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은 대두 수출 ‘0’…장난감 가게 사장은 “100% 넘는 관세 허덕”
칼바람 분 재난관리청엔 공무원 33% 해고…재난 대응 늦어져
칼바람 분 재난관리청엔 공무원 33% 해고…재난 대응 늦어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FP 연합뉴스
하루 평균 15개 총 5500여개의 소셜미디어 포스팅, 지난 1기 임기 전체보다 6개나 많은 227개의 행정명령….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두번째 임기 첫해를 상징하는 건 급진적 변화와 이를 향한 속도다. 행정명령 26개 서명으로 임기 첫날을 시작한 그는 “미국을 근본적으로 다른 방향으로 이끌겠다”며 불법이민·연방정부 축소, 다양성 정책 폐지부터 관세 인상, 마약과의 전쟁, 우크라이나·가자 전쟁 등까지 다양한 이슈에 광범위하게 관여했다. 기존 질서를 뒤흔든 트럼프표 정책들은 미국 보통 사람들의 삶에도 깊은 영향을 끼쳤다. 농민·소상공인·이민자·연방공무원 등 ‘트럼프표 정책’ 직접 영향권 아래에서 2025년을 보낸 이들의 이야기를, 오는 20일(현지시각) 트럼프 대통령 취임 1주년을 앞두고 들었다.
2015년부터 미국 미네소타주 세인트폴에서 부모님과 함께 장난감 가게 ‘미스치프’(Mischief·장난기)를 운영 중인 애들셰임마셜. 본인 제공
장난감 가게 사장의 ‘잃어버린 2025년’
“어떤 계획도 세울 수 없는 2025년이었어요.”
애들셰임마셜은 장난감 가게 사장이다. 2015년부터 미네소타주 세인트폴에서 부모님과 함께 장난감 가게 ‘미스치프’(Mischief·장난기)를 운영 중이다. 가게 장난감의 90%는 중국산이다. 미국산 장난감은 구하고 싶어도 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은 지난 100년 동안 생산 기지를 국외로 옮겨왔어요. 사람들이 기대하는 제품을 만들 만한 생산 능력이 없어요. 많은 공급업체와 이야기를 나눠봤는데, 다들 이런 제품을 만들 수 있는 공장은 전세계에 몇 군데 없다고 해요. 그중 대부분은 중국에 있죠. 설령 미국에서 만들고 싶어도 제조 기계를 중국 회사에서 사와야 하고, 그 기계에도 관세를 내야 합니다. 제조업을 미국으로 다시 가져오고 싶다면, 관세를 올리기 전에 제조업 인프라에 먼저 투자했어야 해요.”
트럼프는 2025년 2월1일부터 35개 이상의 관세 관련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대통령의 정치적 의지를 대외에 선포하는 포고령까지 더하면 숫자는 더 늘어난다. 애들셰임마셜은 한겨레와 한 전화 인터뷰에서 “대중국 관세가 100% 이상까지 넘나들었어요. 컨테이너를 실은 배가 입항하는 날짜에 따라 관세가 달라졌고, 주 단위로 관세가 바뀌기도 했어요”라고 했다. 어떤 회사들은 관세가 내려가면 가격을 내렸지만, 다른 곳들은 관세가 다시 오를 수 있다며 높은 가격을 유지했다. 500개 넘는 거래 회사들의 대응이 제각각이었다. “지난여름 주요 전략은 관세가 적용되기 전에 가능한 한 많은 재고를 확보하기 위해 최대한 많이 주문하는 것이었어요.” 트럼프 대통령은 전세계 대부분 교역 상대국에 고율의 상호관세와 품목별 관세를 잇달아 부과하는 등 강경한 통상정책을 펼쳤다. 지난해 미국의 평균 실효 관세율은 18% 이상으로 1934년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애들셰임마셜은 2025년 4월24일 보드게임 제조사, 아동복 회사, 미술품 수입업체, 주방용품 회사 등 9개 사업체와 함께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에 근거한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관세 부과는 위법’이라며 소송을 냈다. 연방대법원이 심리 중인 사건과 쟁점이 같다. 그는 “대법원 판결이 1월에 나온다고 변호사에게 들었어요. 누구라도 법을 따라야 한다고 법원이 선언해주기를 기다리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2021년 11월, 미국 아이오와대두협회(ISA)가 주최한 미국-중남미 무역 교류 프로그램으로 킴벌리(가운데)의 농장을 방문한 중남미 대표단의 모습. 멕시코, 에콰도르, 파나마, 과테말라, 콜롬비아에서 온 23명의 무역 대표단이 킴벌리의 설명을 듣고 있다. 아이오와 대두협회 제공
관세 전쟁의 불똥은 수출에도 튀었다. 타깃이 된 중국이 보복관세 및 미국 농산물 중 수출 1위 품목인 대두(콩) 수입 중단으로 맞섰기 때문이다. 매년 평균 2900만톤가량이던 대중국 대두 수출 물량은 지난 10월까지 ‘0’을 찍었다. 식용·사료용·가공용을 모두 합친 대한민국 1년치 대두 소비량의 약 20배에 달하는 수출 물량이 한순간에 사라진 것이다.
