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 일으킨 한화오션 기본개념 열람 요청
방사청 연구개발 단계로 보안 근거 거부해
“한화 사전 인지 통한 계산적인 행보” 의심
‘일부 공개·열람 허용’ 법률 검토 통해 결정
방사청 연구개발 단계로 보안 근거 거부해
“한화 사전 인지 통한 계산적인 행보” 의심
‘일부 공개·열람 허용’ 법률 검토 통해 결정
이용철 방위사업청장이 지난 12월 24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브리핑룸에서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사업추진방안 결정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HD현대중공업이 제시한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모습. 사진 제공=HD현대중공업
[서울경제]
“한화오션이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사업 방식이 지명경쟁입찰로 결정될 것을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기본설계 열람을 요청한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최근 만난 복수의 방산업계·군 당국 관계자가 한화오션의 이례적 행태에 대해 의구심을 제기하며 기자에게 건넨 얘기다.
방산업계 최대 관심사로 1년 6개월 이상 표류해온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사업 방식이 지난 12월 22일 지명경쟁입찰로 결정되면서 일단락된듯 했지만 석연치 않은 한화오션의 행보가 알려지면서 또다시 논란이 일고 있다.
29일 서울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한화오션은 KDDX 사업자 선정 방식을 두고 한창 논란이 일던 지난 2월 방위사업청에 KDDX ‘기본설계’ 열람을 공식 요청했다. 이에 대해 방사청은 KDDX 기본설계부터는 연구개발 단계로 기밀 유지가 필요하기 때문에 KDDX 건조 참여가 확정되지 않은 업체엔 제공할 수 없다며 거부했다.
함정 건조의 통상적인 획득 프로세스는 개념설계 → 기본설계 →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 후속함 건조 등으로 진행된다. 이 가운데 기본설계사업을 할 때는 입찰 공고에 참여한 업체에겐 해군이 주도해 완료한 개념설계 열람을 허용한다. 이는 소요군인 해군이 제시한 함정(전투함) 개념을 토대로 새로운 함정의 건조 및 무기 기술을 집대성하는 기본설계를 완벽하게 수행하도록 지원 차원에서 최소한의 기초 자료를 제공하는 것이다.
하지만 기본설계부터는 전투함 획득 사업이 시작되는 연구개발 단계로 분류돼 철저한 보안이 요구된다. 입찰 공고를 거쳐 경쟁을 통해 업체를 선정하는 것은 이 같은 이유다. 게다가 통상적으로 기본설계를 수행한 업체가 상세설계 및 선도한 건조를 맡는다. HD현대중공업의 수의계약을 문제 삼아 장기간 논란을 일으키고 기본설계도 수행하지도 않은 한화오션이 갑작스럽게 방사청에 기본설계 열람을 요청한 것은 매우 이례적 행보다.
방사청 관계자는 “한화오션이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지난 2월 HD 현대중공업이 수행한 KDDX 기본설계 열람을 공식 요청한 것은 사실”이라며 “당시 흔치 않았던 케이스라 내부 검토한 결과 기본설계는 연구개발 단계로 보안 유지가 필요하고 선도함 등의 건조에 참여하는 업체가 아니기 때문에 열람을 거부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방산업계는 KDDX 사업 방식이 최근 지명경쟁입찰로 결정되면서 당시 한화오션의 행태는 사전 인지 이후 다음 수순을 위한 계산적인 행보가 아니냐는 의심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한화오션이 제시한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모습. 사진 제공=한화오션
심지어 같은 달 3일 산업통상자원부가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생산 능력을 갖춘 방산 업체로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을 복수 방산업체로 지정했다. 산업통상자원부의 결정은 극히 이례적으로 복수업체에 KDDX 사업 참여 자격을 인정한 탓에 최종 사업자 선정을 두고 사상 처음으로 경쟁입찰이 펼쳐질 것 이라는 전망까지 나왔다. 그러나 10개월이 지나 전망은 현실화됐다.
무엇보다 지명경쟁입찰이 시작되면 한화오션이 또 다시 기본설계 열람을 요청할 수 있다는 점이다.
상세설계는 기본설계를 바탕으로 발전시킨 개념이라 이를 수행하지 않은 업체는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를 진행할 수 없다. 따라서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 사업자 선정을 위한 지명경쟁입찰을 실시하려면 예비 사업설명회 과정에서 기본설계 일부를 공개하거나 지명경쟁입찰에 참여한 업체의 열람 요청 시 허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
이 때 특혜 논란이 초래될 수 있다. 기본설계에 정부 예산 200억 원과 각종 기술 개발을 위해 이를 수행한 HD현대중공업도 300억 원가량의 연구비를 투입했기 때문이다. HD현대중공업도 일정 부분은 기본설계에 대한 지식재산권이 있는 셈이다. 만약 방사청이 한화오션에 기본개념 일부를 공개하거나 열람을 허용한다면 공정성 논란은 물론 HD현대중공업의 법적 대응에 직면할 것이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이런 까닭에 기본설계를 수행한 업체와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에 대한 수의계약 아닌 지명경쟁입찰이란 새로운 방식을 선택한 방사청이 벌써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 후문이다.
이와 관련 방사청은 “KDDX 사업 방식이 논란 속에 지명경쟁입찰로 결정된 만큼 입찰 과정에서 특정 업체에 유리하다는 특혜 논란이 없도록 만점을 기할 것”이라며 “기본개념은 연구개발 단계로 일부 공개나 열람 허용은 법적 문제가 될 수 있다”며 “면밀한 법률 검토 통해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만약 법률 검토에 따라 공개 또는 열람을 허용한다면 새로운 논란의 빌미이자 사업자 선정 방식의 결정적 변수가 될 수 있어 내년 입찰 공고 때 방사청이 어떤 결정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KDDX 사업은 선체 및 이지스 체계를 모두 국내 기술로 건조하는 첫 한국형 구축함 사업이다. 총 7조 8000억 원의 예산을 투입해 2036년까지 6000톤급 미니 이지스함 6척을 건조한다.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배 선체부터 자체 개발한 이지스 전투체계와 스마트 브리지, 한국형수직발사체계(KVLS-Ⅱ), 무인체계, 자율운항체계 등 각종 무장을 국내 기술로 만드는 최첨단 함정 기술의 총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