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을 둘러싼 의혹이 갈수록 점입가경입니다.
차남 취업 청탁, 배우자의 동작구의회 법인 카드 사적 유용 등에서 시작된 의혹은 '공천 헌금', '수사 무마' 의혹으로 번졌습니다.
개인 비리를 넘어 풀뿌리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고, 권력형 범죄로 확대될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상황입니다.
이제 여론의 눈길은 이 모든 의혹을 수사할 경찰에 쏠리고 있습니다.
불과 14일 전까지 여당의 원내대표였던 '살아있는 권력'의 비리 의혹을 얼마나 밝혀낼 수 있을지, 시민들은 묻고 있습니다.
■ '은폐·교체' … 가라앉지 않는 '늑장 수사' 논란
경찰도 이러한 사안의 '엄중함'을 인식한 듯 정예부대라고 할 수 있는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단 인력을 투입했지만, 수사 초기부터 잡음이 끊이질 않고 있습니다.
경찰이 현재 가장 집중하고 있는 수사는 '공천 헌금' 부분입니다.
이번 의혹의 '키맨'인 김경 서울시 의원이 지방선거를 앞둔 지난 2022년 4월, 당시 민주당 강선우 의원에게 공천을 대가로 현금 1억 원을 건넸고, 당시 서울시당 공천관리위원회 간사였던 김병기 의원이 강 의원의 '공천헌금' 수수를 묵인했다는 의혹입니다.
통상 뇌물 사건은 '대가성'이 핵심이고, 그렇기 때문에 '뇌물을 건넨 사람'에게서 결정적인 진술이나 증거가 나오면 수사의 활로가 열린다는 게 비슷한 사건을 수사했던 관계자들의 말입니다.
하지만, 이번 '공천 헌금' 수사는 뇌물을 준 김경 시의원에 대한 수사부터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 거셉니다.
핵심 피의자인 김 시의원은 의혹이 불거지자마자 '아들을 보러 간다'며 출국해 라스베이거스 CES 행사장에 모습을 드러냈고, 경찰은 김 시의원의 귀국을 기다려야 하는 처지가 됐습니다.
그 사이 기존 메신저를 탈퇴하는 등 휴대전화 교체 정황도 포착됐습니다.
김 시의원이 뇌물을 줬다면 강 의원에게 건네지기 전까지 '통로'가 필요했는데, 이 역할을 했다는 강 의원의 전 사무국장도 비슷한 시기 휴대전화를 교체한 정황이 제기됐습니다.
사건의 진실을 풀어줄 핵심 인물들의 중요 증거가 비슷한 시기 '훼손'됐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경찰은 김 시의원이 출국하고 나서야 뒤늦게 통신영장을 신청했지만 통신 기록 보존 기간은 최대 1년입니다.
당연히 김 시의원이 강 의원에게 1억 원을 건넸다는 시점인 2022년 4월 전후의 통신 내역은 경찰이 확보할 수 없는 상황이고, 그래서 수사 초기부터 문자 메시지나 SNS 대화, 혹은 사진 등 각종 자료가 담긴 휴대전화 확보가 가장 중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경찰이 김 의원에게서 의미 있는 자료를 확보한 건 김 시의원이 국내로 귀국한 다음. 이미 첫 의혹이 제기된 시점부터 열흘을 훌쩍 넘긴 뒤였습니다.
경찰은 김 시의원이 귀국한 뒤 서둘러 자택과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을 진행했지만, 수사 경험이 있는 법조계 인사들은 "증거 인멸 우려가 제기되는 상황에서는 신속한 강제수사가 중요하다"며 "이번 경우에는 타이밍을 놓친 것 아니냐는 평가가 나올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김 시의원이 이미 PC를 포맷했고, PC의 하드디스크도 사라졌다는 이야기가 나오며 경찰이 실제로 압수수색을 통해 의미 있는 자료를 확보했는지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시선이 적지 않습니다. '이미 정리할 시간은 충분히 주어진 것 아니냐'는 지적입니다.
늑장 수사라는 지적에 박정보 서울경찰청장은 "출입국 조회도 사건이 배당돼야 가능하다"며 "입국 시 통보 조치는 오히려 빨리 진행된 측면이 있다"고 해명했습니다.
■ 의혹 '정점' 김병기 수사는 언제쯤?
