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스 프로젝트’ 조선·건설 휴머노이드 공급사
불 끄고 짐 나르는 로봇, 조선소 실증 본격화
외국인 2년 치 인건비 수준 가격 승부수… 올해 양산
글로벌 휴머노이드 경쟁 본격화… “韓 제조 현장, 최고의 실증 무대”
지난달 29일 경기 안산시 한양대 에리카캠퍼스 에이로봇 연구실. 에이로봇이 개발한 휴머노이드 로봇 ‘앨리스4’가 선반 위에 놓인 상자를 집어 들더니, 허리를 돌려 뒤편의 컨베이어벨트로 옮겼다. 곧이어 바퀴 달린 로봇 ‘앨리스M1’이 상자를 이어받아 목적지로 향했다. 사람 없이 로봇끼리 협업하는 공정이 이어졌다.
에이로봇은 최근 이 휴머노이드 로봇을 들고 국내 제조업 중에서도 고난도 작업 현장으로 꼽히는 울산 HD현대중공업 조선소로 향했다. 산업통상부 주도의 제조업 인공지능(AI) 전환 프로젝트 ‘맥스(M.AX)’ 사업에서 조선·건설 부문의 로봇 플랫폼 공급 기업으로 선정되면서, HD현대중공업과 손잡고 사람이 기피하거나 위험한 공정에 로봇을 투입하는 도전에 나선 것이다.
조선소서 화재 진압 시연… “단순 업무부터 시작해 고도화”
9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조선소는 그간 로봇 도입이 더딘 산업군으로 꼽혔다. 정형화된 제조 공장과 달리 좁은 통로와 높은 계단 등 비정형 환경이 대부분인 탓이다.
에이로봇은 이 험지를 오히려 기술력을 끌어올릴 기회로 봤다. 엄윤설 에이로봇 대표는 “조선소 같은 극한 환경에서 보행과 작업 난제를 해결한다면, 향후 어떤 산업 현장으로도 기술을 확장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지난달 5일 HD현대중공업 현장에서는 휴머노이드 로봇 앨리스가 화재 진압을 시연했다. 조선소에서는 화재 감시자를 의무 배치해야 하는데, 로봇이 이 역할을 대신해 인력 효율을 높이려는 현장 수요를 반영했다. 로봇은 비전 센서로 불꽃을 감지한 뒤 그 방향으로 소화기를 분사하고, 화재 진압 여부를 확인했다.
HD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아직 개선해야 할 부분이 있지만 인력난이 극심한 조선소 현장에서 충분히 활용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며 “거창한 목표보다 작은 성공 경험을 하나씩 쌓아 현장에 꼭 필요한 로봇을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평가했다.
에이로봇은 화재 감시나 자재 운반 등 단순 보조로 시작해, 궁극적으로는 사람이 기피하는 좁은 공간에서의 용접 작업까지 수행하는 ‘숙련공’으로 로봇을 진화시킨다는 구상이다.
‘휴머노이드 노동’ 확산… 가격 경쟁력 확보가 관건
전 세계 제조업 현장에는 ‘피지컬 AI(Physical AI)’ 도입 바람이 거세다. 업계에서 휴머노이드 완성도가 가장 높다는 평가를 받는 테슬라의 ‘옵티머스’는 공장 환경에서 배터리 셀을 분류하거나 부품을 옮기는 등 단순 반복 작업을 수행하는 모습을 시연해 왔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는 지난해 10월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2026년 초 차세대 모델을 공개하고, 연내 외부 판매를 위한 대량 생산을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스파턴버그 BMW 공장에서는 미국 로봇 스타트업 피규어 AI의 ‘피규어 02’ 로봇이 작년 1월부터 11월까지 약 11개월간 차체 조립 공정의 일원이 됐다. 이 로봇은 하루 10시간씩 교대 근무하며 BMW X3 차체 조립 공정에 투입됐고, 총 3만대 이상의 자동차를 생산하는 데 기여했다고 한다.
