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로 뻗어나가는 편의점·백화점
현지화 전략 대신 ‘한국식’ 전면에 내세우고
콘텐츠로 국경 넘는 새 공식 만든 K유통
K푸드·패션·뷰티에서 ‘공간의 수출’까지 확장
‘유통은 국경을 넘을 수 없다’는 옛말
‘케이(K)팝’, ‘K드라마’로 대표되던 ‘K’의 영향력이 여러 유통산업 분야에서 전 세계로 확산하고 있다. 과거 해외 진출 과정에서 현지화는 필수로 여겨졌지만, 이제는 한국만의 고유한 방식과 감성이 오히려 새 표준으로 받아들여지는 시대다.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경쟁력이 된 사례들을 조명하고, 앞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K’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짚어본다. [편집자 주]
지난해 12월 10일 미국 하와이 호놀룰루의 다운타운. 따뜻한 바람이 불고, 야자수 나무가 즐비한 이곳에 한국 동네 어귀에서 볼만한 익숙한 간판이 하나 보였다. 지난해 11월 이곳에 개장한 편의점 CU 다운타운점의 간판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한국의 편의점으로 순간이동을 한 것 같았다. 계산대 앞에는 스페인어, 영어, 일본어를 쓰는 관광객들이 보라색 장바구니를 들고 서 있었다. 장바구니에는 삼각김밥과 하이볼, 라면이 담겨있었다. 일본에서 여행 온 하노카(42)씨는 “와이키키 해변에서 놀면서 먹을 것들을 좀 샀다”면서 “한국 여행을 가서 먹었던 것 위주로 골랐다”고 말했다.
‘유통은 국경을 넘을 수 없다’는 말이 조금씩 깨지고 있다. K푸드, K라이프스타일로 무장한 편의점에 해외 시장에서 약진을 거듭하자 나오는 평가다. 과거 해외 시장에서 쓴맛을 봤던 백화점들도 전략을 수정해 해외 시장을 다시 공략하고 있다. 10여 년 전에 통용되던 성공 방정식도 이제 달라졌다. 한류가 편의점과 백화점의 해외 진출 공식까지 바꾸고 있다는 것이다.
해외로 뻗어나가는 K편의점·백화점
편의점의 해외 시장 진출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1일 편의점 CU를 운영하는 BGF리테일에 따르면 CU는 지난 2018년에 몽골 1호점을 내고 최근 점포 수를 532개까지 확대했다. 2021년 진출한 말레이시아에서는 점포 167곳을 개점했다. 2024년 진출한 카자흐스탄에 개점한 CU 점포는 50곳이다.
CU는 최근엔 하와이에도 진출했다. 지난해 11월 개점한 신생 점포지만 하와이 호놀룰루에 방문하는 여행객은 미국 편의점 ‘ABC스토어’와 일본 소매점 ‘돈키호테’, 한국 편의점 CU 등 세 곳을 두루 들르는 추세다.
GS25도 2021년 몽골에 진출해 현재는 284개 매장을 보유하고 있다. 2018년 진출한 베트남 점포는 402점까지 불어난 상태다. 이마트24는 말레이시아와 캄보디아에 총 111개 점포를 개점했다. 지난해엔 인도에 이마트24가 진출했고, 안착했다는 판단에 따라 올해 2호점도 개점할 계획이다.
편의점만 국경을 넘나드는 것은 아니다. 백화점은 콘텐츠를 파는 방식으로 해외 진출을 꾀하고 있다. 시작은 신세계백화점이었다. 2023년 5월 신세계백화점은 국내 패션 디자이너 브랜드의 글로벌 진출 플랫폼 ‘K패션82’를 런칭해 가시적인 성과를 냈다. 그해 11월엔 태국 시암 디스커버리에 두 달 동안 ‘K패션82’ 팝업스토어를 운영하면서 ‘앨리스마샤’, ‘라임라이크’, ‘류클래식’ 등이 동남아 시장에 소개하고 판매 증진에 힘썼다.
