이 시정되었는지 확인하도록 한 것입니다.
한편, 출동 병력에 대해서는 실탄 소지를 금하고 안전사고에 만전을 기하기 위해 경험 있는 부사관 이상으로 편성하되, 대통령의 계엄선포 대국민 담화 이후에 소속 부대에서 출발시키도록 하였습니다. 국회에 투입되는 병력도 경비와 질서유지를 하는 것이니만큼 국회의원과 국회 관계자들의 출입과 업무는 지장이 없도록 하라고 지시하였습니다. 당시 국회는 회기 중이었으므로 국회에 수천 명의 인원이 있어 250~280명의 병력으로 질서유지가 될 수 있을까 싶었지만, 투입 규모가 많아지면 불안감 조성과 안전사고 위험이 있다고 판단하여 소수의 투입 규모를 유지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계엄선포는 보안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김용현 장관 혼자 검토하고 준비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김용현 장관은 과거 합동참모본부에서 부장, 본부장을 지냈기 때문에 합참 계엄과 매뉴얼 정도는 잘 알고 있을 것으로 판단하였습니다.
실제 계엄선포 대국민 담화는 12. 3. 22:23~30 이었으며, 계엄선포 기준시는 23:00, 군이 국회에 도착한 시간은 24:00경이었고, 출동한 병력은 특전사 92명, 수방사 40명이었습니다. 특전사 77명은 국회 마당에, 나머지 15명은 본관에 위치하였고, 수방사 15명은 아예 총도 내려놓은 완전 비무장 상태로 국회 경내로 들어가 7번 출입문 앞에 앉아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이후 추가 투입된 병력은 계엄해제 요구 의결 시인 12. 4. 01:03 무렵에 국회 본관 뒤편에 도착하였으나 계엄해제 요구 의결 직후 즉시 철수하였습니다.
국회 마당에 있던 특전사 대원 77명은 민간인들과의 충돌 금지 지침에 따라 질서유지는커녕 시민들로부터 폭행을 당하면서 자리를 유지하기가 버거웠고, 계엄해제 요구 의결 직후에는 시민들에게 공손하게 인사하고 철수하였습니다. 국회 본관에 들어간 15명도 국회 직원들이 소화기를 분사하자 이를 피해 도망다니기 바빴으며, 수방사 병력은 민간인들과 어떠한 접촉도 아예 없었습니다.
계엄선포 후 24:00 조금 지난 시점에서 김용현 장관으로부터 선관위와 연계하여 확인할 것이 있어 여론조사 꽃과 민주당사에도 가는 게 좋겠다는 건의가 있었으나 민간기관은 절대 안 되고 더 이상 병력을 추가로 운용하지 말라고 지시하였습니다. 김용현 장관은 제 지시를 즉각 이행하였습니다.
김용현 장관은 11. 말부터 12. 2. 사이 밤에 대통령 관저로 찾아와 준비하고 있는 것을 보고하였습니다. 김용현 장관이 작성해 온 대국민 담화문은 거의 고칠 것이 없었고, 포고령 역시 계엄이 금방 해제될 것이라 시행될 리 없다고 생각하였고, 또 상위법에 저촉되면 아예 효력이 없는 것이어서 특별히 손댈 필요가 없었습니다.
계엄선포 전에 해야 하는 국무회의는 주례 국무회의에서 할 경우 그 과정에서 계엄선포가 알려지게 되고 불필요한 혼란이 야기될 수 있습니다. 그럴 경우 병력 투입을 더 해야 할 상황이 생길 수 있어 병력 투입 최소화를 유지하기 위해 최대한 보안 유지를 하면서 계엄선포 전에 국무총리, 외교, 국방, 통일, 행정안전, 법무 등 계엄 관련 필수 국무위원에다가 추가로 몇 분의 국무위원을 보안손님으로 대통령실로 더 오게 하여 정족수를 충족시키기로 하였습니다.
비상계엄 선포와 같은 국가긴급권은 대통령이 독점적이고 배타적으로 행사하는 헌법상 권한으로서 그 실체적·절차적 행사 요건의 구비 여부에 대한 판단 역시 대통령에게 전속하는 것입니다. 오로지 국회의 계엄해제 요구라는 정치적·사후적 통제만 받을 뿐입니다. 전 세계 헌정사에도 대통령의 국가긴급권 행사와 관련하여 형사법정에 선 전례가 없습니다. 물론 계엄선포 이후 유혈사태가 발생하여 개별 행위들에 대하여 그 상당성과 책임 문제를 논하는 것은 별론입니다.
