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가 요구하는 남성성, 즉 ‘맨박스(Man Box)’에서 벗어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남성들일수록 자살 생각을 6.3배 더 많이 했다.”
미국 워싱턴DC에 위치한 비영리 단체 ‘이퀴문도’(Equimundo)가 지난해 6월 발간한 ‘2025 미국·영국 남성 실태조사’에 담긴 내용이다. 이퀴문도는 젠더·사회정의를 위한 연구와 프로그램, 정책 변화를 주도하는 국제 단체다. 실태조사에 따르면 미국 남성 10명 중 8명은 ‘가족 부양’과 ‘침묵해야 한다’는 등 전통적 남성성을 강요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퀴문도에서 디지털 전략 전문가로 활동하는 캐롤라인 헤이스는 “전통적 남성성 규범은 젠더 폭력에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남성의 정신건강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강요받는 남성성’이 ‘해로운 남성성’으로 표출되며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헤이스는 지난해 여름 한국 UN여성기구를 방문해 디지털 공간에서 전통적 남성성 규범이 어떻게 강화되는지를 주제로 강연했다. 지난달 4일 헤이스를 비대면으로 인터뷰한 내용을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사회가 남성에게 강요해온 전통적 남성성의 규범적 틀을 ‘맨박스’라고 명명했다. 강해야 하고,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며, 가족을 경제적으로 부양해야 한다는 기대 등이 맨박스의 특징이다. 이런 남성들의 자살 사고가 유의미하게 높게 나타났다는 점이 주목된다.
“맨박스에 갇힌 남성들은 조사 시점 전 2주간 자살 생각을 6.3배 정도 더 많이 한 것으로 나타났다. 남성성 규범이 여성을 향한 가해 경험뿐 아니라 남성 자신의 정신건강과도 연관돼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선진국’이라 불리는 나라들에서 여성혐오 콘텐츠의 확산이 더 두드러져 보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미국과 독일, 영국 등의 상황을 보면 경제적 계층 이동성이 떨어지고, 부의 격차가 심화되고 있다. 성인기에 진입하는 남성들은 안정적인 직장과 주거를 자신과는 먼 일로 느낀다. 여성혐오 콘텐츠는 ‘여성이나 성소수자들이 내 일자리를 빼앗아간다’는 식의 서사를 내세우는데, 이 서사가 확산될 수 있는 환경이 형성돼 있는 것이다.
동시에 젊은 세대가 관계를 배우고 소속감을 형성할 수 있는 공공 공간이나 커뮤니티 기반 시설에 대한 정부 투자가 크게 줄었다. 청소년 스포츠 프로그램이나 공공도서관, 방과 후 활동 등이 대표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많은 소년들이 정체성이나 소속감을 온라인 플랫폼에서 찾고 있다. 2023년 미국 남성 실태조사 보고서를 보면, 미국 남성의 48%가 ‘온라인 속 삶이 오프라인 삶보다 훨씬 가치 있다’고 답했다. 2021년 10~26세 소년 105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소년 3분의 2가 게임 공간에서의 삶이 ‘훨씬 진짜 같다’고 응답했다.”
-한국에서 불거진 ‘딥페이크 성범죄’가 떠오른다. 인공지능(AI) 기술로 실존 인물의 얼굴·음성·신체를 합성하는 성범죄가 청소년들 사이에서 발생하며 사회적 충격을 줬다.
“지난해 여름 한국을 방문했을 때 관련 이야기를 들었다. 가해자의 평균 연령이 14~15세였다고 하더라. 소년들이 하루아침에 여성혐오 콘텐츠를 접하거나 젠더 폭력을 저지르게 된 것은 아닐 것이다. 구조적으로 ‘특정 유형의 행동’을 하도록 장려하는 환경 속에 있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점을 봐야 한다.”
-‘특정 유형의 행동’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이퀴문도는 전통적 남성성 규범이 성희롱과 어떤 상관관계를 갖는지 분석했다. 사회가 요구하는 남성성, 즉 맨박스를 17가지 태도로 분류했다. ‘남성이라면 데이트 관계에서 최종적인 경제적 결정권을 가져야 한다’, ‘동성애자 남성은 진짜 남성이 아니다’, ‘남성은 존중받기 위해 폭력을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 같은 태도들이다.