BMW 측은 “로봇이 복잡한 판금 부품을 5㎜ 오차 범위 내에서 정확하게 배치하는 능력을 검증했다”며 테스트 결과를 바탕으로 차기 모델 도입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현대차그룹 역시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IT 전시회 ‘CES 2026’에서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신형 전기 로봇 ‘아틀라스’를 2028년부터 미국 조지아주 메타플랜트에 본격 투입하겠다는 청사진을 공개했다.
‘물량 공세’ 中… “2030년 휴머노이드 6만대 쏟아낸다”
중국 기업들은 압도적인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시장을 흔들고 있다. 산업연구원(KIET)에 따르면, 중국 휴머노이드 로봇 시장은 지난해 82억위안(약 1조7000억원) 규모로,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상용화 단계에 진입했다. 2030년에는 중국의 휴머노이드 출하량이 약 6만대에 이를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중국 로봇 기업 유니트리는 휴머노이드 로봇 ‘G1’의 가장 저렴한 버전을 1만3500달러(약 1900만원)에 판매하고 있다. 이는 미국·유럽 경쟁사 제품의 10분의 1 안팎 수준이다. 중국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로봇을 자국 자동차·전자제품 조립 라인에 대거 투입하며 ‘로봇 인해전술’을 펼치고 있다.
이에 질세라 국내 로봇 기업들도 ‘가격 다이어트’에 사활을 걸고 있다. 에이로봇은 휴머노이드 공급가를 외국인 근로자 2년 치 인건비 수준인 6000만~7000만원대로 책정했다. 로봇 원가의 60%를 차지하는 핵심 부품인 액추에이터(구동기)를 자체 개발해 원가를 절감한 덕분이다.
조은교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중국은 거대한 내수 시장과 정부 지원을 업고 기술 격차를 좁혀오고 있다”며 “한국은 반도체, 자동차, 조선 등 세계적인 경쟁력을 내세우는 제조 현장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이곳을 로봇 산업의 ‘테스트베드’로 적극 활용해 실증 데이터를 빠르게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불 끄고 짐 나르는 로봇, 조선소 실증 본격화
외국인 2년 치 인건비 수준 가격 승부수… 올해 양산
글로벌 휴머노이드 경쟁 본격화… “韓 제조 현장, 최고의 실증 무대”
지난달 29일 경기 안산시 한양대 에리카캠퍼스 에이로봇 연구실. 에이로봇이 개발한 휴머노이드 로봇 ‘앨리스4’가 선반 위에 놓인 상자를 집어 들더니, 허리를 돌려 뒤편의 컨베이어벨트로 옮겼다. 곧이어 바퀴 달린 로봇 ‘앨리스M1’이 상자를 이어받아 목적지로 향했다. 사람 없이 로봇끼리 협업하는 공정이 이어졌다.
에이로봇은 최근 이 휴머노이드 로봇을 들고 국내 제조업 중에서도 고난도 작업 현장으로 꼽히는 울산 HD현대중공업 조선소로 향했다. 산업통상부 주도의 제조업 인공지능(AI) 전환 프로젝트 ‘맥스(M.AX)’ 사업에서 조선·건설 부문의 로봇 플랫폼 공급 기업으로 선정되면서, HD현대중공업과 손잡고 사람이 기피하거나 위험한 공정에 로봇을 투입하는 도전에 나선 것이다.
조선소서 화재 진압 시연… “단순 업무부터 시작해 고도화”
9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조선소는 그간 로봇 도입이 더딘 산업군으로 꼽혔다. 정형화된 제조 공장과 달리 좁은 통로와 높은 계단 등 비정형 환경이 대부분인 탓이다.
에이로봇은 이 험지를 오히려 기술력을 끌어올릴 기회로 봤다. 엄윤설 에이로봇 대표는 “조선소 같은 극한 환경에서 보행과 작업 난제를 해결한다면, 향후 어떤 산업 현장으로도 기술을 확장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지난달 5일 HD현대중공업 현장에서는 휴머노이드 로봇 앨리스가 화재 진압을 시연했다. 조선소에서는 화재 감시자를 의무 배치해야 하는데, 로봇이 이 역할을 대신해 인력 효율을 높이려는 현장 수요를 반영했다. 로봇은 비전 센서로 불꽃을 감지한 뒤 그 방향으로 소화기를 분사하고, 화재 진압 여부를 확인했다.