현대백화점의 K콘텐츠 수출 플랫폼 ‘더현대 글로벌’의 팝업스토어도 성적표가 좋은 편이다. 팝업 형태로 한류 날개를 단 한국 콘텐츠를 소개한 더현대글로벌이 일본과 대만 등지에서 거둔 누적 매출은 57억원이다. 대만 타이베이 신광미쓰코시백화점에서 운영 중인 팝업스토어는 개점 두 달 만에 누적 매출 12억원을 기록했다. 이 백화점 팝업스토어 역사상 최대 매출이다. 같은 기간 방문객 수는 3만명을 넘어섰다.
과거의 성공 방식이 달라졌다
유통사의 세계 시장 공략은 사실 2010년대에 활발하게 이뤄졌던 일이다. 다만 현지 시장 성장 정체 등에 따라 성공하지 못했다. 우리나라에도 까르푸가 상륙했다가 이마트나 롯데마트의 경쟁력에 뒤따르지 못해 항복선언을 했다. 당시 경영학 대가들은 앞다퉈 현지화가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최근 우리 유통사들의 성공 전략은 ‘한국식’으로 바뀌었다. 하와이의 CU점포는 국내 CU홍대상상점에서 선보인 ‘라면 라이브러리’ 형식을 그대로 하와이 매장에 도입했다. 이는 현지 파트너사의 요청에 따른 것이다. 라면 라이브러리는 수백 종의 봉지라면을 한 공간에 전시하고, 한국식 라면 문화를 상징하는 다양한 체험형 콘텐츠를 도입한 곳이다. 이른바 ‘한강라면’으로 불리는 즉석 조리기기와 함께 시식대를 갖추고, 맵기를 나타내는 스코빌 지수 등에 따라 라면 인덱스를 제공한다.
또 하와이 CU다운타운점은 한국 편의점에서 다루는 제품을 그대로 판매하고 있다. 전주비빔 삼각김밥, 참치마요 삼각김밥 등이 대표적이다. BGF리테일에 따르면 지난 12월 CU 하와이 호놀룰루 다운타운점에서 가장 많이 판매된 품목 중 40%가 김밥류였다. BGF리테일 관계자는 “한국 여행 경험이 있는 외국인이 늘고 한국음식에 대한 선호 층이 넓어지면서 생긴 변화로 본다”고 했다.
유통업을 부동산업으로 규정하고 건물과 부지부터 물색했던 방식에서 변화를 주기도 했다. 과거엔 단기간에 점포를 늘리는 방식으로 시장 공략에 나섰다. 아니면 경쟁이 가장 치열한 입지에서 사업을 시작하는 것이 통용됐던 성공 방정식이었다. 하지만 이제 유통업은 콘텐츠업으로 변신했다. 팝업 형태로 몸집을 해 가볍게 진출하고 있다.
현대백화점은 K팝 아이돌이 착용한 ‘스탠드오일’이나 ‘노매뉴얼’을 앞세웠다. 블랙핑크의 제니나 세븐틴 등 인기 아이돌이 자주 착용했던 브랜드다. 한류를 등에 업고 프리미엄·럭셔리 이미지도 구축했다. 이는 객단가 상승으로 이어진다는 평가다.
한류 등에 업고 해외 시장 공략 고삐 죄는 유통사들
앞으로도 한류를 등에 업은 유통사의 시장 확장 시도는 이어질 전망이다. 성공한다면 내수시장의 포화에 따른 성장 둔화 상황을 타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류의 위상이 특정 팬덤만 향유하던 서브컬처(비주류 문화)에서 전 세계 대중이 일상적으로 소비하는 메인스트림(주류 문화)으로 자리 잡은 것도 중요한 이유다.
김난도 서울대학교 소비자학과 명예교수는 “CJ 올리브영이나 편의점은 단순히 한국 상품을 파는 곳이 아니라, 한국의 최신 트렌드를 가장 먼저 접할 수 있는 ‘문화 거점’으로 현지 소비자에게 인식되고 있다”면서 “공간의 수출이 시작됐다”고 했다.