미국 남성 가운데 이 17가지 태도에 동의하는 비율이 높은 상위 20%를 ‘맨박스에 갇힌 남성’으로, 동의 정도가 낮은 하위 20%를 ‘맨박스 밖의 남성’으로 정의했다. 그 결과 맨박스에 갇힌 남성의 71%가 성희롱 가해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반면 맨박스 밖의 남성은 7%만이 가해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남성성 규범이 실제 젠더 폭력과 상관관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앞으로는 남성성 규범과 온라인 성희롱 경험의 연관성을 더 분석해보려 한다.”
-소년들이 여성혐오 콘텐츠에 빠져들게 되는 특징은 무엇인가.
“문제가 되는 콘텐츠들은 데이트나 자기관리, 재정관리처럼 누구나 궁금해할 만한 주제를 다룬다. 겉으로는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면서 ‘네가 처한 어려운 상황은 여성이나 성소수자, 이민자 때문’이라며 분노의 대상을 특정 집단으로 돌린다.
(여성혐오 인플루언서로 알려진) 앤드류 테이트의 콘텐츠를 보는 사람들 중에는 ‘자금 관리 관련 내용만 본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안에 담긴 여성혐오적 규범과 가치관에 스며들게 된다. 아직 뇌가 발달 중이고, 주변에서 비판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어른이나 또래가 없는 소년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더욱 우려스럽다.”
-이와 관련한 연구결과들이 있다면 소개해줄 수 있을까.
“남성 청소년의 신분으로 유튜브나 틱톡 프로필을 생성했을 때 여성혐오 콘텐츠에 더 많이 노출된다는 연구가 있다.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과 켄트대 연구진이 가상 계정을 만들어 분석했는데, 초기에는 외로움이나 자기계발 같은 일반적인 영상이 추천되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여성을 비난하는 콘텐츠의 추천 비중이 커졌다. 추천 비율은 며칠 만에 13%에서 56%로 급증했다.
남성으로 설정된 프로필은 남성우월주의 콘텐츠를 검색하지 않아도 여성혐오 콘텐츠에 노출되기까지 평균 23분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연구도 있다.”
-유튜브 같은 디지털 플랫폼은 왜 별도의 제재를 하지 않는가.
“유튜브가 여성혐오 인플루언서의 수익 창출을 막는 등 규제 방법을 찾아가고 있긴 하다. 중요한 건 수익 모델 자체가 자극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분석한 여성혐오 콘텐츠 상당수는 플랫폼 이용약관을 명백히 위반하지 않았다. 욕설처럼 노골적인 방식 대신 ‘여성은 굳이 일하지 않아도 된다’는 식으로 여성의 역할을 제한하는 사고방식을 은근히 주입한다. ‘수정헌법 19조(여성 참정권)를 폐지해야 한다’는 내용의 콘텐츠가 미국에서 확산됐었는데, 유튜브나 틱톡의 이용약관을 위반하지 않았다. 사람들에게 고도의 자극을 주며 급속히 퍼졌다. 시청자 수나 댓글 수에 따라 제작자의 수익이 결정되는 구조에서 제작자들은 분노를 유발하는 자극적 콘텐츠를 반복적으로 생산하게 된다.”
-새롭게 등장한 AI 기술이 여성혐오를 부추긴 사례도 있는가.
“AI로 가짜 나체 사진을 만들어주는 이른바 ‘나체 이미지 생성 앱’이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앱은 여성 사진을 대상으로만 작동하는 식으로 구현됐다. 남성의 사진을 넣으면 남성의 생식기를 여성 생식기로 자동으로 바꾸는 식이다.
최근에는 AI 친구 앱에도 주목하고 있다. 대다수 앱이 젊은 남성을 주요 이용자로 삼고 있다. 영국 남성 실태조사를 보면, 연령이 낮을수록 AI를 로맨틱한 목적으로 사용하는 경향이 강했다. 남성의 외로움이 앱의 사업적 자산이 되고, ‘친밀감’이 거래되는 상품으로 변질될 위험이 있다.”
-‘남성 역차별’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한국만의 현상인가.
“미국에서도 맥락은 다르지만 남성이 소외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남성 자살률이나 학업 이탈률, 건강 문제가 자주 언급된다. 우리는 많은 젊은 남성들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다고 느끼면서 좌절한다고 본다.