HD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아직 개선해야 할 부분이 있지만 인력난이 극심한 조선소 현장에서 충분히 활용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며 “거창한 목표보다 작은 성공 경험을 하나씩 쌓아 현장에 꼭 필요한 로봇을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평가했다.
에이로봇은 화재 감시나 자재 운반 등 단순 보조로 시작해, 궁극적으로는 사람이 기피하는 좁은 공간에서의 용접 작업까지 수행하는 ‘숙련공’으로 로봇을 진화시킨다는 구상이다.
지난 5일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의 CES 기조연설 오프닝 영상에 등장한 에이로봇의 휴머노이드 로봇 ‘앨리스’. 선박을 용접하는 청사진을 이미지로 구현한 장면이다. /엔비디아 유튜브 캡처
‘휴머노이드 노동’ 확산… 가격 경쟁력 확보가 관건
전 세계 제조업 현장에는 ‘피지컬 AI(Physical AI)’ 도입 바람이 거세다. 업계에서 휴머노이드 완성도가 가장 높다는 평가를 받는 테슬라의 ‘옵티머스’는 공장 환경에서 배터리 셀을 분류하거나 부품을 옮기는 등 단순 반복 작업을 수행하는 모습을 시연해 왔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는 지난해 10월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2026년 초 차세대 모델을 공개하고, 연내 외부 판매를 위한 대량 생산을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로봇 스타트업 ‘피규어 AI’의 ‘피규어 02’ 로봇이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스파르탄버그 BMW 공장에서 차 부품을 조립하는 모습./BMW 웹사이트 캡처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스파턴버그 BMW 공장에서는 미국 로봇 스타트업 피규어 AI의 ‘피규어 02’ 로봇이 작년 1월부터 11월까지 약 11개월간 차체 조립 공정의 일원이 됐다. 이 로봇은 하루 10시간씩 교대 근무하며 BMW X3 차체 조립 공정에 투입됐고, 총 3만대 이상의 자동차를 생산하는 데 기여했다고 한다.
BMW 측은 “로봇이 복잡한 판금 부품을 5㎜ 오차 범위 내에서 정확하게 배치하는 능력을 검증했다”며 테스트 결과를 바탕으로 차기 모델 도입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현대차그룹 역시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IT 전시회 ‘CES 2026’에서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신형 전기 로봇 ‘아틀라스’를 2028년부터 미국 조지아주 메타플랜트에 본격 투입하겠다는 청사진을 공개했다.
‘물량 공세’ 中… “2030년 휴머노이드 6만대 쏟아낸다”
중국 기업들은 압도적인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시장을 흔들고 있다. 산업연구원(KIET)에 따르면, 중국 휴머노이드 로봇 시장은 지난해 82억위안(약 1조7000억원) 규모로,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상용화 단계에 진입했다. 2030년에는 중국의 휴머노이드 출하량이 약 6만대에 이를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중국 유니트리의 보급형 휴머노이드 로봇 'G1'./유니트리 웹사이트 캡처
중국 로봇 기업 유니트리는 휴머노이드 로봇 ‘G1’의 가장 저렴한 버전을 1만3500달러(약 1900만원)에 판매하고 있다. 이는 미국·유럽 경쟁사 제품의 10분의 1 안팎 수준이다. 중국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로봇을 자국 자동차·전자제품 조립 라인에 대거 투입하며 ‘로봇 인해전술’을 펼치고 있다.
이에 질세라 국내 로봇 기업들도 ‘가격 다이어트’에 사활을 걸고 있다. 에이로봇은 휴머노이드 공급가를 외국인 근로자 2년 치 인건비 수준인 6000만~7000만원대로 책정했다. 로봇 원가의 60%를 차지하는 핵심 부품인 액추에이터(구동기)를 자체 개발해 원가를 절감한 덕분이다.
조은교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중국은 거대한 내수 시장과 정부 지원을 업고 기술 격차를 좁혀오고 있다”며 “한국은 반도체, 자동차, 조선 등 세계적인 경쟁력을 내세우는 제조 현장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이곳을 로봇 산업의 ‘테스트베드’로 적극 활용해 실증 데이터를 빠르게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