아이오와 햄프턴에서 대두 농사를 지으며 아이오와 대두협회에서 시장개발 담당 이사로도 활동 중인 킴벌리는 지난 9월 시장 개척을 위해 일본과 한국을 방문했다. 그는 한겨레에 “중국 시장에서의 손실을 보충하려면 전세계 여러 나라 시장을 개척해야 했어요”라고 했다.
미·중 정상은 지난 10월 말 ‘부산 빅딜’을 성사시켰다. 11·12월 두 달간 중국은 미국산 대두 1200만톤을, 이듬해부터 연간 2500만톤을 사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이 약속이 이행된다 해도 평소 수출량에 못 미친다. 킴벌리는 “중국이 700만~800만톤 정도를 시장에서 구매한 것으로 추정하는데 아직 선적된 건 아니에요. 적어도 올해 2월까지는 중국이 1200만톤 구입 약속을 이행할 것으로 믿습니다”라고 말했다.
현재 중국은 미국산 대두에 10%의 관세를 부과하는 반면, 브라질산 대두에는 관세를 부과하지 않는다. 올해 희망은 이 관세가 폐지되는 것이다. 킴벌리는 “이 관세는 미국이 부과한 펜타닐 관세에 대한 맞대응이에요. 펜타닐 관련 전구체 화학물질 거래 억제에 진전이 있다면 양국의 관세가 폐지될 수 있다고 봅니다. 농업 무역은 양국에 상호 이익이 되는 분야니까 협력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라고 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의 의류 창고에서 일하던 멕시코 오악사카 지역 토착민 사포텍 공동체 출신 14명이 2025년 6월6일 이민세관단속국(ICE)에 ‘납치’된 뒤 이들의 석방 운동을 위해 꾸려진 ‘루차 사포테카’(Lucha Zapoteca·사포텍의 투쟁)가 같은 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루차 사포테카 제공
도심엔 주방위군, 일터선 납치…사포텍 가족의 투쟁
2025년 6월6일 시틀랄리 가족에게도 마침내 그 일이 닥쳤다. 멕시코 오악사카 지역 토착민인 사포텍 공동체 출신으로 30년 가까이 미국에 살아온 친척 14명이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의 의류 창고에서 일하다 이민세관단속국(ICE)에 ‘납치’된 것이다. 친척들은 모두 수갑이 채워진 채 밴에 태워졌다. ‘피난처 도시’(서류 미비 이민자들에게 친화적인 도시)를 대상으로 한 연방 차원의 첫 대규모 단속이었다. 일종의 선전포고였다. 항의하는 시위대가 로스앤젤레스 시내를 뒤덮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주방위군을 도심에 투입했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누가, 어디로 끌려갔는지조차 알기 어려웠다. 어렵게 구금시설을 찾아냈지만 변호사조차 면회가 불가능했다. “심지어 가족이 거기 없다고 거짓말을 하다가 나중에야 있다고 말을 바꾸기도 했어요.” 시틀랄리는 한겨레에 “시설 내 가족에게 전화를 걸 수도 없었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가족을 찾기 위한 치열한 싸움이 시작됐다. 1명은 코로나 검사 서류라는 설명을 믿고 서명했다가 36시간 만에 강제 추방됐다. 손쓸 틈도 없었다. 지역 활동가들과 함께 ‘루차 사포테카’(Lucha Zapoteca·사포텍의 투쟁)라는 단체를 꾸렸다.
기댈 곳은 사법부밖에 없었다. 트럼프 행정부는 체포된 이민자들의 보석 심리 요청을 거부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절차도 복잡하고 비용도 많이 드는 인신보호청원을 청구해야 했다. 가난하거나 언어 장벽이 있는 이민자들에게는 높은 벽이었다. 시틀랄리는 “판사의 위헌 판단으로 가족들이 풀려났을 뿐 아니라 같은 처지에 있는 다른 이민자들도 인신보호청원이라는 추가 부담 없이 보석 심리를 받을 수 있게 됐어요. 정말 큰 승리였죠”라고 말했다.