문제의 핵심은 남성에게 특정 규범에 따라 행동하길 요구하는 성별화된 시스템 자체다. 전통적 남성성 규범은 남성에게 항상 자립적이고 감정을 드러내지 말 것을 요구해왔다. 그 규범을 벗어나면 조롱이나 낙인이 따른다.”
-‘남성 역차별’과 같은 맥락에서, ‘페미니즘’ 자체가 잘못됐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남성들이 경제적·사회적 장벽에 부딪히면서 그 고통을 ‘차별’로 인식할 수는 있다고 본다. 그러나 근본 원인은 남성에게 부과된 남성성 규범이다. 일부 남성 권리 운동 단체는 ‘남성이 힘들다’는 서사를 앞세워 ‘여성과 페미니즘이 지나치게 나아간 탓’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여성이 남성보다 잘 살기 때문에 남성이 힘든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남성의 자살률이 더 높은 것은 총기처럼 치명적인 수단을 사용하는 비율이 높기 때문이다. 자살 시도 비율 자체는 여성이 더 높다.”
-한국 정부는 남성 차별 영역을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성평등가족부에 성형평성기획과도 신설했다.
“단일 지표만 취사선택하면 문제의 근본 원인과 맥락을 놓치기 쉽다. 미국에서는 남성이 여성보다 학교 이탈률이나 학사 학위를 끝까지 이수하지 못하는 비율이 높다는 데이터가 있다. 이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남성과 여성이 각각 어떤 직업을 더 많이 선택하는지, 그 직업의 임금 수준은 어떤지도 함께 봐야 한다.
미국에서 여성은 교육이나 돌봄 분야에 많이 종사하는데, 이 직종들은 남성 중심 직종보다 임금 수준이 훨씬 낮다. 정책 기관이 남성의 고등교육 진입률을 들여다볼 거라면, 여성들이 종사하는 돌봄 노동이 왜 사회적으로 저평가돼 있는지도 함께 질문해야 한다.”
미국 워싱턴DC에 위치한 비영리 단체 ‘이퀴문도’(Equimundo)가 지난해 6월 발간한 ‘2025 미국·영국 남성 실태조사’에 담긴 내용이다. 이퀴문도는 젠더·사회정의를 위한 연구와 프로그램, 정책 변화를 주도하는 국제 단체다. 실태조사에 따르면 미국 남성 10명 중 8명은 ‘가족 부양’과 ‘침묵해야 한다’는 등 전통적 남성성을 강요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퀴문도에서 디지털 전략 전문가로 활동하는 캐롤라인 헤이스는 “전통적 남성성 규범은 젠더 폭력에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남성의 정신건강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강요받는 남성성’이 ‘해로운 남성성’으로 표출되며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헤이스는 지난해 여름 한국 UN여성기구를 방문해 디지털 공간에서 전통적 남성성 규범이 어떻게 강화되는지를 주제로 강연했다. 지난달 4일 헤이스를 비대면으로 인터뷰한 내용을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지난달 4일 줌을 통해 경향신문과 인터뷰 하고 있는 캐롤라인 헤이스 ‘이퀴문도’ 디지털 전략 전문가
-사회가 남성에게 강요해온 전통적 남성성의 규범적 틀을 ‘맨박스’라고 명명했다. 강해야 하고,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며, 가족을 경제적으로 부양해야 한다는 기대 등이 맨박스의 특징이다. 이런 남성들의 자살 사고가 유의미하게 높게 나타났다는 점이 주목된다.
“맨박스에 갇힌 남성들은 조사 시점 전 2주간 자살 생각을 6.3배 정도 더 많이 한 것으로 나타났다. 남성성 규범이 여성을 향한 가해 경험뿐 아니라 남성 자신의 정신건강과도 연관돼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선진국’이라 불리는 나라들에서 여성혐오 콘텐츠의 확산이 더 두드러져 보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미국과 독일, 영국 등의 상황을 보면 경제적 계층 이동성이 떨어지고, 부의 격차가 심화되고 있다. 성인기에 진입하는 남성들은 안정적인 직장과 주거를 자신과는 먼 일로 느낀다. 여성혐오 콘텐츠는 ‘여성이나 성소수자들이 내 일자리를 빼앗아간다’는 식의 서사를 내세우는데, 이 서사가 확산될 수 있는 환경이 형성돼 있는 것이다.
