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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크모어

[서울경제]

※석유(Petro)에서 전기(Electro)까지. 에너지는 경제와 산업, 국제 정세와 기후변화 대응을 파악하는 핵심 키워드입니다. 기사 하단에 있는 [조양준의 페트로-일렉트로] 연재 구독을 누르시면 에너지로 이해하는 투자 정보를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세계 최대 규모인 이란 사우스파르스 가스 유전이 지난해 6월 이스라엘의 공습을 받아 화염에 휩싸인 모습. AP연합뉴스
세계 최대 규모인 이란 사우스파르스 가스 유전이 지난해 6월 이스라엘의 공습을 받아 화염에 휩싸인 모습. AP연합뉴스


<세 줄 요약>

△ 트럼프 행정부는 베네수엘라·가이아나·이라크 등에서 원유 확보를 가속하며 미국의 글로벌 에너지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 반면 이란 원유에 대해서는 제재와 해상 봉쇄로 ‘퇴출’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과, 베네수엘라 원유처럼 ‘장악’할 것이라는 전망이 동시에 나옵니다.

△ 이러한 움직임은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저유가를 사수하기 위한 트럼프 대통령의 전략이지만, 그가 원유 공급 과잉과 수요 감소라는 변수를 간과했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지난해 백악관에 복귀하자마자 관세를 휘두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집권 2기 2년차는 전쟁으로 시작하는 모양새입니다.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을 축출한데 이어 반정부 ‘유혈시위’가 확산하고 있는 이란 정권에 대해서도 군사공격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는데요. 베네수엘라와 이란 모두 산유국이라는 공통점이 있죠. 그러나 두 국가에 접근하는 트럼프 행정부의 방식은 현재로서는 서로 180도로 상반되는 모양새입니다.



베네수엘라 증산 ‘속도전’



베네수엘라 원유 확보에 나선 트럼프 행정부는 속도전에 돌입했습니다. 이달 9일이었죠. 마두로 대통령을 축출한 뒤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석유 업계 경영진들을 백악관으로 불러모아 회의를 열었습니다. 엑손모빌과 셰브론, 코노코필립스 등 미국 오일메이저를 포함해 셸, 레프솔, 에니 등 유럽 에너지 회사들도 참석했습니다. 안건은 하나, 트럼프 행정부의 베네수엘라 원유 개발에 동참할지 말지 여부를 정하는 것입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과 베네수엘라의 원유 보유량을 합하면 전세계 55%”라며 “(베네수엘라에) 진출을 원하지 않는다면 알려달라. 사업 참여를 원하는 기업들은 줄을 섰다”라고 거드름을 피웠고, 대부분의 기업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베네수엘라 원유 개발 구상에 적극 화답했다고 하네요. 단 미국 최대 오일 메이저인 엑슨모빌은 “또 다시 자산을 (베네수엘라 정부에) 빼앗기지 않도록 보장하는 안전 장치가 부족하다”며 “베네수엘라 투자는 불가하다”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빅 오일’을 포함한 미국이 화석연료 에너지 업계는 트럼프 대통령의 든든한 지지기반으로 꼽히죠. 2024년 트럼프 대통령의 재집권을 위해 이들이 후원한 자금이 최대 4억 5000만 달러(약 6625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되기도 했고요.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 에너지업계간의 만남은 정치적 이해관계가 명확히 맞아떨어지는 이들이 베네수엘라 원유라는 새로운 ‘이권’을 놓고 논의를 벌이고 있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말대로 미국의 원유 장악력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미 자국의 원유 생산량이 세계 최대 규모인 미국은 외국 유전 확보에도 집중하고 있습니다.

9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대런 우즈(왼쪽부터) 엑슨모빌 최고경영자(CEO)와 메리앤 매넌 마라톤 페트롤리움 CEO 등 에너지 업계 경영진들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행정부 고위급이 참석한 회의에
9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대런 우즈(왼쪽부터) 엑슨모빌 최고경영자(CEO)와 메리앤 매넌 마라톤 페트롤리움 CEO 등 에너지 업계 경영진들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행정부 고위급이 참석한 회의에서 발언을 듣고 있다. AFP연합뉴스



‘최대 산유국’ 美해외 유전 확장…가이아나 이어 이라크까지



남미 국가로 베네수엘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가이아나가 대표적입니다. 가이아나에서는 2015년 스타브로엑(Stabroek) 광구에서 상업성이 매우 높은 거대 유전이 발견됐고, 2019년 첫 원유 생산이 시작된 뒤 약 6년 뒤인 지난해 11월 하루 생산량이 90만 배럴까지 급증했습니다. 가이아나의 원유 생산을 독점하고 있는 것이 바로 엑슨모빌 컨소시엄인데요. 엑슨모빌이 45%의 지분을 보유해 운영권을 보유하고 있으며, 셰브론과 중국해양석유공사(CNOOC)가 나머지 지분 가운데 각각 30%와 25%를 들고 있습니다. 업계에 따르면 가이아나 원유 수출량 가운데 약 25% 이상이 미국으로 향하고 있다고 합니다. 엑슨모빌은 지난해 11월 보도자료를 통해 스타브로엑 광구 내에서 7개 추가 유정 개발에 600억 달러 이상을 투자하기로 했다고 밝혔는데요. 이렇게 되면 가이아나의 원유 생산량은 일일 170만 배럴로 급증할 것으로 엑슨모빌은 전망했습니다.