내란몰이 세력들은 국회 본회의장에서 국회의원들을 끌어내라고 했다거나 정치인들을 체포하라고 했다는 등 선동해 왔지만 비화폰 통화내역이 드러나면서 이 법정에서 모두 허위 조작임이 밝혀졌습니다.
군을 수만 명 동원해서 과거와 같은 계엄을 한다면 모르지만, 최소한의 질서유지 병력으로 무엇을 할 수 있다고 그런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한다는 말입니까? 상식적으로 전혀 불가능한 일입니다.
저는 김용현 장관에게 12. 2. 월요일 예정된 감사원장 탄핵 발의가 무산되면 계엄선포는 없었던 것으로 할 것이라고 분명히 해두었습니다. 그리고 12. 2. 감사원장 탄핵발의가 되면 다음 날인 12. 3. 화요일에 계엄을 선포하겠다고 하였습니다. 회기 중인 주중에 선포함으로써 국회가 계엄해제 요구를 의결할 것이면 바로 할 수 있도록 당당하게 대통령과 국회가 각각의 헌법상 권한을 행사하자는 뜻이었습니다.
아마도 김용현 장관은 저의 계엄선포 대국민 담화 직전 또는 직후 국회에 출동할 특전사령관, 수방사령관, 그리고 선관위에 출동할 방첩사령관에게 비상계엄에 관한 이야기를 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러다 보니 사령관들은 그 전에 부하들에게 계엄과 관련한 준비나 지시를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방첩사는 장병들이 휴가 또는 퇴근하였다가 언론을 통해 계엄선포 담화문을 시청한 후 부대에 복귀하여, 24:00가 되어서도 간부들의 부대 복귀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수방사는 야간 당직 근무자 위주로 소수만 편성하여 별도 임무 하달 없이 통상의 주요 공공시설 경비·방호 임무만 가지고 국회로 출동하였고, 특전사도 707부대를 수송할 헬기 운항 승인을 수방사에서 내주지 않아 시간이 한참 지체되었습니다. 사전에 각 기관 사이에 소통이 전혀 없었던 것입니다.
내란몰이 세력은 몇 시간 계엄, 대국민 메시지 계엄을 친위 쿠데타라고 하고 있는데 친위 쿠데타를 이렇게 하는 것 보셨습니까? 친위 쿠데타라는 것을 어떻게 하는지 알지도 못하고 생각도 해본 적 없지만 이렇게 방송으로 언론에 알리고 사전 준비 없이 야간 당직 근무자 소수만 데리고 하는 것입니까? 친위 쿠데타를 한다면 선관위는 왜 갔겠습니까? 사태를 장악하고 나중에 가도 되는 것이고 친위 쿠데타라 하면 당분간 선거할 일도 없지 않습니까?
국민들이 각자 생계에 바쁘셔서 대놓고 이야기를 안하시지만 국민들도 상식적으로 판단하실 수 있습니다. 국민들은 절대 바보가 아닙니다.
경찰은 처음부터 12.3 계엄에 투입할 계획이 전혀 없었습니다. 저는 비상계엄이 선포되었으니 당연히 최소한의 군이 투입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국회의 10여 개 출입문에 대해 전혀 의식하지 않았습니다. 저와 김용현 장관 모두 공무원 시절 국회를 다녀보았기 때문에 야간에는 의원회관 인근 출입문과 정문 정도만 열어둘 것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계엄선포 당일 저녁 무렵 김용현 장관이 제 방에 와서 “투입되는 군 병력 규모가 워낙 소수이다 보니 질서유지가 어렵습니다. 국회 외곽은 경찰 지원을 받는 것이 좋겠습니다.”라고 하여 전화로 김용현 장관과 조지호 경찰청장을 연결해 주려다가 삼청동 안가에서 한 10~15분 가량 만나게 했습니다. 계엄선포 후 국회 출입문 차단, 이후 개방, 다시 차단된 일련의 조치는 경찰의 자체 판단이었으며, 대통령이나 국방부장관, 계엄사령관의 지시에 의한 것이 전혀 아닙니다. 국회 출입문과 담은 워낙 낮아 얼마든지 넘어 다니는 것이 가능하고 실체 수천 명이 별다른 제지 없이 국회 마당에 들어왔습니다.
