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 옹호 세력과 단절 의지
이혜훈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왼쪽)와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 연합뉴스
이혜훈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가 내란 옹호·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반대 전력을 사과하면서 12·3 비상계엄 선포를 ‘내란’이라고 못 박았다. 비상계엄 선포를 내란으로 규정하는 것은 ‘내란몰이’라는 보수 정치권의 인식에서 벗어난 모습을 보인 것이다.
이 후보자는 30일 오전 서울 중구 다동 예금보험공사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는 길에 기자들과 만나 “1년 전 엄동설한에 내란 극복을 위해 애쓴 모든 분께 머리 숙여 사과드린다”며 “당파성에 매몰돼 사안의 본질을 놓쳤다”고 말했다. 내란사태 이후 윤 전 대통령 탄핵과 구속 반대해 왔던 자신의 행보를 사죄한 것이다. 국민의힘 전신인 한나라당과 새누리당에서 세 차례 국회의원을 지낸 이 후보자는 이틀 전까지 국민의힘 중구성동구을 당협위원장이었다.
1000여자 분량의 짧은 입장문에서 가장 눈길을 끈 대목은 ‘내란’ 표현이었다. 이 후보자는 “내란 극복”, “내란은 헌정사에 있어선 안 될 분명히 잘못된 일”, “내란은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불법적 행위” 등이라며 세 차례에 걸쳐 ‘내란’이라는 표현을 썼다. 비상계엄 선포 직후 “현직 대통령이 국방부 장관 등과 공모해 헌법과 법률이 정한 절차에 의하지 않고 대한민국 영토에서 국헌 문란의 목적 아래 폭동 행위를 했다”며 윤 전 대통령을 내란죄로 고발하고 지금껏 내란 청산 의지를 강조해 온 정부·여당과 궤를 같이한 것이다.
사법부 판단에 앞서 비상계엄 선포를 내란으로 규정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게 국민의힘의 일관된 입장이었던 만큼, 이 후보자가 내란 옹호 세력과의 단절 의지를 적극적으로 드러낸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국민의힘은 이른바 ‘내란몰이’로 보수 정치권을 내란 세력으로 매도하고 있다며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지난 2일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혐의를 받는 추경호 의원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앞두고 “국민의힘을 내란 프레임에 가두기 위한 악의적인 정치 영장”(송언석 원내대표)이라고 반발한 것이 대표적이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도 지난 22일 국회 본회의에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상정되자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 주자로 나서 “12·3 비상계엄은 사실상 2시간 만에 종료됐다”며 “내란으로 판단할지는 사법부 결정을 기다려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박지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이혜훈 장관 후보자가 국민께 내란동조 옹호에 사과했다”라며 “잘못을 사과하고 반성하고, 책임지는 것이 정치”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