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용·유성희 말라위 선교사
20년 저축 수십억 다 쓰며 아프리카 아이들 키워 “십의 9조는 하나님이 이루셨다”
학원 문 닫히자 오히려 장학생 10배 늘렸다
“영이 하늘로 올라갈 때 깨달았다… ‘헌신만 갖고 간다’는 것을.”
새해가 되면 누구나 이루고 싶은 ‘버킷리스트’를 작성한다. 자격증 취득, 독서, 공부, 다이어트 등 저마다 다시금 마음을 다잡는다. 하지만 작심삼일로 끝나는 일이 적지 않다. 올해는 조금 다른 결심을 해보면 어떨까. 나의 성취를 넘어 하나님 나라를 위해 시간과 재정, 에너지를 들이는 ‘거룩한 버킷리스트’로 말이다.20년 저축 수십억 다 쓰며 아프리카 아이들 키워 “십의 9조는 하나님이 이루셨다”
학원 문 닫히자 오히려 장학생 10배 늘렸다
“영이 하늘로 올라갈 때 깨달았다… ‘헌신만 갖고 간다’는 것을.”
2023년 5월 박희용 선교사가 말라위 현지인 청년들과 공사 현장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박 선교사 제공
미국 남가주사랑의교회 소속 박희용(59) 유성희(61) 평신도 선교사 부부는 수입의 90%를 선교에 쓰며 아프리카 말라위에서 6000여명의 청소년을 공부시키고 있다. 공인회계사로 일하는 박 선교사와 25년째 학원을 운영하는 유 선교사. 이들은 벌어들이는 수입 대부분을 아프리카에 쏟아붓는다. 일반적인 십일조가 아닌 ‘십의 9조’. 이들은 팬데믹의 위기 속에서 오히려 파격적인 결단을 내렸다. 이들 부부는 13년간 말라위 선교를 이어오며 20여년간 저축한 수십억 원을 모두 쏟아부었고 현재도 아프리카 아이들을 먹이고 키우는 데 대부분 에너지를 사용한다. 불가능해 보이는 이들의 믿음의 실천은 새해를 시작하는 우리에게 따뜻한 도전을 건넨다.
팬데믹이 불러온 결단
2013년 비영리단체 ‘페이스 아카데미 파운데이션(Pace Academy Foundation)’을 설립하고 말라위 선교를 시작한 부부는 초반엔 100명의 청소년에게 장학금을 지원했다. 1명당 드는 비용은 평균 300달러(약 43만원). 장학생이 200명, 400명으로 늘어날 당시만 해도 ‘할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2020년 코로나 팬데믹이 터졌다. 유 선교사가 25년째 운영하던 학원이 정부 명령으로 문을 닫았다. 매달 수백만 원씩 나가는데 수입은 전혀 없었다. 선교지에서는 선교단체들이 철수하면서 더 많은 후원 요청이 쏟아졌다.
최근 미국 캘리포니아주 부에나파크 힐튼호텔에서 만난 박희용 말라위 선교사
최근 미국 캘리포니아주 부에나파크 힐튼호텔에서 만난 박 선교사는 “팬데믹 당시 이 사역을 멈춰야 하나 많이 걱정하며 하나님의 뜻을 구했다”고 말했다.
하나님의 음성은 명확했다. ‘청소년들을 힘껏 돌보라.’ 선교사 부부는 말씀에 순종하며 1000명으로 장학생을 늘렸다. 그런데 하나님은 돕는 손길을 보내주지 않으셨다. 대신 마음속에 ‘아이들을 위해 갖고 있는 것을 다 내어보면 어떻겠니’라는 더 큰 부담감으로 응답하셨다고 한다.
2022년 10월 PAF 센터 건축 초기에 박희용 유성희 선교사 부부가 PAF센터 기술학교 청년 일꾼들과 함께 하고 있다.
2022년 초 장학생은 2000여명을 넘어섰다. 대학 장학 프로그램, 무료 기술학교, PAF 커뮤니티센터 건축까지 시작하면서 결국 십의 9조를 넘어서게 됐다. 20여년간 저축한 수십억 원의 예금도 다 사용했다.
“십의 9조는 하나님의 소원이고 하나님께서 모두 이루신 결과입니다. 그렇게 저희의 헌신을 먼저 받으셨고 팬데믹 동안 십시일반으로 참여하는 수많은 동역자를 허락하셨어요.”
배꼽 없는 딸이 가르쳐준 것
박 선교사가 이런 결단을 내릴 수 있었던 데는 딸 은지(27)씨의 이야기가 있다. 1998년 의사가 유 선교사의 임신한 배를 진찰하던 중 태아의 배에 큰 구멍이 있는 치명적인 증상을 발견했다. 간과 위가 배 밖에서 자라는 희귀한 경우였다. 의사들은 “태어나면서 95% 이상 죽을 가능성이 있다”며 한 달여간 임신중절을 권했다. 생존 가능성은 1~2%에 불과했다.
1999년 박희용 유성희 선교사 부부의 딸 은지양이 심장수술을 하기 전 유 선교사와 함께 한 모습.
은지는 생후 6개월 후 13시간에 걸친 심장 대수술을 시작으로 10여 차례 수술을 받아야 했다. 응급실은 1년에 20번도 넘게 갔다. 박 선교사는 “하나님은 의사들이 감당할 수 없는 치료를 직접 하셨다”고 고백했다. 기능하지 않던 좌심실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하나님은 수술을 많이 해서 배꼽도 없는 딸을 강하게 키우셨다.