현지화 전략 대신 ‘한국식’ 전면에 내세우고
콘텐츠로 국경 넘는 새 공식 만든 K유통
K푸드·패션·뷰티에서 ‘공간의 수출’까지 확장
‘유통은 국경을 넘을 수 없다’는 옛말
‘케이(K)팝’, ‘K드라마’로 대표되던 ‘K’의 영향력이 여러 유통산업 분야에서 전 세계로 확산하고 있다. 과거 해외 진출 과정에서 현지화는 필수로 여겨졌지만, 이제는 한국만의 고유한 방식과 감성이 오히려 새 표준으로 받아들여지는 시대다.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경쟁력이 된 사례들을 조명하고, 앞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K’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짚어본다. [편집자 주]
지난해 12월 10일 미국 하와이 호놀룰루의 다운타운. 따뜻한 바람이 불고, 야자수 나무가 즐비한 이곳에 한국 동네 어귀에서 볼만한 익숙한 간판이 하나 보였다. 지난해 11월 이곳에 개장한 편의점 CU 다운타운점의 간판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한국의 편의점으로 순간이동을 한 것 같았다. 계산대 앞에는 스페인어, 영어, 일본어를 쓰는 관광객들이 보라색 장바구니를 들고 서 있었다. 장바구니에는 삼각김밥과 하이볼, 라면이 담겨있었다. 일본에서 여행 온 하노카(42)씨는 “와이키키 해변에서 놀면서 먹을 것들을 좀 샀다”면서 “한국 여행을 가서 먹었던 것 위주로 골랐다”고 말했다.
‘유통은 국경을 넘을 수 없다’는 말이 조금씩 깨지고 있다. K푸드, K라이프스타일로 무장한 편의점에 해외 시장에서 약진을 거듭하자 나오는 평가다. 과거 해외 시장에서 쓴맛을 봤던 백화점들도 전략을 수정해 해외 시장을 다시 공략하고 있다. 10여 년 전에 통용되던 성공 방정식도 이제 달라졌다. 한류가 편의점과 백화점의 해외 진출 공식까지 바꾸고 있다는 것이다.
편의점 CU가 지난해 11월 12일 미국 하와이에 첫 점포를 열고 미국 편의점 시장에 진출했다. CU를 운영하는 BGF리테일은 하와이 현지 기업 'WKF Inc.'와 편의점 전문 신설 법인인 'CU Hawaii LLC'와 마스터 프랜차이즈(MFC) 계약을 통해 하와이 1호점 'CU 다운타운점'을 열었다고 밝혔다. 사진은 개점 첫날 대기줄이 생긴 CU 하와이 1호점의 전경. /BGF리테일 제공
해외로 뻗어나가는 K편의점·백화점
편의점의 해외 시장 진출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1일 편의점 CU를 운영하는 BGF리테일에 따르면 CU는 지난 2018년에 몽골 1호점을 내고 최근 점포 수를 532개까지 확대했다. 2021년 진출한 말레이시아에서는 점포 167곳을 개점했다. 2024년 진출한 카자흐스탄에 개점한 CU 점포는 50곳이다.
CU는 최근엔 하와이에도 진출했다. 지난해 11월 개점한 신생 점포지만 하와이 호놀룰루에 방문하는 여행객은 미국 편의점 ‘ABC스토어’와 일본 소매점 ‘돈키호테’, 한국 편의점 CU 등 세 곳을 두루 들르는 추세다.
GS25도 2021년 몽골에 진출해 현재는 284개 매장을 보유하고 있다. 2018년 진출한 베트남 점포는 402점까지 불어난 상태다. 이마트24는 말레이시아와 캄보디아에 총 111개 점포를 개점했다. 지난해엔 인도에 이마트24가 진출했고, 안착했다는 판단에 따라 올해 2호점도 개점할 계획이다.
편의점만 국경을 넘나드는 것은 아니다. 백화점은 콘텐츠를 파는 방식으로 해외 진출을 꾀하고 있다. 시작은 신세계백화점이었다. 2023년 5월 신세계백화점은 국내 패션 디자이너 브랜드의 글로벌 진출 플랫폼 ‘K패션82’를 런칭해 가시적인 성과를 냈다. 그해 11월엔 태국 시암 디스커버리에 두 달 동안 ‘K패션82’ 팝업스토어를 운영하면서 ‘앨리스마샤’, ‘라임라이크’, ‘류클래식’ 등이 동남아 시장에 소개하고 판매 증진에 힘썼다.
