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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9월 경기 포천시 승진과학화훈련장에서 K2 흑표전차가 전차포 사격하고 있다. 육군 제공
2022년 9월 경기 포천시 승진과학화훈련장에서 K2 흑표전차가 전차포 사격하고 있다. 육군 제공




'지상전의 최강자' K2 흑표 전차<3>

개발 단계인 전차를 수출하겠다던 국방과학연구소 전차단장의 꿈



필자는 방위사업청이 출범한 2006년 1월 국내 방위산업 육성 정책을 담당하는 방산정책과장으로 부임했다. K2 흑표 전차의 장인들과 만남이 시작된 해이다. 첫 번째 만남은 우연하게 이뤄졌다. 2006년 여름 어느 날, 점심 식사를 마치고 가벼운 산책을 하던 도중, 같은 국 소속인 국제협력과의 한 직원이 국방과학연구소(ADD) 전차 개발 단장이라며 연구자 한 분을 소개해 주었다. 다른 기술개발 연구자들과는 달리 완전 시골 아저씨와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전차 단장님은 무슨 일로 국제협력과 직원과 만나게 되셨나요?“

“우리가 개발중인 전차를 수출하려고요.”

잔잔한 미소를 짓던 전차 단장의 답변을 듣는 순간 머리 속에 여러 생각이 떠올랐다. ‘아직 개발도 완료되지 않은 전차를 수출하려고 하다니, 이게 가능한 일인가?’, ‘개발 당사국인 우리도 아직 써보지 못한 전차를 수입하려는 나라가 과연 있을까?’ 궁금해서 물었다.

“어느 나라에 수출하시려고요?”

“터키(현 튀르키예)요.”

곧장 사무실로 돌아와 전차 개발 진행 상황이 어떤지 파악해 보았다.

여기서 잠깐! K2 전차 개발 경로우리의 독자 모델 K2 전차 개발은 전차의 차체 개발과 파워팩 개발을 구분하여 투 트랙으로 진행되었다.

우선 체계개발 트랙을 통해 전차 차체를 개발하는 것이다. 최신화된 사격통제장치와 안정화된 포탑, 모듈형 복합장갑 등 핵심 구성품을 자체 개발하여 탑재한 전차 차체의 개발이다. ADD가 중심이 되어 1995년 개발에 착수했고, 현대로템과 협력업체가 시제 개발 업체로 참여하여 2008년 시험평가에 합격하였다.

이어서 국내 기술 기반이 취약하고, 높은 기술적 난도를 가졌으나 반드시 국산화해야 하는 핵심 구성품인 파워팩(엔진+변속기) 개발은 핵심기술개발 트랙으로 추진되었다. 전차 차체개발이 시작된 지 10년이 지난 2005년부터 1,500 마력급 엔진은 HD현대인프라코어(당시 두산 인프라코어), 변속기는 SNT 다이내믹스(당시 SNT 중공업)의 주도 하에 개발이 시작됐다.

파워팩은 수많은 시행착오와 우여곡절 끝에 2024년 말 전차 탑재가 최종 결정되어 K2 전차의 완전 국산화가 실현되었다. 이러한 K2 전차의 개발은 우리나라 자동차 개발과 가장 유사한 방식으로 진행됐다. 먼저 차체를 개발하고 수입 파워팩을 장착하여 해외 수출 성과까지 올린 뒤 난도가 가장 높은 파워팩을 개발하여 완전 국산화를 달성하는 방식이다.

개발 단계부터 수출을 염두에 뒀던 K2 전차



전차 개발 진도를 파악해 보니, 사격통제장치와 복합장갑 등 전차 차체의 핵심 구성품 개발은 완료한 상태였고 전차 차체에 대한 최종 시험평가를 준비하는 중이었다. 체계개발 트랙 사업은 불과 10여 년 만에 거의 완료 단계에 이른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방위사업청이 출범하기 훨씬 전부터 터키와 전차 차체의 공동개발을 논의하는 등 협력을 추진하고 있었다. 개발 최초 단계에서부터 수출을 염두에 둔 것이다.

