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에서 일하다 사망한 고 장덕준씨의 어머니 박미숙씨가 지난달 23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열린 택배노동자과로사대책위원회가 연 쿠팡 김범석 의장 고발 기자회견에 참석해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위원회는 김범석 쿠팡아이앤씨 이사회 의장을 산업재해 은폐 혐의 등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김영원 기자 [email protected]
고용노동부가 쿠팡과 자회사들의 산업재해 은폐 여부 수사를 위한 전담팀을 구성하고 수사에 본격 착수했다. 전수조사 수준의 사망·사고·질병 조사를 통해 조직적인 산재 은폐가 있었는지를 규명한다는 방침이다.
5일 노동부 설명을 종합하면, 노동부는 서울지방고용노동청과 서울동부지청·서울남부지청 근로감독관으로 전담팀을 구성해 쿠팡·쿠팡풀필먼트서비스(CFS)·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의 산재 은폐 의혹에 대해 수사를 벌이기로 했다. 앞서 쿠팡 전 시피오(CPO·개인정보보호 최고책임자) ㄱ씨가 쿠팡 내부문건을 공개해 김범석 쿠팡 아이엔씨(Inc.) 의장이 물류센터 노동자 고 장덕준씨의 과로사 의혹을 축소하라고 지시한 사실이 드러난 바 있다. 이후 전국택배노동조합은 김 의장 등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등의 혐의로 노동부와 경찰에 고발했다.
노동부는 장씨 사례 뿐만 아니라, 쿠팡 모든 계열사에 산재 은폐가 있었는지에 대해 전수조사할 방침이다. 근로복지공단의 요양·유족급여 신청·승인내역과 노동부에 제출된 재해조사표·중대재해 발생 신고 등을 교차 검증해 보고되지 않은 산재가 있는지 확인하겠다는 것이다. 노동부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의 급여 내역과 소방청의 119신고 내역도 함께 대조하기로 했다.
이는 쿠팡·씨에프에스·씨엘에스 노동자들의 사망에 비해 유족급여 신청이 적은 이유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세 회사에서 2022년 1월 중대재해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시행된 이후 노동부가 확인한 노동자 사망은 25건이지만, 유족급여 신청 건수는 5건에 그친다. 씨엘에스 택배기사들은 씨엘에스가 아닌 영업점이 산재보험에 가입하기 때문에 제외한다 하더라도, 노동자 모두를 ‘직고용’하는 씨에프에스는 지난해 10월까지 사망 6건 가운데 유족급여 신청은 3건이다.
산재 신청 여부는 노동자·유족의 선택에 달려있다. 하지만 사업주가 산재 발생 책임을 덜기 위해 산재 신청 포기를 조건으로 노동자·유족과 합의하면 산안법이 금지하는 ‘산재은폐’에 해당할 수 있다. 앞서 노동자 23명이 화재참사로 숨진 아리셀에서는 2022년 파견노동자가 손가락이 잘리는 부상을 입자, ‘산재 신청이 이뤄지면 노동부의 감독과 불법파견 점검이 뒤따를 수 있다’는 이유로 아리셀과 파견업체가 ‘공상처리’하기로 노동자와 합의했다. 해당 합의서에는 산재 노동자에게 합의금을 지급하는 대신 ‘민형사상 일체의 이의제기를 하지 않으며, 산재보상청구권 일체를 회사들에 위임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아리셀과 파견업체는 노동부에 재해조사표를 내지 않았다. 검찰은 이를 ‘산재은폐’로 봐 기소했고, 법원 역시 지난해 9월 아리셀 안전관리자와 파견업체 대표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결국 쿠팡이 산재 노동자 또는 유족과 합의하면서 ‘산재 신청을 하지 않는다’를 조건으로 걸었는지 확인하는 것이 수사의 핵심이 될 것으로 보인다. 씨엘에스는 2023년 배송센터(캠프)에서 일하다 다친 노동자에게 치료비를 지급하는 대신 ‘민·형사·행정상 소송, 고소, 유관기관에 대한 이의제기 및 기타 일체의 법률상 모든 이의제기를 하지 않고, 확인서 관련 내용을 언론·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 외부에 누설하거나 공개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확인서를 요구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해당 확인서에는 ‘확인서 내용을 위반하거나 본 건 사고가 업무상 재해가 아님이 명백한 경우 금원(합의금)을 회사에 즉시 반환하기로 한다’는 내용도 적혀 있었다.
김영훈 노동부 장관은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들을 만나, 지난달 국회 청문회에서의 쿠팡의 태도에 관한 질문을 받고 “산재를 제대로 대응 못하고 은폐했기 때문에 대량의 개인정보 유출도 발생했다고 본다”며 “작은 사고가 발생했을 때 원인을 진단하고 처방하며 예방해야 더 큰 사고를 막을 수 있는데 쿠팡은 작은 사고가 나면 이를 덮어왔고, 결국 사람을 대하는 태도의 문제”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