미국은 이라크의 원유 자원 확보에도 나섰는데요. 러시아 최대 민영 석유사인 루코일은 미국의 대(對)러시아 제재로 이라크 내 거대 유전인 ‘웨스트 쿠르나2’ 지분을 매각하고 철수를 준비하고 있는데요.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웨스트 쿠르나 2 지분을 인수할 유력한 후보로 엑슨모빌이 꼽히고 있다고 합니다. 엑슨모빌의 뒤에는 트럼프 행정부가 버티고 있고요. 엑슨모빌이 베네수엘라 사업에 참여하라는 트럼프 대통령 앞에서 짐짓 여유를 부리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드는데요.

JP모건에 따르면 미국내 원유 매장량과 가이아나, 그리고 미국이 확보한 것으로 봐야 할 것 같은 베네수엘라까지 합하면 미국이 전세계 원유 30%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JP모건은 그러면서 “미국이 석유시장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해 국제 에너지시장의 권력균형을 재편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이란 원유, ‘퇴출’이냐 ‘장악’이냐



그렇다면 미국은 이란의 원유에 대해 어떠한 조치를 취하게 될까요. 이란이나 베네수엘라 모두 반미(反美) 성향이 짙은 나라들이라는 공통점은 있습니다만, 원유 분야는 성격이 서로 상반됩니다.

이란은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창립 회원국인 대표적인 산유국으로, 1970년대 중반 전성기 때는 세계 원유 생산량의 10% 이상을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1979년 이슬람 혁명을 계기로 이슬람 공화국이 들어선 이후 이 같은 위상이 무너졌다고 블룸버그통신은 평가했는데요. 이란 정권은 자국 석유 산업에서 외국 기업들을 추방하며 투자와 외부 전문성을 차단했는데요. 이에 따라 원유 생산량은 급감했습니다. 이란을 출발점으로 한 2차 석유 파동이 전세계를 덮친 것도 이때입니다.

이후 이란도 자금줄인 원유 생산량 회복에 나섰고, 미국과 유럽 기업들 역시 이란 원유 시장에 재진출하려 했지만 이란의 핵개발과 맞물려 긴장 상태를 이어갔는데요. 집권 1기 당시인 2018년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핵협정(JCPOA)에서 탈퇴하고 이란에 경제 제재를 가하면서 이란 원유와의 단절을 선언합니다.

현재도 이 기조가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관측되는데요. 이란 사태가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는 만큼 향후 미국의 개입 정도가 어떻게 이뤄질지 지켜봐야 하겠지만, 일단 미국은 이란 원유를 장악하기보다는 시장 ‘퇴출’을 목표로 삼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미국내 보수 싱크탱크인 유대국가안보연구소(JINSA)는 최근 경제적으로 이란 정권을 압박해 붕괴까지 이어질 수 있는 방안으로 트럼프 행정부가 ‘해상 봉쇄’를 통해 이란의 석유 수출을 차단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는데요. 이 단체는 “(이란) 정권이 조속히 붕괴되지 않을 경우, 미군은 주요 군사 자산을 동원해 장기간 봉쇄를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많이 보도된 것처럼, 현재 이란 원유 수출은 약 90%를 중국에 의존하고 있죠. 공식 통계에 잡히지 않는 ‘그림자 선단’을 통해서 말이죠. 중국은 베네수엘라에 이어 이란 사태에서도 원유 공급에 영향을 받을 수 있는 변수를 맞닥뜨린 셈입니다.

물론 미국이 베네수엘라처럼 이란에 친미 정권을 세워 이란 원유 확보에 나설 가능성 역시 분명 존재합니다. 모닝스타는 벨란데라 에너지 파트너스의 매니징 디렉터인 매니시 라즈를 인용해 “미국이 베네수엘라와 이란 석유를 동시에 장악하는 것은 현시점에서는 순수한 공상일 뿐이지만, 전문가들은 이제 그 상황을 상상하기 시작했다”고 전했습니다.

미군에 의해 나포된 마리네라호의 모습. AFP연합뉴스
미군에 의해 나포된 마리네라호의 모습. AFP연합뉴스



11월 선거 위해 저유가 ‘사수’ 나섰지만…



사실 트럼프 행정부가 베네수엘라 원유 증산의 고삐를 죄는 것이 이란의 원유 퇴출을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분석 역시 가능한데요. 트럼프 대통령은 강력한 저유가 정책을 펴고 있죠. OPEC은 물론 자국 에너지기업에 원유 증산을 계속 압박하는 것도 낮은 유가를 유지해 미국 내 인플레이션을 막으려는 의도라는 분석이 지배적이고요. 특히 올해는 정권의 명운이 걸린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있는 만큼, 유가 급등은 트럼프 대통령의 사전에 결코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봐야할 것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느끼고 있는 정치적 위기감은 최근 공화당 하원 의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중간선거는 꼭 이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탄핵소추 당할 것”이라며 그가 한 발언이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입니다.

그런데, 세계 패권국 미국이 이렇게 자원 확보에 열을 올리는 것에 비해 유가가 받는 영향이 현재까지 제한적이라는 점이 흥미로운 요소가 아닐까 합니다. 미국 등 비(非) 중동 산유국의 원유 생산이 확대되면서 원유 공급 과잉 우려가 팽배한 상황, 무엇보다 화석연료가 에너지 분야에서 차지했던 독점적 지위를 많이 잃은 현실에서 이 같은 원유 쟁탈전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서울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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