경찰이 공천 헌금 수사에서 시간을 지체하는 사이, 정작 모든 의혹의 '정점'인 김병기 의원을 향한 수사는 제자리에 머물러있습니다.
경찰이 김 의원 차남의 숭실대 편입 의혹에 대한 수사에 착수한 건 지난 9월.
이후 간담회 등을 통해 해당 사건의 수사 경과에 대해서 기자들이 물어도, 돌아오는 건 늘 "절차에 따라 수사를 하고 있다"는 수사 관계자들의 답변이었습니다.
경찰은 사안이 커지기 전인 지난해 11월, 김 의원의 전 보좌진을 통해 차남 편입 및 취업 특혜뿐 아니라 수사 무마 의혹, 구의원으로부터 '공천 헌금'을 받았다는 의혹 등에 대해 구체적인 진술을 받아냈지만 어떤 것도 수사에 착수하지 않았습니다.
박 청장은 동작경찰서가 김병기 의원의 공천헌금 수수 탄원서를 입수하고도 그대로 덮어서 '암장'했다는 의혹에 대해선 일부 미흡한 점을 인정하며 "수사관이 특별한 인식을 갖고 보고했으면 좋았을 텐데 그 당시엔 보고가 없었다. 주 범죄사실인 차남 편입 의혹 수사를 마치고 들여다볼 계획이었다고 들었다"고 해명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경찰이 집중했다는 차남의 편입 특혜 의혹 역시, 차남을 비롯해 주요 관계자들에 대한 조사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김 의원의 청탁 시도 정황과 일자 등을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이 학교 측에 메모 형태로 남아있는 진술 등도 들었지만, 경찰은 수사 4개월이 지난 시점까지 관련자를 조사하거나 일지를 확보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부인의 동작구 의회 카드 유용 의혹 역시 법인 카드 사용 내역과 CCTV 등을 대조해 보면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사안이라는 게 수사 경험이 있는 관계자들의 중론이지만, 경찰은 제대로 된 현장 조사도 하지 않은 채 CCTV 등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내사 종결했습니다.
이렇게 경찰의 앞뒤가 안 맞는 해명이 이어지자, 이른바 '힘 있는 사람'을 통해 수사를 더 이어가지 못하게 한 것 아니냐는 '수사 무마' 의혹이 가라앉지 않고 있습니다.
경찰 관계자들은 "핵심 인물에 대한 접근이 늦어질수록 수사는 더 어려워진다"며 "권력자에 대해서만 유독 조심스러운 모습으로 비칠 수 있다"고 우려합니다.
■ '증거인멸' 의혹 김병기…의구심 해소할 수 있을까
김병기 의원은 특히 본인을 둘러싼 의혹이 제기되면 증거를 축소하고 인멸하는 과정에 거리낌이 없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실제 부인의 구의회 업무추진비 유용 사실을 인지한 뒤에 김 의원이 이를 은폐하려 한 정황도 포착됐습니다.
수사기관의 수사까지 염두에 둔 듯, 배우자가 식당에서 업무추진비를 사용한 모습이 식당 CCTV에 찍히진 않았을지 우려하며 보좌진에게 '해당 CCTV가 공개되지 않도록 식당에 가서 이야기하라'고 지시한 녹취가 언론에 공개되기도 했습니다.
김 의원에 대한 수사가 늦어지면 늦어질 수록, 행여 수사 결과가 나오더라도 의구심이 남을 것이란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 경찰 역사의 분수령이 될 1년…수사 독립성 지킬 수 있을까
경찰 내부에서는 "올해가 경찰 역사에서 중요한 분수령이 될 1년"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오는 10월 검찰청 폐지를 앞두고 중대범죄수사청 논의가 이어지고 있지만, 제도 개편이 마무리되기 전까지는 권력형 범죄 수사의 상당 부분을 경찰이 맡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김병기 의원 사건이 경찰의 정치적 중립성과 수사 독립성을 시험하는 사례가 될 수 있다는 평가가 경찰 조직 안팎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좌고우면하지 않고 엄정하고 신속하게 수사하겠다"는 경찰의 선언.
하지만, 살아있는 권력 앞에서 수사의 칼끝이 다시 무뎌지는 건 아닌지, 시민들은 묻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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