동시에 젊은 세대가 관계를 배우고 소속감을 형성할 수 있는 공공 공간이나 커뮤니티 기반 시설에 대한 정부 투자가 크게 줄었다. 청소년 스포츠 프로그램이나 공공도서관, 방과 후 활동 등이 대표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많은 소년들이 정체성이나 소속감을 온라인 플랫폼에서 찾고 있다. 2023년 미국 남성 실태조사 보고서를 보면, 미국 남성의 48%가 ‘온라인 속 삶이 오프라인 삶보다 훨씬 가치 있다’고 답했다. 2021년 10~26세 소년 105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소년 3분의 2가 게임 공간에서의 삶이 ‘훨씬 진짜 같다’고 응답했다.”
‘이퀴문도’가 2025년 발간한 미국 남성 실태조사 보고서. 이퀴문도 홈페이지 갈무리
-한국에서 불거진 ‘딥페이크 성범죄’가 떠오른다. 인공지능(AI) 기술로 실존 인물의 얼굴·음성·신체를 합성하는 성범죄가 청소년들 사이에서 발생하며 사회적 충격을 줬다.
“지난해 여름 한국을 방문했을 때 관련 이야기를 들었다. 가해자의 평균 연령이 14~15세였다고 하더라. 소년들이 하루아침에 여성혐오 콘텐츠를 접하거나 젠더 폭력을 저지르게 된 것은 아닐 것이다. 구조적으로 ‘특정 유형의 행동’을 하도록 장려하는 환경 속에 있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점을 봐야 한다.”
-‘특정 유형의 행동’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이퀴문도는 전통적 남성성 규범이 성희롱과 어떤 상관관계를 갖는지 분석했다. 사회가 요구하는 남성성, 즉 맨박스를 17가지 태도로 분류했다. ‘남성이라면 데이트 관계에서 최종적인 경제적 결정권을 가져야 한다’, ‘동성애자 남성은 진짜 남성이 아니다’, ‘남성은 존중받기 위해 폭력을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 같은 태도들이다.
미국 남성 가운데 이 17가지 태도에 동의하는 비율이 높은 상위 20%를 ‘맨박스에 갇힌 남성’으로, 동의 정도가 낮은 하위 20%를 ‘맨박스 밖의 남성’으로 정의했다. 그 결과 맨박스에 갇힌 남성의 71%가 성희롱 가해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반면 맨박스 밖의 남성은 7%만이 가해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남성성 규범이 실제 젠더 폭력과 상관관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앞으로는 남성성 규범과 온라인 성희롱 경험의 연관성을 더 분석해보려 한다.”
-소년들이 여성혐오 콘텐츠에 빠져들게 되는 특징은 무엇인가.
“문제가 되는 콘텐츠들은 데이트나 자기관리, 재정관리처럼 누구나 궁금해할 만한 주제를 다룬다. 겉으로는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면서 ‘네가 처한 어려운 상황은 여성이나 성소수자, 이민자 때문’이라며 분노의 대상을 특정 집단으로 돌린다.
(여성혐오 인플루언서로 알려진) 앤드류 테이트의 콘텐츠를 보는 사람들 중에는 ‘자금 관리 관련 내용만 본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안에 담긴 여성혐오적 규범과 가치관에 스며들게 된다. 아직 뇌가 발달 중이고, 주변에서 비판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어른이나 또래가 없는 소년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더욱 우려스럽다.”
-이와 관련한 연구결과들이 있다면 소개해줄 수 있을까.
“남성 청소년의 신분으로 유튜브나 틱톡 프로필을 생성했을 때 여성혐오 콘텐츠에 더 많이 노출된다는 연구가 있다.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과 켄트대 연구진이 가상 계정을 만들어 분석했는데, 초기에는 외로움이나 자기계발 같은 일반적인 영상이 추천되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여성을 비난하는 콘텐츠의 추천 비중이 커졌다. 추천 비율은 며칠 만에 13%에서 56%로 급증했다.
남성으로 설정된 프로필은 남성우월주의 콘텐츠를 검색하지 않아도 여성혐오 콘텐츠에 노출되기까지 평균 23분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연구도 있다.”
‘이퀴문도’가 2025년 발간한 영국 남성 실태조사 보고서. 이퀴문도 홈페이지 갈무리
-유튜브 같은 디지털 플랫폼은 왜 별도의 제재를 하지 않는가.
