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 2025 하반기 베스트 증권사&애널리스트]
2025년 하반기부터 이어진 한국 증시는 ‘대반전’ 드라마였다. 시계를 불과 1년 전으로만 돌려봐도 국내 증시는 짙은 안갯속에 갇혀 있었다. 2024년 말 코스피는 2400선이 붕괴된 채 마감했고 여의도에는 비관론이 팽배했다. 당시 12·3 비상계엄 사태의 여진과 탄핵 정국, 그리고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전쟁 리스크는 한국 경제를 집어삼킬 거대한 파도처럼 보였다.
제도권의 증시 전망 또한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다. 2024년 말 주요 증권사 12곳이 내놓았던 2025년 연간 코스피 예상 밴드는 2250~3200선. ‘3000’ 회복조차 버거워 보였던 것이 당시의 냉정한 현실이었다. 숫자에 기반해 논리를 펴야 하는 애널리스트에게 정치적 격변과 지정학적 리스크는 산출 불가능한 변수에 가까웠다.
그러나 짙은 안갯속에서도 주요 증권사 리서치센터의 방향키는 명확했다. 숫자는 깜깜이였을지언정 자금이 흘러가야 할 ‘길’은 정확히 짚어냈다. NH투자증권, 신영증권을 비롯한 주요 증권사 리서치센터는 미국 증시보다 한국 증시에 투자 우선순위를 두는 과감한 전략을 제시했다. 밸류에이션 매력과 체질 개선 가능성을 믿고 ‘국장’의 손을 들어준 혜안이었다.
분위기가 반전된 ‘티핑 포인트’는 6월 조기 대선이었다. 이재명 정부의 출범은 정권교체를 넘어 자본시장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신호탄이었다. 후보 시절부터 공언해 온 ‘코스피 5000 시대’ 선언은 행정부와 입법부를 모두 장악한 ‘여대야소’의 강력한 리더십을 만나며 실체 있는 정책으로 구체화됐다.
증권사는 그해 6월을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한국 증시의 시간’을 알렸다. 그러나 당시 한국 투자자들과 제도권에서는 ‘4000 돌파’가 먼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하반기 코스피 상단은 3100~3150으로 제시됐다. 외국계도 마찬가지였다. JP모간은 한국 주식에 대한 투자의견을 ‘비중 확대’로 상향하면서도 목표치는 3200으로 설정했다. 이마저도 일부 경제학자들은 자산시장이 지속 가능한지 의문을 제기하며 “유동성에 기반한 단기 모멘텀”이라고 선을 그었다.
지수는 우려의 벽을 타고 올랐다. 7월 코스피가 3100선을 돌파하자 증권가에서도 잇달아 눈높이를 올렸다. 하나증권은 역사적 PER 고점을 근거로 당시 가장 공격적인 3750을 제시했다.
9월엔 신영증권 김학균 리서치센터장이 국내 증시의 거대한 파도에 올라타야 할 ‘당위성’을 역설하며 투자자들에게 확신을 심어줬다. 그는 코스피 5000 시대의 도래를 낙관하며 거대한 상승장의 파도에 올라탈 것을 제안했다.
그리고 10월 27일 코스피는 보란 듯이 장중 4000을 뚫었다. 그러나 환호도 잠시뿐이었다. 미국발(發) ‘AI 거품론’이 제기되면서 단기간에 급등한 코스피 역시 ‘버블’의 영역에 진입했다는 경고음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왔다.
모두가 ‘상투’를 걱정하며 머뭇거리던 11월 시장의 상상을 뛰어넘는 파격적인 전망은 KB증권에서 터져 나왔다. 코스피가 4000선을 밟으며 고점 논란이 일던 시기 KB증권은 ‘코스피, 대세 상승장 쉼표’라는 보고서를 통해 2026년의 목표치를 5000으로, 장기 강세장 시나리오상 2028년 이후의 목표를 무려 7500으로 제시했다. 제도권 리서치로서는 유례없는 과감한 베팅이었다. 김동원 리서치본부장은 “1985년 이후 40년 만에 진정한 강세장에 진입했다”며 AI 버블론을 일축했다. 닷컴버블 당시 60배였던 PER이 현재 30배 수준에 불과하고 2026년 상장사 영업이익이 401조원에 달할 것이라는 데이터가 자신감의 원천이었다. 숫자로 증명한 ‘코리아 프리미엄’의 선언이었다.