현대백화점의 K콘텐츠 수출 플랫폼 ‘더현대 글로벌’의 팝업스토어도 성적표가 좋은 편이다. 팝업 형태로 한류 날개를 단 한국 콘텐츠를 소개한 더현대글로벌이 일본과 대만 등지에서 거둔 누적 매출은 57억원이다. 대만 타이베이 신광미쓰코시백화점에서 운영 중인 팝업스토어는 개점 두 달 만에 누적 매출 12억원을 기록했다. 이 백화점 팝업스토어 역사상 최대 매출이다. 같은 기간 방문객 수는 3만명을 넘어섰다.
과거의 성공 방식이 달라졌다
유통사의 세계 시장 공략은 사실 2010년대에 활발하게 이뤄졌던 일이다. 다만 현지 시장 성장 정체 등에 따라 성공하지 못했다. 우리나라에도 까르푸가 상륙했다가 이마트나 롯데마트의 경쟁력에 뒤따르지 못해 항복선언을 했다. 당시 경영학 대가들은 앞다퉈 현지화가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최근 우리 유통사들의 성공 전략은 ‘한국식’으로 바뀌었다. 하와이의 CU점포는 국내 CU홍대상상점에서 선보인 ‘라면 라이브러리’ 형식을 그대로 하와이 매장에 도입했다. 이는 현지 파트너사의 요청에 따른 것이다. 라면 라이브러리는 수백 종의 봉지라면을 한 공간에 전시하고, 한국식 라면 문화를 상징하는 다양한 체험형 콘텐츠를 도입한 곳이다. 이른바 ‘한강라면’으로 불리는 즉석 조리기기와 함께 시식대를 갖추고, 맵기를 나타내는 스코빌 지수 등에 따라 라면 인덱스를 제공한다.
또 하와이 CU다운타운점은 한국 편의점에서 다루는 제품을 그대로 판매하고 있다. 전주비빔 삼각김밥, 참치마요 삼각김밥 등이 대표적이다. BGF리테일에 따르면 지난 12월 CU 하와이 호놀룰루 다운타운점에서 가장 많이 판매된 품목 중 40%가 김밥류였다. BGF리테일 관계자는 “한국 여행 경험이 있는 외국인이 늘고 한국음식에 대한 선호 층이 넓어지면서 생긴 변화로 본다”고 했다.
유통업을 부동산업으로 규정하고 건물과 부지부터 물색했던 방식에서 변화를 주기도 했다. 과거엔 단기간에 점포를 늘리는 방식으로 시장 공략에 나섰다. 아니면 경쟁이 가장 치열한 입지에서 사업을 시작하는 것이 통용됐던 성공 방정식이었다. 하지만 이제 유통업은 콘텐츠업으로 변신했다. 팝업 형태로 몸집을 해 가볍게 진출하고 있다.
현대백화점은 K팝 아이돌이 착용한 ‘스탠드오일’이나 ‘노매뉴얼’을 앞세웠다. 블랙핑크의 제니나 세븐틴 등 인기 아이돌이 자주 착용했던 브랜드다. 한류를 등에 업고 프리미엄·럭셔리 이미지도 구축했다. 이는 객단가 상승으로 이어진다는 평가다.
지난해 5월 일본 도쿄 시부야 파르코에서 열린 더현대 글로벌 노이스 팝업스토어에 들어가기 위해 줄을 선 소비자들./현대백화점 제공
한류 등에 업고 해외 시장 공략 고삐 죄는 유통사들
앞으로도 한류를 등에 업은 유통사의 시장 확장 시도는 이어질 전망이다. 성공한다면 내수시장의 포화에 따른 성장 둔화 상황을 타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류의 위상이 특정 팬덤만 향유하던 서브컬처(비주류 문화)에서 전 세계 대중이 일상적으로 소비하는 메인스트림(주류 문화)으로 자리 잡은 것도 중요한 이유다.
김난도 서울대학교 소비자학과 명예교수는 “CJ 올리브영이나 편의점은 단순히 한국 상품을 파는 곳이 아니라, 한국의 최신 트렌드를 가장 먼저 접할 수 있는 ‘문화 거점’으로 현지 소비자에게 인식되고 있다”면서 “공간의 수출이 시작됐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