당시 우리나라 방산 수출은 연평균 2억 달러 미만으로 미미한 수준이었고, 방위사업청이 만들어지면서 비로소 ‘수출형 방위산업 육성’이라는 정책 목표가 공식화되었다. 필자는 방산정책과장으로서 이러한 정책을 최초로 주관하는 사람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10년 전부터 연구개발 현장에는 국산 전차를 해외에 수출하는 꿈을 꾸는 연구자들이 있었고, 기술도 이미 구현되고 있었다.

2017년 경기 여주시 연양동 도하훈련장에서 실시된 잠수도하훈련에서 K-2 흑표전차가 남한강을 잠수해 건너고 있다. 연합뉴스
2017년 경기 여주시 연양동 도하훈련장에서 실시된 잠수도하훈련에서 K-2 흑표전차가 남한강을 잠수해 건너고 있다. 연합뉴스


ADD 전차 단장의 잔잔한 미소는 수출을 포함한 방산 육성 정책이 현장에서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 그날 이후, 연구개발 현장과 제조 생산 현장을 부지런히 방문하였고, 수출 산업으로서 방위산업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방산 수출은 필자의 공직 생활의 핵심 주제가 되었다.

그로부터 2년 후인 2008년 초, 필자는 대통령실 국방비서관실 행정관으로 자리를 옮겨 ‘방위산업 신경제 성장 동력화’라는 국정과제를 관리하게 되었다. 책상 위에는 ‘방산 수출 10억 달러’라는 목표가 적힌 푯말이 붙었다. 그리고, 2008년 12월, 터키와 전차 기술 수출 계약을 하면서 우리 역사상 최초로 방산 수출액이 10억 달러를 돌파하였다.

어쩌면, 2006년 여름 어느 날 우연히 만난 ADD 전차 단장의 미소가 없었다면, 필자는 현장을 모르는 책상물림의 정책 관리자로 머물러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16년 뒤 ADD 전차 단장의 그 미소를 생각지도 못한 노르웨이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

차체 개발은 완료됐으나 파워팩 개발은 지연...1차 양산까지 걸린 6년의 간극



전차 차체 개발은 당초 계획대로 2008년 완료되었다. 그러나 곧바로 전차 양산이 이뤄지지는 못했다. 차체 개발보다 10년 늦게 별도 트랙으로 시작한 국산 파워팩 개발이 여전히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단 해외에서 도입한 파워팩을 탑재하여 전차 차체 시험평가를 하고, 1차 양산 때부터는 국내 기술로 개발한 파워팩 장착을 계획했기 때문에 기다려야 했다.

국군의 날 시가행진을 보기 위해 서울 동작대로 인근에 모인 시민들에게 K2 전차에 탑승한 군인이 손인사를 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국군의 날 시가행진을 보기 위해 서울 동작대로 인근에 모인 시민들에게 K2 전차에 탑승한 군인이 손인사를 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그러나, 파워팩의 핵심인 변속기의 개발이 계속 지연되면서 더 이상 K2 전차의 전력화를 미루기 힘든 상황이 됐다. 결국 2014년 해외 파워팩을 활용하여 1차 양산을 시작하였다. 전차 차체 개발이 완료된 후 1차 양산까지 6년이라는 긴 시간의 간극이 발생한 것이다.

예측할 수 없는 긴 간극은 다양한 문제를 발생시켰다. 첫째, ADD의 기술개발 인력 활용에 차질이 발생했다. 양산이 시작되더라도 원천 기술을 보유한 ADD의 기술적 지원은 일정 기간 유지돼야 한다. 때문에 대규모 전차 기술 개발단은 기술개발 성공과 함께 해체되고 다수는 새로운 기술개발에 투입되었지만 핵심기술을 보유한 일부 기술진은 양산을 위한 기술 지원팀에 남았다. 그런데 양산이 늦어지면서 예측할 수 없는 기간 동안 이들 최고의 기술개발 인력들이 마냥 대기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둘째, 차체 시제품 개발 및 제작에 참여한 현대 로템과 1,500여 개 협력 업체에게 긴 간극은 치명적인 경영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기업들은 장기간 납기가 소요되는 부품의 선(先) 발주, 인력의 추가 채용 등 필요한 조치를 하며 양산을 기다린다. 간극이 길어지면, 대규모 매몰 비용이 발생하는 구조다. 소규모 협력업체는 도산하기도 하여 자칫 양산하기도 전에 부품 단종이 발생할 수도 있다.

