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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크모어

올 수능 영어 1등급 3.1% 불과
영어 등급 하락으로 입시 혼란
여파는 사교육 시장으로도 번져

평가원장 사퇴… 재발 방지책 예고
신뢰 회복 가능할지 미지수

세종시에서 올해 중3 학부모가 되는 M씨(45)는 자녀 영어 학원을 그만 보낼 생각이었다. 영어 점수가 안정적으로 나오는 데다, 대입과 직결되는 고1 내신 준비 시간을 늘리라는 조언을 받아들였다. 대학수학능력시험 과목으로 고1 때 공부하는 통합사회, 통합과학도 고민이었다. 하지만 영어 학원을 끊지 못했다. 국어·수학 등 다른 사교육까지 비용 부담이 상당했지만 학원 측 얘기에 고개를 끄떡일 수밖에 없었다. 학원의 영어 강사는 “이번 수능 영어 보세요. 영어 좀 잘한다고 절대평가라고 방심했다가 수시 수능 최저학력기준 못 맞춘 아이들 부지기수”라고 말했다.

2일 입시 업계에 따르면 2026학년도 수능 난이도 조절 실패는 사교육 시장에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영어는 1등급 비율이 3.1%로 ‘난이도 참사’였다. 영어 등급 하락으로 수시에서 최저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인원이 속출하는 등 입시 전반에 혼란이 컸다. 사교육의 불안 마케팅 소재를 교육부와 한국교육과정평가원(평가원)이 제공한 것이다.

‘양치기’된 교육부와 평가원

국어·수학에서도 ‘널뛰기 난이도’가 빈번하지만 최근 출제 당국이 가장 애 먹는 영역은 영어다. 올해 수능 6월 모의평가 영어 1등급 비율은 19.1%였다. 수험생 5명 중 1명이 90점 이상으로 너무 쉬웠다. 반면 9월 모의평가는 4.5%로 매우 어려웠다. 평가원이 주관하는 공식 시험인 6월과 9월 모의평가는 수험생 입장에서 당해 수능 난이도의 가늠자다. 수험생들은 6월 모의평가보다 어렵고 9월 모의평가보다 쉬울 걸로 예상했지만 크게 빗나갔다. 지난해 역시 1등급 비율이 6월 모의평가가 1.4%, 9월 10.9%, 수능 6.2%로 오락가락했다.

교육부는 조만간 수능 영어 출제과정을 조사해 재발 방지책을 내놓겠다고 예고했지만 신뢰 회복이 가능할지 미지수다. 일단 수능 난이도 조절은 출제 당국 능력 밖이란 분석이 많다. 특히 수능 응시자의 30%에 달하는 ‘N수생’의 학력 수준을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다. 응시 집단의 실력을 모르는 상태에서 정교한 난이도 조절은 운의 영역인 셈이다.

교육부와 평가원도 이런 사실을 잘 안다. 하지만 대입 제도 개편은 폭발성 있는 이슈이기 때문에 교육부 결단만으론 불가능하다. 대통령실은 물론이고 정치권 동의 등을 받아야 하지만 쉽지 않다. 그래서 문제가 터지면 평가원장을 방패삼아 눈앞의 위기만 넘기는 데만 급급할 수밖에 없었다는 지적이다.

눈앞의 위기만 넘기고 보자는 행태가 드러난 최근 사례는 지난 2023년 6월 ‘킬러문항’ 논란이었다. 교육부는 윤석열 당시 대통령의 불호령을 듣고 킬러문항 방지책을 만들었다. 당시 영어 출제 기준을 제시했는데, ‘전문적인 혹은 관념적 추상적 내용, 과도하게 길고 복잡한 문장, 어려운 어휘 등으로 영어를 해석해도 이해하기 어려운 문항’을 킬러문항으로 규정하고 내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이런 조건들을 충족하고도 5지 선다형 출제에서 변별력 유지가 가능한지에는 그냥 “지켜보라”며 말을 아꼈다.

교육부의 약속은 불과 2년 뒤 이번 수능에서 ‘공수표’였다는 게 확인됐다. 영어에서는 독일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의 법철학, 게임과 아바타 관련 뇌 과학 이론, 원어민들에게도 생소한 ‘컬처테인먼트’라는 합성어가 등장했다. 영국 BBC와 가디언, 미국 뉴욕타임즈 등 주요 영어권 외신들의 냉소적인 비판을 받을 정도로 난해했다.

국어와 수학에도 풍선효과

이처럼 무너진 신뢰는 영어 사교육 활용 패턴에도 영향을 끼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교육부의 지난해 사교육비 통계를 보면 초등학교 시기에는 영어 사교육비가 국어나 수학보다 많다. 영어 사교육은 중학교 시기 정점을 찍은 뒤 고교에서는 줄어드는 경향이 뚜렷하다. 상위권 수험생들은 고교 진학 전후로 안정적으로 90점이 나오면 국어와 수학 등에 에너지를 쏟는 게 일반적이었다. 절대평가여서 100점이든 90점이든 똑같은 1등급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수능에서 ‘안정적 1등급’의 기준이 무너졌다. 영어 등급 하락으로 수능 최저기준을 맞추지 못하는 ‘뜨거운 맛’을 본 것인데, 영어 사교육 업계가 속으로 쾌재를 부를 일이다.

국어와 수학 사교육도 불안 마케팅을 소재로 삼는 모습이다. 교육부와 평가원은 2027학년도 수능에서 영어 1등급 비율을 6~10% 수준에서 출제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평가원장이 사퇴하고 영어권 외신 입방아에 오를 정도로 홍역을 치른 만큼 1등급 비율을 2~3배 늘리겠다는 의미다.

하지만 출제 당국에게 전반적인 상위권 변별력 확보는 지상 과제다. 현행 입시에서 수능이 변별력을 상실해 만점자와 1등급 구분점수의 차이가 없을 경우 한 문항 실수로 등급이 갈려 더 큰 혼선이 빚어진다. 따라서 영어 난도를 낮추는 대신 국어와 수학 등이 어려워지는 ‘풍선효과’가 나타난다는 전망이 설득력을 얻기 쉽다. 학부모 입장에서는 영어에 대한 불안감에 더해 국어와 수학 사교육비까지 고민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 것이다.

한 입시 전문가는 “사교육은 과목들이 상호 영향을 준다. 예컨대 영어가 어려우면 국어 사교육에선 난해한 영어 지문을 파악하려면 국어를 잘해야 한다는 또 다른 마케팅 포인트가 생긴다”며 “수능 난이도 조절 실패는 그 여파가 몇 년 간다. 출제 당국의 난이도 조절 능력이 한계에 다다랐다는 점을 받아들이고 근본적인 난이도 안정화 방안에 머리를 맞댈 때”라고 말했다.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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