“유튜브가 여성혐오 인플루언서의 수익 창출을 막는 등 규제 방법을 찾아가고 있긴 하다. 중요한 건 수익 모델 자체가 자극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분석한 여성혐오 콘텐츠 상당수는 플랫폼 이용약관을 명백히 위반하지 않았다. 욕설처럼 노골적인 방식 대신 ‘여성은 굳이 일하지 않아도 된다’는 식으로 여성의 역할을 제한하는 사고방식을 은근히 주입한다. ‘수정헌법 19조(여성 참정권)를 폐지해야 한다’는 내용의 콘텐츠가 미국에서 확산됐었는데, 유튜브나 틱톡의 이용약관을 위반하지 않았다. 사람들에게 고도의 자극을 주며 급속히 퍼졌다. 시청자 수나 댓글 수에 따라 제작자의 수익이 결정되는 구조에서 제작자들은 분노를 유발하는 자극적 콘텐츠를 반복적으로 생산하게 된다.”
-새롭게 등장한 AI 기술이 여성혐오를 부추긴 사례도 있는가.
“AI로 가짜 나체 사진을 만들어주는 이른바 ‘나체 이미지 생성 앱’이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앱은 여성 사진을 대상으로만 작동하는 식으로 구현됐다. 남성의 사진을 넣으면 남성의 생식기를 여성 생식기로 자동으로 바꾸는 식이다.
최근에는 AI 친구 앱에도 주목하고 있다. 대다수 앱이 젊은 남성을 주요 이용자로 삼고 있다. 영국 남성 실태조사를 보면, 연령이 낮을수록 AI를 로맨틱한 목적으로 사용하는 경향이 강했다. 남성의 외로움이 앱의 사업적 자산이 되고, ‘친밀감’이 거래되는 상품으로 변질될 위험이 있다.”
원민경 성평등가족부 장관이 지난달 17일 오후 KT&G 상상플래닛 커넥트홀에서 열린 5차 성평등 토크콘서트 소다팝에서 ‘종합토론 및 ’26년 청년소통 운영방안‘을 주제로 청년 참가자들과 의견을 나누고 있다. 성평등가족부 제공
-‘남성 역차별’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한국만의 현상인가.
“미국에서도 맥락은 다르지만 남성이 소외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남성 자살률이나 학업 이탈률, 건강 문제가 자주 언급된다. 우리는 많은 젊은 남성들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다고 느끼면서 좌절한다고 본다.
문제의 핵심은 남성에게 특정 규범에 따라 행동하길 요구하는 성별화된 시스템 자체다. 전통적 남성성 규범은 남성에게 항상 자립적이고 감정을 드러내지 말 것을 요구해왔다. 그 규범을 벗어나면 조롱이나 낙인이 따른다.”
-‘남성 역차별’과 같은 맥락에서, ‘페미니즘’ 자체가 잘못됐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남성들이 경제적·사회적 장벽에 부딪히면서 그 고통을 ‘차별’로 인식할 수는 있다고 본다. 그러나 근본 원인은 남성에게 부과된 남성성 규범이다. 일부 남성 권리 운동 단체는 ‘남성이 힘들다’는 서사를 앞세워 ‘여성과 페미니즘이 지나치게 나아간 탓’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여성이 남성보다 잘 살기 때문에 남성이 힘든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남성의 자살률이 더 높은 것은 총기처럼 치명적인 수단을 사용하는 비율이 높기 때문이다. 자살 시도 비율 자체는 여성이 더 높다.”
-한국 정부는 남성 차별 영역을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성평등가족부에 성형평성기획과도 신설했다.
“단일 지표만 취사선택하면 문제의 근본 원인과 맥락을 놓치기 쉽다. 미국에서는 남성이 여성보다 학교 이탈률이나 학사 학위를 끝까지 이수하지 못하는 비율이 높다는 데이터가 있다. 이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남성과 여성이 각각 어떤 직업을 더 많이 선택하는지, 그 직업의 임금 수준은 어떤지도 함께 봐야 한다.
미국에서 여성은 교육이나 돌봄 분야에 많이 종사하는데, 이 직종들은 남성 중심 직종보다 임금 수준이 훨씬 낮다. 정책 기관이 남성의 고등교육 진입률을 들여다볼 거라면, 여성들이 종사하는 돌봄 노동이 왜 사회적으로 저평가돼 있는지도 함께 질문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