가족들은 불구속 상태에서 추방 재판을 준비 중이다. 운 좋게도 많은 이들의 도움으로 17만달러(약 2억4000만원) 이상이 모였다. 시틀랄리는 “여전히 이민단속국이 직장을 급습하고 있어요. 하루하루 힘들게 살아가는 이들이 도처에서 납치됩니다”라면서도 “텔레비전에서는 폭력과 절망만 비치지만, 그래도 함께 뭉치면 저항할 수 있고, 뭔가를 이뤄낼 수 있다는 희망을 봤어요”라고 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2025년 역대 최대 규모의 국외추방 정책을 추진해 62만2000명 이상을 추방했다. 자발적 출국자는 190만명 이상이다. 출생시민권 제한, 난민·망명 차단, 에이치-1비(H-1B) 비자 수수료 인상 등으로 합법적 이민 경로도 축소했다.
미국 연방재난관리청(FEMA·피마)에서 통계학자로 일하는 스트라우드. 허리케인 카트리나 20주년을 맞은 2025년 8월25일 재난관리청 직원 192명이 ‘재난관리청이 처한 위기 상황’을 공표하는 성명을 냈고, 여기에 실명으로 이름을 올린 뒤 4개월째 강제 휴직 중이다. 본인 제공
‘도지’에 맞서 실명 내건 ‘피마’ 공무원들
“불났을 땐 불 끄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걸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보호 장치가 거의 없는 계약직 직원들도 서명하는데, 정규직인 제가 가만히 있을 수 없었어요. 잘려도 저는 퇴직금이라도 나오니까요.”
연방재난관리청(FEMA·피마)에서 통계학자로 일하는 스트라우드는 4개월째 강제휴직 중이다. 허리케인 카트리나 20주년을 맞은 2025년 8월25일 재난관리청 직원 192명이 ‘재난관리청이 처한 위기 상황’을 공표하는 성명을 냈고, 여기에 실명으로 이름을 올린 35명 중 한명이기 때문이다. 성명이 나오고 36시간 만에 그는 휴직 처리됐다.
일론 머스크는 정부효율부, ‘도지’(DOGE)를 통해 국제개발처(USAID), 교육부 등 연방기구를 해체했다. 공무원 보호 규정을 약화해 대규모 해고 및 명예퇴직을 유도했다. 질병 대응, 재난 구조, 암 치료 연구 등 공공서비스는 심각하게 약화했다. “비대하고 비효율적인 관료 조직”으로 지목된 연방재난관리청도 칼바람을 비켜 가지 못했다. 직원의 33%를 잃었다.
재난관리청 직원들의 성명서는 무너져가는 미국 재난관리 시스템을 이대로 두고 볼 수 없다는 호소로 가득했다. 스트라우드는 한겨레와 한 전화 인터뷰에서 “청장 대행에 임명된 데이비드 리처드슨은 재난관리청 업무를 전혀 몰랐어요. 2025년 7월 텍사스 홍수 때 100명 이상이 사망했는데 그는 연락조차 되지 않았고, 이 때문에 수색 구조대 투입이 72시간이나 늦어졌어요. 이런 중요한 기관에 무능한 리더십이 있다는 건 정말 위험한 일이에요”라고 했다. 자금 관리를 엄격히 한다는 명분으로 10만달러 이상 지출은 모두 국토안보장관의 승인을 받도록 했는데, 사소한 꼬투리를 잡아 서류를 수시로 반려했다고 한다. 이름 밝히길 거부한 또 다른 재난관리청 직원은 한겨레에 “‘10만달러 룰’ 때문에 재난 대응용 아이티(IT) 시스템 교체·유지 같은 필수 사업이 지연·취소되다 보니 종이로만 업무를 보던 1990년 초반 상황으로 돌아갔어요. 텍사스 홍수 때도 그 결재 절차 때문에 수색 및 구조 작업에 필요한 자금 지원이 72시간이나 지연되었어요”라며 “개혁은 필요했지만 이건 조직을 모든 레벨에서 무너뜨리는 것이며, 이것 때문에 결국 사람들이 죽을 거예요”라고 말했다.
재난관리청 해체엔 특별한 논리도 찾기 힘들다. 스트라우드는 “재난 대응을 연방이 아닌 주정부가 담당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실제 행동은 모순적이에요. 주정부의 재난 대응 능력을 길러주는 프로그램을 모두 없앴어요”라고 했다. 익명의 재난관리청 직원은 “우리가 ‘재난구호기금’이라는 거대한 자금을 갖고 있기 때문이에요. 민영화를 통해 이 돈이 기업들에 가길 원하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스트라우드는 이런 상황에서도 “자리를 지키고 있는 동료들이 희망”이라고 했다. 그는 “행정부의 압박에도 매일 아침 사람들을 돕겠다는 열정으로 출근하는 동료들을 보면 큰 영감을 얻어요. 보복 속에서도 꿋꿋이 싸우는 동료들의 정신이 제게 희망을 줍니다”라고 했다. 익명의 직원은 “입사 1년밖에 되지 않은 콜센터 직원들도 성명에 이름을 올렸어요. 그들이 정말 자랑스럽고, 그들의 사명감이 희망입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