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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크모어

■김진애 국가건축정책위원장
민간 숙의 활성화로···‘공간 민주주의’ 실현해야
공간 양극화 폐해 심각···이대로면 서울도 타격
랜드마크 집착 내려놔야···일상 공간이 진짜 매력
건축산업 규제 심각···중간 생태계도 회복해야
김진애 국가건축정책위원회 위원장이 서울 종로구 국가건축정책위원회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오승현 기자
김진애 국가건축정책위원회 위원장이 서울 종로구 국가건축정책위원회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오승현 기자

[서울경제]

한국 사회의 오랜 화두인 양극화는 공간과 건축 분야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극에 달한 수도권 집중 현상으로 인해 수도권과 비수도권 인구 격차는 지난해 사상 최대치인 104만 5000명으로 벌어졌다. ‘똘똘한 한 채’ 선호 현상이 강해지면서 수도권은 물론 서울에서도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로 인구, 일자리, 자원이 집중되는 양상이 심해지고 있다. 2022년 본격화한 건설 경기 침체는 비수도권에 기반을 둔 지방 건설사, 다세대·다가구 주택을 짓는 중소 건설업자들을 고사 상태로 내몬 지 오래다.

김진애 국가건축정책위원장이 지난해 9월 취임 일성으로 ‘공간 민주주의’를 강조한 것도 이 같은 양극화의 폐해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과 같은 서울 집값 급등세가 계속되면 서울 역시 쇠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김 위원장의 생각이다. 김 위원장은 노무현 정부 때인 2005년 건설기술·건축문화 선진화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며 건축기본법 제정을 이끌어 국가건축정책위원회의 설립 근거를 만든 인물이다. 김 위원장은 산파 역할을 했던 국가건축정책위원회의 위원장으로 취임한 뒤 “국민 소통을 강화하고, 건축 업계의 발전을 가로막는 규제 개혁에 힘쓸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국가건축정책위원회는 건축 정책 비전을 제시하고 관계 부처의 건축 정책을 심의·조정하는 대통령 소속 위원회로 2008년 출범했다.

12일 서울경제신문과 만난 김 위원장은 취임과 동시에 공간 민주주의라는 방향성을 제시한 이유에 대해 “자본주의 사회에서 양극화는 일어날 수밖에 없지만 공간의 양극화가 인간의 생활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며 “어디에 사느냐는 단순히 주거의 질 뿐만 아니라 얻을 수 있는 일자리, 누릴 수 있는 복지 등 삶의 여러 기회와 직결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김 위원장은 “똘똘한 한 채가 성행하는 것은 그야말로 공간 민주주의에 어긋나는 현상”이라며 “이 추세가 계속되면 서울에 부담 가능한 주택(affordable housing)이 사라져 젊은 사람들이 떠나고 결국엔 도시가 망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동안은 집값 상승 기대감에 서울로 사람이 몰리겠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도시의 활력이 떨어져 쇠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김 위원장은 공간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추구해야 하는 가치로 주체성·접근성·포용성·형평성·진짜성(문화 상징성) 등 다섯 가지를 꼽았다. 김 위원장은 “이 공간이 내 것이라고 느끼는 주체성, 공간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접근성, 공간에서 배제당하지 않는다고 느끼는 포용성, 지방처럼 사업성이 나오지 않는 곳에도 투자가 돌아가도록 하는 형평성이 모두 공간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다”며 “무엇보다도 최고의 공간 민주주의는 공간의 상징성과 문화성을 자연스럽게 갖춰나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최근 이재명 정부가 청와대로 복귀한 것이야말로
‘진짜성’을 찾은 공간 민주주의의 최고봉”이라며 “대통령실이 용산 이전을 거쳐 돌아온 역사가 더해지면서 청와대는 우리 사회가 정상으로 돌아왔다는 상징성과 K민주주의라는 문화성을 갖추게 됐다”고 평가했다.