저는 계엄선포 후 조지호 청장과 23:15경 55초 가량의 첫 통화를 시작으로 23:20 36초, 23:28 39초, 23:30 17초, 23:34 41초 등 5차례에 걸쳐 통화하였습니다. 그리고 1시간 10여 분 뒤인 00:48 32초, 01:08 58초, 01:10 58초 통화하였습니다.
23:15 통화는 국회 주변 상황을 물은 것이고, 조지호 청장은 “군이 아직 오지 않았는데 사람들이 밀려와 일단 국회 출입문을 닫았는데 김봉식 서울청장이 법적으로 국회의원들과 국회 관계자는 들여보내야 한다고 해서 신분 확인해서 들여보내고 있답니다.”라고 했고, 이에 저는 “김봉식 청장이 수사통이라 법을 잘 아는구만, 당연히 그래야지, 잘했어.”라고 했습니다. 경찰은 실제 23:07부터 국회 출입문을 열고 국회 관계자들을 들여보내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그 이후 23:34까지 4차례에 걸쳐 조지호 청장에게 짧은 시간 순차로 통화한 것은 국회 주변 상황 파악과 안전사고 염려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검사장이나 총장 시절에도 주요 사건의 압수수색 같은 현장 상황을 늘 직접 챙겼기 때문에 현장 상황을 파악하고 안전사고를 방지하고자 경찰청장과 사령관들에게도 전화를 한 것입니다.
조지호 청장은 제가 23:15에는 국회를 통제하라고 했다고 하고 23:34과 그 이전 통화에서는 국회 담을 넘는 월담 의원들을 체포하라고 했다고 증언하였는데 이는 모두 사실무근이고 거짓입니다. 조지호 청장은 2024. 12.경 내란몰이 수사 초기에는 제가 자신과 여섯 차례 통화했고 여섯 차례 모두 “국회로 들어가려는 국회의원들을 모두 체포하라”고 했다고 진술했습니다. 그러나 비화폰 통화내역이 나오자 최근에는 23:15~23:34 사이 5번의 통화 중 후반부는 ‘월담 의원’을 체포하라고 했다고 새로운 증언을 내놓습니다. 2024. 12. 수사 초기 제가 “국회에 들어가려는 의원들을 모두 체포하라”는 지시를 했다는 조지호 청장의 진술을 들은 수사관계자들도 당시 배치된 경찰 인력 등에 비추어 납득이 되지 않았는지, 조서를 봐도 더 묻거나 구체적인 추궁을 한 정황이 보이지 않습니다.
2025. 12. 이 법정에서 조지호 청장에 대해 주신문을 진행하던 검사도 그 시간은 국회의원과 국회 관계자의 출입이 자유로운 시간이어서 월담할 필요가 없는 때인데 피고인이 그런 지시를 했다는 것이 맞느냐고 하며 의문을 가질 정도였습니다.
저는 계엄해제 의결 후와 계엄해제 후 조지호 청장에게 전화를 걸어‘수고 많았다, 잘했다, 경찰이 초동조치 잘하고 의원들 출입시켜서 계엄이 빨리 해제되었다.’라고 하였고, ‘김봉식 청장에게는 좀 쉬었다가 내가 직접 전화하겠다’라고 하였습니다. 헌법재판소 심판정과 이 법정에서의 조지호, 김봉식의 증언에 의하면, 조지호 청장과 김봉식 청장은 제게 이와 같은 격려 전화를 받았다고 하고 있고, 국회 게이트 차단은 경찰 자체 판단으로 23:37에 결정되었으나 사실상 24:00까지 국회의원과 국회 관계자들을 출입시켰다고 합니다. 저는 24:00 국회 출입문을 다시 닫은 사실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제가 이진우 수방사령관에게 00:32(29초), 00:34(16초), 00:36(25초) 전화를 하는데 두 번째와 세 번째 통화에서 ‘경찰이 관리하는 출입문을 찾아보라’, ‘의원회관 쪽 문으로 가보라’고 한 것이고, 이진우 사령관도 이 법정에서 그에 부합하는 증언을 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이진우 수방사령관은 이 법정에서 24:00 이후 국회에 도착해 보니 경내에 엄청난 사람들이 들어가 있었고, 담을 넘는 사람들을 경찰이 뒤에서 받쳐주어 도와주고 있었다고 증언합니다.