1524명의 펀드매니저가 선택한 ‘5000 시대’ 길잡이
2025년 제도권 애널리스트는 유튜브 등 뉴미디어를 중심으로 자극적인 전망이 쏟아지는 환경에서, 데이터와 논리라는 엄격한 제약 속에서 시장의 속도를 따라가야 했다. 시황을 뒤늦게 반영한다는 비판이나, 전망이 아니라 ‘중계’에 그친다는 투자자들의 질책도 피할 수 없었다. 속도만 놓고 보면 유튜브발(發) 정보에 비해 느릴 수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 역시 분명했다.
그럼에도 증권사 리서치센터는 ‘코스피 5000 시대’로 나아가기 위한 선결 조건과 구조적 과제를 집요하게 파고든 집단이었다. 한국 증시가 오랜 박스권에 갇혀 있던 시절부터 이들은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구조적 문제의 원인과 해법을 끈질기게 분석하며 시장의 체질 개선을 주문해 왔다.
정부 또한 시장과의 소통을 최우선 과제로 삼으면서 2025년은 역사상 대통령과 리서치센터장들의 만남이 가장 잦았던 해로 기록됐다. 현장의 치열한 고민이 담긴 이들의 제언은 단순한 의견 개진을 넘어 코스피 상단을 구조적으로 확장시키는 정책 논의의 토대가 됐다.
윤창용 신한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정부 정책의 ‘속도’와 ‘일관성’이 시장의 밸류에이션을 바꿀 핵심 변수라고 지적함과 동시에 “매년 200억 달러에 달하는 대미(對美) 투자로 인한 국내 제조업 공동화”라는 구조적 리스크를 경고하며 마냥 들뜰 수만은 없는 시장의 현실을 냉정히 짚었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한국 기업들의 구태의연한 소통 방식을 질타하며 ‘질적 변화’를 촉구하는 등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한 쓴소리도 아끼지 않았다. 제도적 인프라에 대한 구체적인 해법도 리서치센터의 몫이었다. 황승택 하나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부동산은 장기 보유 혜택이 뚜렷한 반면 주식은 전무하다”고 지적하며 건전한 장기 투자 문화를 위한 세제 혜택을 강력히 주장했다.
국내 금융기관 소속 펀드매니저 1524명이 참여한 한경비즈니스의 ‘2025년 하반기 베스트 증권사·애널리스트 조사’는 애널리스트가 기업의 성장 신호를 선제적으로 포착하는 동시에 과열 국면에서는 경고음을 울리는 ‘객관적인 나침반’이어야 한다는 본연의 역할이 여전히 유효함을 보여줬다.
지난해 11월 KB증권이 제시한 ‘코스피 7500 시나리오’가 대표적이다. 당시 시장의 냉소에도 불구하고 밸류업과 AI 반도체 실적이라는 확실한 데이터를 근거로 시장의 상단을 열어젖힌 이들의 결기는 시장의 다양성을 확보하는 기폭제가 됐다는 평가다. 이러한 ‘근거 있는 자신감’은 펀드매니저들의 절대적 지지로 이어졌고 결국 27개 증권사 중 종합 1위라는 결실을 맺었다.
부문별 1위를 차지한 베스트 애널리스트 역시 남들이 보지 못한 성장 신호를 먼저 포착하거나 공포에 질린 시장에 냉철한 매수 신호를 보내는 ‘객관적 나침반’ 역할을 했다.
반도체 부문 김선우 메리츠증권 애널리스트는 시장이 ‘피크아웃’ 공포에 떨 때 오히려 ‘2026년 초호황’과 SK하이닉스의 구조적 재평가(ADR 발행) 가능성을 최초로 제시하며 비관론을 정면돌파했다. 기업분석 부문 김세환 KB증권 애널리스트 역시 AI 거품론 속에서 ‘에이전틱(Agentic) AI’라는 새로운 인프라 흐름을 선제적으로 포착해 투자의 눈을 넓혔다.
위기 속 기회를 짚어낸 통찰도 빛났다. 은행 부문 1위 최정욱 하나증권 애널리스트는 규제 리스크를 펀더멘털의 훼손이 아닌 기회로 해석해 중심을 잡았고, 음식료 부문 박상준 키움증권 애널리스트는 삼양식품 조정기에 수출 데이터를 근거로 “두려움이 곧 기회”라며 정확한 매수 타이밍을 잡아냈다. 거시경제 부문의 하건형 신한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마이크로(기업)가 매크로(경제)를 결정한다”는 ‘파레토 경제’ 프레임으로 양극화 장세의 해법을 제시하며 혼란스러운 시장의 길잡이가 됐다.
▶[2025 하반기 베스트 증권사&애널리스트] 시리즈 계속…
정채희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