옐런 전 의장 “극도로 소름 끼쳐”
10개국 중앙은행 총재들도 성명
전문가들 ‘대인플레이션’ 우려
미 재무도 “금리 상승시킬 것”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에 대한 수사와 기소 추진을 두고 역대 연준 의장과 저명한 경제학자들이 공동으로 중앙은행 독립성 훼손 시도라고 비판 성명을 내놓는 등 후폭풍이 커지고 있다. 공화당과 트럼프 행정부 내에서도 역풍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12일(현지시간) 앨런 그린스펀, 벤 버냉키, 재닛 옐런 전 연준 의장과 제이슨 퍼먼, 그레고리 맨큐 전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위원장, 로버트 루빈 전 재무장관 등 13명은 공동 성명에서 파월 의장을 겨냥한 연방 법무부 수사를 강하게 비판했다. 이들은 이번 수사는 “검찰권력을 이용해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훼손하려는 유례없는 시도”라고 비판했다. 이어 “이는 제도가 취약한 신흥시장에서 통화정책이 입안되는 방식”이라며 “인플레이션과 더 넓게는 경제 전반의 기능에 매우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법치주의가 경제적 성공의 토대이자 가장 강력한 힘인 미국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옐런 전 의장은 CNBC 인터뷰에서 파월 의장에 대한 기소 추진에 대해 “극도로 소름 끼친다”며 “시장은 이 사안을 우려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를 포함해 유럽중앙은행, 영국, 캐나다 등 10개국 중앙은행 총재들도 성명을 내고 “파월 연준 의장에게 연대의 뜻을 표한다”며 “중앙은행의 독립성은 물가 안정, 금융 안정, 경제 안정의 초석”이라고 말했다.
파월이 소환장 받은 이유 ‘연준 건물 개보수’ 12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의 연방준비제도 본부 건물 개보수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실제 연준의 독립성 및 통화정책 신뢰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이날 뉴욕상업거래소에서 2월 인도분 금 선물 가격은 장중 한때 전장 대비 3.1% 오른 온스당 4638.2달러를 기록하며 사상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연준 장악이 1970년대식 ‘대인플레이션’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경제 전문가들의 경고도 나왔다. 독일 베렌베르크방크의 아타칸 바키스탄 이코노미스트는 “만약 연준이 심각한 인플레이션에도 불구하고 (정권의 압력에 못 이겨) 통화 완화 정책을 추구한다면 1970년대 벌어졌던 최악의 위험 시나리오와 닮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가디언에 지적했다. 재깃 차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경제학 교수도 “전 세계에 달러 표시 자산이 얼마나 많은지 잊으면 안 된다”며 “달러 인플레이션을 통제하지 못한다면 이 같은 자산 가격도 함께 오르게 될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파월 의장에 대한 기소 추진이라는 초강수 카드를 꺼내든 것은 파월 의장을 연준 의장직뿐 아니라 금리 결정 시 투표권을 행사하는 이사직에서도 해임하기 위해서라는 분석이 나온다. 파월 의장의 임기는 오는 5월, 연준 이사로서의 임기는 2028년 끝난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는 11월 중간선거 전에 연준 정책금리가 인하되기를 원하지만, 파월 의장은 현재 정책금리가 중립금리 수준에 있으며 추가 인하 여부는 고용·물가 데이터를 보고 결정하겠다는 뜻을 밝혀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트럼프 대통령과 파월 의장의 충돌은 금리 문제를 넘어 “권력에 대한 문제”가 됐다고 지적했다. 연준을 누가 장악하고 통제해야 하느냐에 대한 근본적인 싸움이 됐다는 것이다. WSJ는 파월 의장에 대한 수사는 차기 연준 의장이 누가 되더라도 ‘내 뜻과 다르게 움직이면 파월처럼 될 수 있다’는 경고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고 해석했다.
트럼프 행정부와 공화당 내에서는 역풍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파월 의장 수사가 상황을 “엉망으로” 만들었으며 금융시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의견을 개진했다고 액시오스가 보도했다.
상원 은행위원회 소속인 존 케네디 공화당 의원은 파월 의장에 대한 수사가 “금리를 낮추는 것이 아니라 시장을 불안하게 만들어 오히려 금리를 상승시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톰 틸리스 공화당 상원의원은 “법적인 문제가 완전히 해결될 때까지” 후임 의장 후보자 인준에 반대표를 던지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