2024. 12. 내란몰이 수사 초기부터 수사기관들은 수많은 공직자들을 상대로 입건과 기소, 구속에 대한 위협으로 엄청난 거짓 증언들을 이끌어 냈습니다. 그들에게는 신병의 문제는 물론 연금 등 생계와 관련하여 매우 절박한 문제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진우 수방사령관 증언과 같이, 언론에 가짜뉴스들이 쏟아지고 다른 사람들은 이렇게 진술했다고 들이대면서 원하는 진술을 하도록 했습니다.
헌법재판소 탄핵 인용의 결정적 증거로 곽종근, 홍장원의 증언, 한덕수 총리의 증언을 들고 있습니다. 헌재 탄핵심판에서 비화폰 통화내역과 CCTV 영상이 제시되었더라면 이 법정에서와 같이 거짓 증언들이 쉽게 분별 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헌법재판소에는 탄핵절차법상 증거능력 없는 수사기록들이 무제한으로 제출되고 사실인정의 증거로 사용되었습니다. 탄핵은 일종의 행정징계 절차라는 논리입니다. 그러나 이 법정에서 주요 증거 대부분이 허위·조작이었음이 드러났습니다. 전체 국민이 직접 선출한 최고의 민주적 정당성을 가진 대통령을 그런 식으로 재판해서 탄핵했다는 것이 상당히 안타깝습니다. 계엄해제 직후부터 몰아진 내란몰이의 수사는 탄핵심판에서 대통령을 끌어내리기 위한 수단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저는 국회의 계엄해제 요구 의결이 있자 이를 즉각 수용하여 군을 철수시키고 국무위원 소집을 기다리다가 김용현 장관과 계엄사령관을 제 집무실로 불러 지금 바로 군의 계엄상황을 종료시키라고 지시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김용현 장관은 즉시 화상으로 전군 주요 지휘관 회의를 소집하여 군의 계엄상황을 종료시켰고, 저는 국무위원 도착 전 계엄해제 대국민 담화를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내란몰이 세력들은 제가 두 번 세 번 계엄할 것이라는 터무니 없는 황당한 선동을 그치지 않았습니다.
저는 계엄선포 후에도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에게 전화하여 ‘대야관계에 너무 고생이 많았다. 계엄선포를 미리 알려주지 못해 미안하다. 의원님들은 걱정할 것 없다. 곧 끝날 거다.’라고 이야기했고, 추경호 의원 역시 대통령이 자신에게 전화하여 ‘국회가 절차를 밟아 계엄해제 요구 의결을 하면 즉시 수용하여 해제할 것이다.’라고 했다고 증언하였습니다. 이는 추경호 의원에 대한 공소장에도 동일하게 기재되어 있습니다.
저는 계엄선포 전인 12. 2. 공주 민생토론회와 산성시장 방문, 12. 3. 키르기스탄 대통령 공식 방한 행사를 모두 소화하였고, 주말인 11. 30. 및 12. 1.에는 거의 하루 종일 관련 자료 숙독과 준비에 시간을 보냈습니다. 계엄선포 직전 공식 행사장의 제 모습은 여느 때와 다름없었으며 어떠한 초조함이나 긴장감도 없었다는 것을 다들 보셨을 것입니다. 친위 쿠데타를 기획했다면 이런 행사들을 연기했거나 아니면 계엄선포일을 다른 날로 잡았을 것입니다. 더욱이 국회 회기 중이고 평일이어서 즉시 국회 본회의가 열릴 수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국회 본회의를 무력화시키거나 방해할 의도가 전혀 없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방첩사령관은 12. 1.부터 12. 2.까지 이틀간 휴가였고, 부대원들 역시 퇴근했다가 뉴스를 보고 24시가 넘어 부대에 복귀했습니다. 수방사는 계엄 당일 저녁 주요 간부 부부 동반 만찬이 있었고 대부분은 퇴근하다 보니 소집에 시간이 걸리는 바람에 야간 당직 근무자 위주로 그 자리에서 인원이 편성되었습니다. 전혀 사전 준비를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저는 대국민 호소, 대국민 메시지 계엄이니 긴장하지 않고 평소와 다름없이 준비한 것입니다. 정치 지형을 송두리째 바꿔버리는 초법적 조치가 아니라 헌정 붕괴와 국정 마비의 국가 위기 상황을 국민들에게 알리고 주권자를 깨우기 위한 조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12. 4. 새벽 계엄을 해제하고 관저로 돌아와 안전사고 없이 잘 마무리되어 다행이라 생각하고 안심하였습니다.
