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서울 중구 한 쿠팡 차고지에 차량들이 주차되어 있다. 쿠팡은 29일 유출 고객 1인당 5만원 상당, 총액 약 1조6850억원 규모의 구매 이용권을 지급하는 보상안을 발표했다. 최현수 기자 [email protected]
“쿠팡 트래블과 알럭스 다 처음 들어봐요. 쿠팡이 제대로 된 사과는커녕, 보상안이라며 은근히 자사 서비스를 홍보하는 것 같아 더 화가 납니다.”
권재현(29)씨는 29일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에 대해 쿠팡 쪽이 내놓은 ‘보상안’을 본 뒤 외려 “화를 돋우는 대응”이라며 날을 세웠다. 쿠팡은 이날 ‘유출 고객 1인당 5만원 상당의 구매 이용권을 지급한다’는 보상안을 발표했지만, 쿠팡 트래블(여행상품·2만원)이나 알럭스(명품상품·2만원) 등 낯선 서비스 이용권까지 포함한 액수다. 비교적 이용 빈도가 잦은 쿠팡 전 상품(5천원), 쿠팡이츠(5천원) 구매권은 소액에 그치는 탓에, 시민들 사이에서는 “5천원 보상”, “끼워팔기”라는 비판이 이어졌다. 외려 이번 보상안을 계기로 쿠팡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 참여를 결심했다는 이들도 있다.
시민 상당수는 쿠팡 보상안을 개인정보 유출 사태로 떠난 이용자를 재가입시키거나 매출을 늘리기 위한 ‘꼼수’로 여겼다. 이아무개(50)씨는 “개인정보 유출 사태와 후속 대응에 대한 우려로 쿠팡을 탈퇴한 사람도 많은 거로 아는데, 쿠팡 구매 이용권을 쓰는 것을 계기로 재가입을 유도하는 것 같아서 황당했다”고 말했다.
쿠팡 쪽이 책정한 구매 이용권 액수도 이런 의구심을 키운다. 각각 2만원씩 주어지는 쿠팡 트래블이나 알럭스의 경우 이용 빈도가 낮을뿐더러, 플랫폼 내에서 2만원으로 살 수 있는 상품도 거의 없다. 윤재청(69)씨는 “전체 금액을 놓고 보면 적은 금액은 아니겠지만, 소비자들이 사용하지도 않는 서비스로 보상을 나눠놓으니 의미가 없다. 실질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쿠팡 상품 비중을 높였어야 한다”고 말했다. 쿠팡 충성고객이었다는 오채운(32)씨도 “그냥 줘도 안 쓸 이용권 4만원어치를 포함해 5만원 상당 보상이라고 생색내는 것이 불편하다”고 했다.
쿠팡 보상안을 둘러싼 냉랭한 반응에는 책임 있는 사과를 내놓지 않은 쿠팡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과 실망감이 자리 잡고 있다. 3살 딸을 키우는 유희선(38)씨는 “아이가 있는 맞벌이 부부에게 쿠팡 로켓배송은 피할 수 없다. 개인정보 유출도 일어날 수 있는 사고라고 생각했다”면서도 “정말 실망한 건 쿠팡의 후속 대처였다. 보상도 보상이지만, 일단 사과부터 제대로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직장인 윤지영(31)씨는 “이번 보상안을 보며 쿠팡의 소비자 기만을 더 두고 볼 수 없다고 생각했다”며 “그동안 고민만 해왔던 쿠팡 상대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참여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했다.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한국소비자연맹이 주도하는 쿠팡 상대 집단 분쟁조정 신청자는 이날 기준 1663명이다. 개별 법무법인을 통해 단체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나선 시민은 50만명을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참여연대는 이날 쿠팡의 보상안 발표 뒤 논평을 내어 “한 달 요금 절반을 면제한 에스케이(SK)텔레콤의 보상안보다 후퇴한 안일뿐 아니라 오히려 쿠팡 매출을 더 높이기 위한 꼼수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정지연 한국소비자연맹 사무총장도 “소비자들은 알지도, 쓰지도 못하는 서비스 쿠폰을 지급하며 오히려 마케팅을 벌이는 쿠팡의 ‘생색내기’에 불과하다. 곧 소비자단체들이 쿠팡의 보상안을 거부한다는 입장을 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