1999년 박희용 선교사 부부의 딸 은지양이 심장대수술을 받고 중환자실에 있는 모습
딸을 통해 한 생명의 소중함을 깨달은 선교사 부부는 말라위 청소년 한명 한명도 똑같이 소중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현재 은지씨는 건축설계 일을 하며 부모의 말라위 선교를 돕고 있다.
딸을 통해 훈련받은 것뿐 아니라 선교사 부부 역시 가난의 아픔을 겪었다.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박 선교사는 1960~70년대 농부의 삶이 얼마나 처절한지 몸으로 겪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아버지는 경제적 역경을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일찍 작고하기도 했다. 유 선교사도 이민 시절 봉제 공장, 세탁소에서 일하며 몸이 부서지도록 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 모든 광야 같은 시절을 통해 부부를 준비시키셨다.
2019년 12월 30일 박 선교사는 심장마비로 쓰러졌다. 심장이 멎고 몸이 차가워진 상태. 유 선교사가 그를 빨리 발견해 목숨 걸고 방언 기도로 울부짖었다고 한다. 나흘간 병원에서 치료받으며 기적처럼 회복했다.
“영이 하나님께 올라갈 때 느낀 것은 정말 이 땅에서 하나님께 올려드린 예배와 헌신만 갖고 가는구나였어요.”
죽음을 경험한 이후 부부는 조금의 의심도 없이 확신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며 그들에게 맡겨주신 재정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용될 축복의 통로라는 것을.
말라위를 바꾼 복음의 능력
현재 부부는 말라위 내에 있는 전국 204개 고등학교에서 2750여명의 청소년과 342명의 대학생에게 장학금을 지원하고 있다. 고등학교 4년 동안 매년 신·구약 1독씩 총 4독을 하게 되어 있다. 13명의 목회자 멘토가 각 지역을 담당해 성경 공부를 진행한다.
재단 학생들뿐 아니라 일반 학생들도 참여한다. 선교사 부부에게는 장학생이 되기 전 문제아로 살았던 청년들이 모범 학생이 되는 것이 큰 기쁨이 된다.
박희용 선교사가 2023년 9월 말라위 청년 일꾼들과 카페테리아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모습
장학 사역 외에도 PAF 센터와 봉제 공장, 건축기술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2000그루의 망고나무와 바나나 나무 농장도 함께 운영한다. 전기 드릴을 처음 접한 현지 청년들이 이제는 전문 기술자가 됐다. 지난 3년간 PAF를 졸업한 청년들이 90% 이상의 공사를 직접 담당해 45개의 건물을 지었다.
마마와 파파가 된 선교사
말라위 청소년들은 선교사 부부를 ‘파파’와 ‘마마’로 부른다. 실제로 부부는 세 명의 말라위 아이를 입양했다. “하나님께서 ‘너희가 말라위 청소년들의 아비와 어미가 돼라’고 말씀하셨어요. 함께 뒹굴며 함께 울며 함께 밥 먹는 공동체 식구가 됐죠.”
유성희 선교사가 2024년 8월 성경공부반을 통해 복음을 전하는 모습
아비와 어미가 되다 보니 그들의 삶을 더 들여다 봐야 했다. 학교 장학금뿐 아니라 생활비와 기숙사비, 학용품을 지원하고 있다. 팬데믹 동안에도 선교지를 포기할 수 없었던 것도 그 때문이다. 박 선교사는 “힘들다고 포기할 부모는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박 선교사는 현재 미국 공인회계사(CPA)로 일하며 선교 재정을 모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유 선교사는 학원을 직원 중심 체제로 전환해 1년 중 9개월가량 말라위에 상주하며 사역한다. 사업체 대표자가 선교지에 나가 있다 보니 수입이 30~40% 줄어들었지만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는 것이 우선이다.
말라위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같은 말이 선교사들 사이에서 나올 정도로 척박한 선교 현실을 갖고 있다. 박 선교사는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와 순종, 선교지 성도들에 대한 존중과 믿음이 있기에 지금까지 사역을 이어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처음부터 현지인들을 재정 훈련을 통해 사역지를 관리하도록 했고 행정 일도 할 수 있도록 맡겼지요. 실패와 좌절도 있었지만 그들의 실패를 존중하며 성장할 것을 믿으며 달려왔습니다.”
지금은 행정과 재정 관리, 수련회 등 행사의 90% 이상을 현지 사역자들이 직접 담당한다. 13년간 6000여명의 청소년을 훈련했는데 이중 500여명의 청년 사역자들이 선교사 부부와 함께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축복의 통로로 사는 삶
불가능해 보이는 십의 9조를 실천하며 말라위에서 기적을 만들어가는 한 평신도 선교사 부부의 이야기는 새해를 맞아 우리에게 도전을 준다. 박 선교사는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렇게 당부했다.
말라위 현지인들이 2024년 7월 청소년수련회 중 마을을 방문해 구제 활동을 하는 모습
“돈에 대한 가치관은 우리 성도들의 정체성을 드러냅니다. 십의 9조를 드려도 부족하지 않은 믿음을 주셨고 여전히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주고 계십니다. 우리가 살아갈 한 해 동안 축복의 통로가 되어보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