저는 처음에 내란몰이가 시작되는 것을 보면서 원래 늘 저러는 사람들이려니 생각하였고 이제 국민들이 국가 위기 상황을 인지하셨으니 달라지리라 생각했습니다. 저 스스로 법률전문가로서 내란이라는 선동이 너무나 어이없고 기가 막혔기 때문입니다.
공수처가 서울서부지법에 체포 영장을 청구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내란죄에 대한 수사권이 없으니, 영장이 기각되면 경찰이나 검찰로 넘기려는 출구전략인 모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시에는 탄핵소추 사유 중 내란이 포함되어 있으니 탄핵 심리 과정에서 이를 잘 설명하고 국헌문란 목적이나 폭동이 없었다는 것만 소명하면 수사 역시 자연히 마무리 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정치적인 리스크는 있었지만 탄핵 반대 여론이 높아지고 국민들이 계몽되었다며 응원해 주시는 것을 보고, 제가 울린 비상벨이 그래도 효과가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26년간 검찰에서 주요 수사를 했지만, 법과 원칙에 따라 일했기 때문에 정치적 음모에 의해 수사라는 이름을 빌어 이렇게 치밀하게 내란몰이가 기획되고 진행되는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2025. 1. 3. 공수처가 저를 체포하겠다고 관저로 왔을 때도 대통령 관저가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 출입과 수색이 불가능하니 저러다 말겠지 싶었습니다. 그러다 1. 15. 수천 명의 경찰이 들이닥치는 것을 보며 제가 본 국가의 위기가 실제는 더 심한 지경이었구나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얼토당토않은 수사를 하고 법과 원칙을 어기면서 수천 명의 경찰을 동원하여 대통령을 체포하겠다고 달려드는 내란몰이 세력들이야말로 자신들의 정권 획득을 위해서는 헌정 붕괴와 국정 마비도 상관없다는 사람들입니다.
12.3 비상계엄이 몇 시간 만에 해제되고 1년이 넘게 흘렀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정적과 반대 세력들을 숙청하고 탄압하려는 내란몰이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민생 경제 위기 경고등이 심각하게 울리고 있는 대한민국의 상황, 자유진영과 연대의 균열 등 국가 위기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국민들과 청년들은 계엄령이 계몽령이 되었음을 알고, 국가 위기 상황에서 불가피한 결단이었다고 외치고 있습니다.
저는 이미 탄핵소추 직전인 2024. 12. 12. 담화, 공수처 체포 직전인 2025. 1. 15. 담화, 헌법재판소 탄핵 심판에서 2025. 2. 25. 최종 의견진술을 통해 세 차례 걸쳐 12.3 비상계엄에 관한 제 입장을 일관되게 말씀드렸습니다. 오늘 진술은 그 후 드러난 비화폰 통화내역과 법정 증언 등을 통해 확인된 실체를 더해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제가 국가 위기 상황이라 진단하고 비상계엄을 선포하게 된 이유에 대하여 이미 증거로 제출한 2024. 12. 12. 담화, 2025. 1. 15. 담화, 2025. 2. 25. 헌법재판소 최종진술을 세세히 숙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국가 위기 상황에서 주권자를 깨우는 비상계엄 선포에 따라 임무를 수행한 군 관계자와 공직자들이 내란몰이에 희생되어 고난의 시간을 겪고 있습니다. 나라를 진정 사랑하고 자유와 정의를 지키려는 많은 국민과 청년들도 고통과 좌절의 시간을 겪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모두 제 부족함의 소치입니다.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도드리는 일입니다. 고초를 겪고 있는 군 간부, 공직자분들, 정직하고 선한 우리 국민들과 청년들을 위해 하루에도 몇 번씩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이 넉넉히 함께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이 나라를 굳건하게 지켜주실 것을 믿습니다.
이 사건이 갖는 헌법적 함의와 대통령으로서 국가 위기 상황에서 헌정 붕괴와 국정 마비를 막으려 했던 엄중한 책임감에 대해 살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그것은 결코 국헌문란이 될 수 없습니다. 폭동이 될 수 없습니다.
고된 일정 속에서 충실하게 심리해 주신 재판부에 감사드립니다. 또한 방청과 중계를 통해 이 사건의 실체를 확인하고 응원해 주신 국민들께도 감사드립니다.
대통령의 국가긴급권 행사는 내란이 될 수 없습니다.
귀 재판부의 현명한 판단을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