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2일), 기획재정부가 사라졌습니다.
명실상부 '넘버 원' 부처였던 기재부가 문을 닫았습니다. 대신 재정경제부(약칭 '재경부')와 기획예산처(약칭 '기획처')가 출범했습니다.
지난 2008년 재정경제부와 기획예산처가 하나로 합쳐진 결과가 기획재정부였는데, 18년 만에 다시 쪼개졌습니다.
기존 기획재정부의 예산실을 주축으로, 미래 전략과 재정집행을 담당하는 조직을 떼서 새로 꾸린 조직이 기획예산처입니다.
■ 18년 만에 두 집 살림, 왜?
재경부는 2차관 6실장 체제로 정책의 총괄과 조정, 화폐와 외환, 국제금융, 세제와 정부 회계 등 업무를 맡고, 현재와 같이 장관이 부총리를 겸임합니다.
기획처는 1차관 3실장 체제, 예산 편성과 집행 외에도 중장기 국가 발전 전략과 재정 정책 수립을 담당합니다.
재경부? 기획처? 다소 생소할 수 있습니다.
사실 정부 역사를 길게 보면, 두 부처의 만남과 헤어짐은 한두 번이 아닙니다.
1948년 기획처와 재무부로 시작했습니다. 1994년 재정경제원으로 합칩니다. 1998년 기획예산처와 재정경제부로 나눕니다. 2008년 기획재정부로 통합합니다. 그리고 올해 다시 기획예산처와 재정경제부로 '원상복구' 합니다.
뗐다가 붙였다가 뗐다가 붙였다…왜 그랬을까요?
1998년 분리 배경은 "대통령의 국정 관리 역량 강화와 예산 편성의 효율성 제고를 위하여"였습니다.
대통령의 국정 관리 역량? 쉽게 말해 둘을 붙여 놓으니 대통령 지시가 잘 안 먹히더라, 그러니 떼놨다는 의미입니다.
2008년 통합 이유는 "예산과 정책 기능의 분리 구조와 관련해 정책 조정력의 약화, 재정건전성에 대한 통제 취약 등 문제가 제기돼 기획재정부를 신설"이었습니다.
정책 조정력의 약화? 둘을 떼놨더니, 다른 부처들이 경제부총리 말도 안 듣고, 경제 정책이 빨리빨리 안 되더라, 그러니 다시 붙였다는 뜻입니다.
이번에 둘을 다시 떼 놓은 취지도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재경부와 기획처 직제 안에 나타난 내용을 보면, 기존 체제에 대한 문제의식이 명확히 드러납니다.
| - "특정 부처에 집중된 기능과 권한을 분산 및 재배치하기 위하여 기획재정부를 재정경제부로 개편" - "균형적 예산 편성과 배분 및 중장기 재정 전략 기능을 강화하기 위하여 기획예산처를 신설" |
기존의 기획재정부가 너무 셌다는 반성입니다. 경제 정책의 큰 그림을 그리면서 동시에 예산 권한도 독점하고 있는 게 맞냐는 겁니다.
"이 나라가 기재부 나라냐"라는 유명한 한마디로 요약됩니다.
기획처를 떼 중장기 전략 기능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도 깔려 있습니다.
■ '원톱' 에서 '투톱'으로…잘 굴러갈까?
그런데 이런 생각도 듭니다.
2008년 이전의 '분리 체제'가 잘 굴러갔다면, 애초에 기재부로 합칠 일도 없지 않았을까요.
그때는 틀렸던 게, 지금은 맞는 걸까요.
아래는 2001년 3월, 토요일 자 동아일보 8면에 실린 기사입니다.
감세 정책을 둘러싸고 경제부처가 '삐걱' 인다는 내용. 진념 당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과 전윤철 당시 기획예산처 장관이 부딪쳤습니다.
당시 진 부총리가 "과표 현실화에 맞춰 일부 세율을 낮춰 가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데에 대해, 전 장관이 한 대학원 특별 강연에서 감세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을 말한 건데요.
전 장관은 국가 부채가 많고, 조세부담률이 OECD 평균보다 훨씬 낮은 점을 거론하면서 "조세 감면 정책은 바람직하지 않다", "조세 감면으로 시장 수요를 증대시킬 수 있다는 생각은 환상이며 곧바로 경기 활성화를 가져오는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진 부총리 실명을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누가 봐도 기획예산처 장관이 경제부총리의 정책을 비판한 맥락이었습니다.
이 일화는 재경부와 기획처, 두 조직이 각각 무엇을 중심에 두고 일하느냐의 차이를 잘 보여줍니다.
재경부는 전반적인 경제 정책을 총괄합니다. 당장의 경기를 살릴 방안을 고민해야 합니다. 감세로 돈을 풀어 경기 부양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반면, 기획처는 곳간지기입니다. 중장기적인 재정건전성이 더 우선일 수밖에 없습니다.
올해부터 다시 쪼개진 출범한 두 부처도 언제든 이런 충돌을 할 수 있습니다. 사실 그런 충돌을 하라고 재분리한 측면도 있으니까요.
우석진 명지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약간 비효율적이긴 할 것"이라면서도 "부처 간 이견이 있더라도 서로 경쟁하는 측면에서 조금 더 좋은 정책이 나올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우 교수는 특히 "(조직이) 하나의 부처에 있으면 다 같이 똘똘 뭉쳐서 매우 큰 이권 그룹이 되는데, 국민 입장에서 봤을 땐 분리를 해놓는 게 이득이 된다"라고도 덧붙였습니다.
다만 "(재경부가) 정책 조정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어떤 식으로 제대로 된 기능을 하게 할 것인지 고민해야 할 것 같다"며 대통령과 국무총리 등이 힘을 실어줄 필요성도 있다고 짚었습니다.
■ 예산권 없는 부총리, 말발 먹힐까
분명한 건 경제부총리 권한의 상대적 약화입니다.
지금까진 경제 정책 수립 권한이든 그걸 관철하는 정책 수단(대표적으로, 예산권)이든 모두 경제부총리 소관이었습니다. 경제 정책 파트와 예산 파트의 이견이 있어도 한 부처 내에서의 이견이었기 때문에, 수장인 부총리의 한마디로 '정리'가 가능했습니다.
다른 부처가 뜻대로 잘 안 움직일 때는, 예산권을 앞세워 압박 또는 설득이 이뤄졌습니다. 이런 과정을 고상한 말로 '정책 조정'이라 칭했습니다.
이제는 예산권은 경제부총리에게 없습니다. 형식적으로는 더 '센' 국무총리로 갔습니다. 원래 재경부와 금융위를 통합해 금융 정책 기능을 가져오려던 계획도 무산됐습니다.
어제(2일) 재경부 출범식에서 구 부총리는 "무엇보다 정책 성과로 재조명되는 재경부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권한이 부족해 경제 성과를 못 낼 수도 있는 우려에 대한 답변으로 해석됩니다.
존재감과 역할을 고민해야 하는 건 기획처도 마찬가지입니다. 출범식에 직접 참석한 김민석 국무총리는 기획처에 "국민께서 체감할 수 있는 성과를 내서 기획예산처의 존재 이유를 확실하게 보여주기를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재경부와 기획처. 18년 만의 재분리가 옳은 선택이었음을 입증할까요. 비효율과 부작용만 도드라져, 다시 합치자는 기재부 부활론이 득세할까요.
올해가 첫 시험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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