독일을 제치고, 튀르키예에 전차 '기술'을 수출하다



긴 간극이 초래하고 있는 위기를 메운 것은 ‘튀르키예 전차 차체 기술 수출’이었다. 2008년 튀르키예의 차세대 전차 사업에서 독일을 제치고 K2 전차 차체의 기술을 수출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ADD 전차 단장 등이 개발 초기부터 튀르키예에 대한 수출을 염두에 두고 오랜 기간 접촉한 것이 결정적인 시기에 효과를 발휘한 것이다.

2023년 5월 경기 포천시 승진훈련장에서 주한 외교단이 K2 흑표전차와 K21보병전투장갑차 등 K방산 주요 무기들을 살펴보고 있다. 국산 무기의 우수성은 이미 국제 사회에서 인정받고 있다. 뉴스1
2023년 5월 경기 포천시 승진훈련장에서 주한 외교단이 K2 흑표전차와 K21보병전투장갑차 등 K방산 주요 무기들을 살펴보고 있다. 국산 무기의 우수성은 이미 국제 사회에서 인정받고 있다. 뉴스1


이 수출 계약은 단순히 K2 전차 차체의 생산기술을 이전하는 것이 아니라 튀르키예 고유의 전차 차체(ALTAY 전차) 개발을 기술적으로 지원하여 성공하도록 하는 내용이었다. 특히 튀르키예는 K2를 초과하는 사양을 요구조건으로 내걸었음에도, ADD와 현대로템 기술진이 전차 강국 독일을 이긴 것이다. 이 수출 계약은 우리 방산기술이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출발점이 되었다. 수출 조건은 단일 규모로는 당시 최대치인 4억 달러 수준이었다.

일반적으로 ADD가 주관하여 개발한 방산물자(기술 포함)의 수출은 국내 업체와 외국 정부(또는 그 대리기관) 간에 계약 체결이 이뤄지고, 이후 ADD가 국내 업체와 기술 이전 계약을 체결하는 2단계 절차를 거친다. 기술 이전 계약은 용역계약 형태로 체결되며 ADD의 기술지원 활동 범위, 업체가 ADD에 납부하는 기술료 규모 등이 담긴다. 기술에 대한 소유권이 법적으로 개발 주관자인 ADD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정작 진전되지 못한 국방과학연구소와 우리 기업간의 계약...수출 무산 위기



2008년 7월 말 튀르키예와 기술 수출 계약이 체결되었으나, 현대로템과 ADD간 기술이전 용역계약은 이견 때문에 몇달 동안이나 진척되지 못했다. 이로 인해 현대 로템은 튀르키예와의 계약 이행을 시작도 하지 못했다. 계약이행이 지연되자 튀르키예 정부는 기한을 정하여 이행 개시를 요구하면서 기한이 지나면 계약은 무효화 된다고 통보하였다. 전차 강국 독일을 누르고 달성한 쾌거가 자칫 물거품이 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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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12300854000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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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탄환으로 탄환을 맞히는 게 가능한가" 천궁은 달 착륙보다 어려운 무모한 프로젝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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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 모사드와의 첩보 전쟁 끝에 따냈다...4조원대 초대형 수출 계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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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② '지상전의 최강자' K2 흑표 전차
    1. • 30년 시행착오 딛고 탄생한 '명품' K2 전차...방산 장인들이 영혼을 갈아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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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 6·25 때 서울 함락시킨 소련 전차 T-34...그 트라우마가 명품 전차 K2 낳았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12151603000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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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호 전북대 교수(전 방위사업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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