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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여행 : <15> 기제사, 전통 예법과 현대적 변용

편집자주

완숙기에 접어든 '장청년'들이 멋과 품격, 건강을 함께 지키며 아름다운 삶을 추구하는 방법을 함께 고민합니다.

'기제사' 시기를 둘러싼 논란들
기일 '축시 1각(刻)' 제사 규정
추모 일시 고집할 필요도 없어
삽화=신동준 기자
삽화=신동준 기자


Q
: 50대 직장인이다. 집안의 전통 때문에, 선친 등을 위한 기제사(忌祭祀)를 지낼 때 돌아가신 날의 자정 갓 넘긴 시점에 관련 의식을 하고 있다. 그런데 요즘은 통행금지도 없고, 야근도 하지 않아 제사를 준비해서 자정까지 기다리기가 어려울 때가 많다. 좀 일찍 지내도 되지 않을까 싶은데, 이어져 내려온 전통대로 반드시 자정을 갓 넘긴 시점에 기제사를 지내야 할까. 또 그래야 한다면, 그 이유가 뭔지 알고 싶다.

A
: 결론부터 말하면, 기제사 시간을 바꿔도 문제는 없다. 사실 자정을 넘어서 기제사를 지낸 이유는 기일(忌日) 하루 전에 정성껏 제사를 준비하였다가, 다음 날 첫 새벽에 제사를 지낸다는 원칙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시간은 조상이 돌아가신 날, 즉 기일의 첫 시간이기도 하다. 선조들은 이 시간이 하루 중 가장 깨끗하다고 여겨 기제사를 지내는 시간으로 정했다.

조선시대 예법의 기준이었던 '국조오례의'에서도 제사는 첫 새벽에 지내는 것으로 규정하였다. "제사 지내는 날 축시(丑時) 5각(五刻) 전(11시 45분경)에 방의 문을 열고, 신의 자리를 마련하고, 자리를 펴며, 제상을 설치하는 등 제사 지낼 자리 정돈을 통상의식과 같이한다. 행사는 축시 1각(1시 15분경)에 한다"라고 하였다. 축시는 새벽 1시부터 3시까지로 이를 15분 간격으로 쪼개면 8각이 된다. 이를 현대의 시간으로 계산하면 축시 전 5각은 밤 11시 45분이고, 축시 1각은 새벽 1시 15분이 된다.

항간에 귀신(鬼神)은 음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첫닭이 울기 전에 제사를 마쳐야 한다는 말이 있지만, 이는 낭설이다. 조상신은 사람에게 이로운 선신(善神)으로 낮에도 활동한다. 명절차례나 묘제 등 낮에 지내는 제사가 그 증거이다. 반대로 귀신은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악귀(惡鬼)로, 음기의 밤에만 활동하므로 첫닭이 울면 도망간다고 한다.

'가례(家禮)'에도 "기일 하루 전에 재계하고 준비한 후, 궐명에 제수를 진설하고, 질명에 제사를 시작하라"고 하였다. 박윤원(朴胤源·1734~1799) 선생은 "궐명(厥明)은 첫닭이 우는 시간으로, 축시(丑時·새벽 1~3시)에 해당하고, 질명(質明)이란 파루가 치는 시간인 오경(五更) 삼점(三點)인데, 인시(寅時·새벽 3~5시)에 해당한다"라고 명쾌하게 설명하였다.

현대를 사는 우리는 생리적으로 날이 밝아야 하루가 시작하는 것으로 여긴다. 시간상 자시 혹은 축시는 하루를 시작하는 첫 시간인 내일이지만, 생리적으로는 오늘의 한밤중으로 여기게 된다. 제사는 돌아가신 날 하루 전에 지낸다는 일부의 잘못된 정보가 나온 배경이기도 하다. 1945년 9월 7일 '미군정포고령 1호'로 시작되어 1982년 해제된 '야간통행금지'로 탄생한 '저녁 제사' 역시 그 배경이다. '통금'은 밤 10시부터 다음 날 새벽 4시까지 치안을 이유로 국민의 시내 통행을 금지한 시간이었다. 12시가 넘어 제사를 마치면, 통금으로 귀가할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하자, 저녁 7시나 8시에 지내는 '저녁 제사'가 대안으로 떠올랐다.

그런데 문제는 이처럼 시간을 당기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기제사를 준비하는 날 저녁에 제사를 지내버리게 됐다는 점. 하루 전에 준비하는 관행은 그대로인데, 제사 지내는 시간만 새벽에서 저녁으로 당기다 보니 돌아가시기 하루 전에 제사를 지내버리는 결례를 범하게 된 것이다.

전통적으로는 이러한 혼란을 막고자 '제사가 드는 날'이라는 입제일(入祭日)과 '제사를 마치는 날'이라는 파제일(罷祭日) 개념을 도입하였다. 입제일은 조상이 돌아가시기 하루 전날이다. 입제일 낮부터 밤늦게까지 제사 준비를 한 후, 다음 날 자시 혹은 축시가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제사를 시작한다. 이날이 곧 기제사를 지내는 제삿날이자 동시에 제사를 마치는 날이므로 파제일이 된다.

어른들은 "제사는 살아 계신 날에 지내야 한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 말은 틀린 말이기도 하지만, 맞는 말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조상이 돌아가신 날은 곧 살아계셨던 날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운명하는 그 순간이 있었던 날이 제삿날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입제일과 파제일 개념은 조상이 돌아가신 첫 시간에 제사를 지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개념일 것이다.

전통도 시대의 변화에 따르지 않으면 사라지고, 신식은 구식을 대체하기 마련이다. 제사 축소가 유행처럼 번지는 요즘에도 제사 날짜와 시간까지 고집한다면, 제사의 전통은 사라질 것이다. 순국선열의 돌아가신 날은 달라도, 국가에서는 현충일을 정해 나라에 목숨 바친 분들을 추모한다. 기제사도 추모의 일종이므로 굳이 날짜와 시간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가족이 모일 수 있는 날을 잡아 편한 시간에 지내도 문제 될 것은 없다. 발달된 현대의 시테크와 휴일을 잘 활용한다면, 자손의 도리를 하지 않았다는 비판은 피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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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덕 을지대 장례지도학과교수·죽음문화연구소장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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