공간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는 방안으로 김 위원장이 특히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거버넌스다. 즉 공공 공간을 구상하고 활용하는 모든 과정을 둘러싼 의사 결정 과정에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공간을 만드는 일을 엘리트와 관료, 돈 가진 사람들이 다 해서는 안 된다”며 “시끄럽고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공론화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이 1980년대 미국 MIT 도시건축연구소에서 근무할 때 연구했던 보스턴 코플리 광장 리모델링 논의는 거버넌스의 생생한 작동 방식을 깊이 새긴 계기가 됐다. 보스턴 중심부에 자리한 코플리 광장은 면적이 약 9700㎡로 광화문 광장(3만 4484㎡)의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로 작은데도, 시민들이 직접 위원회를 만들어 광장 재구조화 논의를 적극적으로 주도했다. 김 위원장은 “특히 보스턴의 유서깊은 가문들이 위원회에서 중추적으로 활동하고 시와 소통하며 약 2년을 협의해 개선안을 도출한 것이 인상 깊었다”며 “한국도 공공 공간을 조성하고 개선할 땐 충분한 숙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 중요하며 이런 거버넌스가 이제 막 태동하고 있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한국, 그리고 서울의 매력은 화려한 랜드마크 건축물에 있지 않다는 것이 김 위원장의 생각이다. 김 위원장은 “많은 사람이 도시를 키우려면 멋진 랜드마크를 만들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전혀 아니다”며 “전 세계가 열광했던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는 특정 랜드마크가 잘 나오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오히려 케데헌은 옛날부터 있었던 낙산 성곽, 일상적인 목욕탕, 명동 예술극장 앞의 조그마한 광장을 보여주면서 서울이라는 도시를 그럴듯하게 그려낸다”며 “서울은 유럽 도시 같은 순종(純種)도, 미국 도시 같은 신종(新種)도 아닌 잡종·혼종·변종이지만 이것이 유일무이한 매력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또 김 위원장은 최근 발간한 저서 ‘이토록 서울’을 언급하면서 “이토록 이야기가 풍부한 서울이 되면 좋겠다”며 “국가건축정책위원장으로서 공간과 건축을 바라보는 국민의 안목이 높아지도록 소통의 창구를 만드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진애 국가건축정책위원회 위원장이 서울 종로구 국가건축정책위원회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오승현 기자
김진애 국가건축정책위원회 위원장이 서울 종로구 국가건축정책위원회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오승현 기자


건축 산업 체질 개선과 규제 개혁 또한 김 위원장이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분야다. 국가건축정책위원회는 2008년 1기 출범 이후 8기에 이르는 현재까지 건축서비스산업진흥법 제정, 지역건축안전센터 제도화, 공공건축가 제도 확산 등 굵직한 정책 변화를 이끌어냈다. 김 위원장은 “이번 위원회는 공간 양극화 심화로 인해 건축 산업이 타격을 받는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룰 것”이라며 “부동산 거품이 심해지면서 건축 기술이 아파트 고급화 위주로만 집중되다 보니 더 싸게, 더 안전하게 짓는 것에는 관심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건설 기술에 대한 투자가 안 돼서 한국이 독자 개발한 엔지니어링 기술이 많지 않다”며 “이런 상황에서는 대형 건설사가 해외 수주를 하더라도 이윤이 남지 않는 구조가 계속될 수밖에 없어서 투자가 더 많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전세 사기와 건설 경기 위축의 여파로 고사 상태에 놓인 저층 주거 건축을 활성화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국토교통부 통계에 따르면 단독·다가구·다세대·연립주택 착공 건수는 2016~2021년만 해도 2만 5000~4만 7000건 사이를 오갔지만 2022년 1만 7794건, 2023년 5879건, 2024년 4245건, 2025년 1~11월 4314건으로 급감하는 추세다. 김 위원장은 "중저소득층의 주거를 받쳐주는 다세대·다가구 주택 공급이 안 되다 보니 이걸 짓는 개미 건축가들의 일감도 끊겼다"며 “주택 공급 해법을 고민하면서 건설 업계의 중간 생태계를 키울 수 있는 일감도 만들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국가건축정책위원회는 규제 개혁의 연장 선상에서 EPC 건설 활성화, 모듈러 건축 확대, 주차 방식 혁신 방안도 살펴볼 예정이다. EPC는 설계(Engineering), 조달(Procurement), 시공(Construction)을 한 업체가 모두 담당하는 건설 방식으로, 시공 위주의 한국 건설 업계에서 안정성과 수익성을 높일 수 있는 대안으로 평가되고 있다. 김 위원장은 “공간 콘텐츠 기획부터 설계, 시공, 분양, 운영까지 다 아울러야 건설 산업이 선진화될 수 있지만 이를 가로막는 규제가 많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기획부터 유지·관리까지 건설업 전 주기에 적용되는 규제는 법 조문 기준으로 5594개에 달한다. 이어 김 위원장은 “앞으로 건설은 공장에서 주요 구조물을 만들어 현장에서는 노동자가 조립만 하는 모듈러 방식으로 가야 한다”며 “건물 지하 주차장을 만드는 것에 지나친 공사비를 투입하는 현실도 대안을 강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She is··· △1953년 경기 시흥군 남면(현 군포시) △1975년 서울대 공과대학 건축공학 학사 △1983년 메사추세츠 공과대(MIT) 건축학 석사 △1988년 매사추세츠 공과대(MIT) 도시계획학 박사 △2005년 대통령 자문 건설기술·건축문화선진화위원회 위원장 △2009년 제18대 국회의원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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