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절벽 앞에 선 농어촌. 인구는 빠져나가고, 남은 주민들은 고령화 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무엇보다 심각해지는 건 '일손 부족' 문제입니다. 농가들은 의지할 곳이 별로 없습니다. 그나마 믿는 것은 외국인 계절근로자 입니다. 농어촌에선 이들이 효자라는 말까지 나옵니다. 그런데 그 사이에서 이쪽저쪽을 중개해주는 거간꾼, 이른바 브로커가 활개를 치고 있습니다. 곳곳에서 이로 인한 잡음이 터져 나옵니다. 이에 KBS는 세차례에 걸쳐 계절근로자 도입 현장의 문제점을 짚어봤습니다.
2023년과 2024년 양구에 계절근로자를 파견한 파에테시. 계절근로자 일부가 임금 체불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해 농업 인구는 모두 200만 여명. 2015년과 비교하면 50만 명 넘게 줄었다.
■ "농사 지을 사람이 없어요" … 전국 지자체 절반이 '외국인 계절근로자' 도입
빠르게 돌아가는 인구절벽과 지역소멸 시계. 야속하게도 이 시계는 유난히 농어촌에서 그 속도가 빠릅니다. 지난해를 기준으로, 전국 농업인구는 200만 명이 조금 넘습니다. 2015년과 비교하면 50만 명 넘게 줄어들었습니다. 단순 계산하면, 해마다 5만 명 씩 사람이 줄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다보니 일손 부족이 심각합니다. 농사 지을 사람이 없어 농사를, 땅을 포기하는 농가가 줄을 잇습니다. 국내에선 사람도 적고, 인건비도 비싸 일할 사람을 찾기 힘듭니다. 이 때문에 농촌에서도 외국인 근로자 수요가 급증했습니다.
하지만 일반적인 외국인 근로자 제도는 외국인을 1년간 상시 고용하는 방식이 대부분입니다. 농어촌의 경우 농번기에만 사람이 필요한데도, 1년 내내 월급을 줘야 하다 보니, 농가의 부담이 크다는 민원이 잇따랐습니다.
이 때문에 도입된 게 계절근로자 제도입니다. 법무부는 2015년, 이 제도를 처음으로 시범 시행했습니다.
우리나라 지방자치단체가 해외 지방자치단체와 협약을 맺어, 필요한 만큼 사람을 데려와 쓰는 방식입니다. 짧게는 5개월, 길게는 8개월까지 고용할 수 있습니다.
농어촌의 반응은 폭발적이었습니다. 시범 도입 첫 해,입국한 계절근로자는 19명. 그러다 2017년 1,000명을 넘어섰습니다. 올해는 9만 5,000여 명이 됐습니다. 10년 만에 5,000배 넘게 는 겁니다.
실제로 농어촌 현장에선 계절근로자가 누구보다 반갑다는 반응이 많습니다. 이들이 없으면 여기 농업을 할 수가 없을 정도라며 고마움을 표시합니다.
내년(2026)에는 처음으로 10만 9,000명에 이를 전망입니다. 강원도 인구가 150만 명 정도이니까, 강원도 인구의 1/15과 맞먹을 정도로 많은 숫자입니다.
국내에서 임금체불 피해를 입은 계절근로자들이 생활하고 있는 용인 센터.
■ 급증한 계절 근로자 … 농어업 현장 곳곳에 브로커 '활개'
국내로 입국하는 계절근로자가 급증하면서, 곳곳에서 여러 문제들이 불거졌습니다. 그 중 하나가 거간꾼, '브로커' 개입 문제입니다.
경기도의 한 보호시설에서 만난 38살의 필리핀 여성. 자신을 한국으로 데리고 온 브로커에게 쫓기고 있는 처지라고 호소합니다. 브로커가 자신을 상대로 현상금까지 걸었다고 말했습니다.
2년 전, 부푼 꿈을 안고 우리나라로 계절근로를 하러 왔습니다. 필리핀에서 친절하게 안내를 해줬던 '미스터 홍'이란 사람은 이후, 돌변했다고 합니다. 여권을 빼앗고, 하루 12시간 일을 시켰다고 말합니다.
수수료로 떼간 돈이 월급의 4분의 1. 결국 도망치자, 협박은 필리핀의 가족들에게 향했습니다.
| 필리핀 계절근로자 "브로커가 계절근로자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우리의 행방을 지목하는 사람에게 70,000페소의 현상금을 받을 거라고요. (중략) 엄마에게 내가 어디있는지 말하라고 했어요. 왜냐하면 엄마가 내 보증인이었으니까요. 딸이 도망갔으니 50만 원을 내야 한다고요." |
파에테 시에서 양구로 계절근로를 하기 위해 입국한 이들이 첫 달 받은 돈은 당초 예상했던 금액의 3분의 1 수준이었다.
■ 양구 계절근로자 무더기 송출 중단, 필리핀 현지에서 무슨 일이?
농사일로 한창 바빴던 올 봄, 강원도 양구의 농가도 시끄러웠습니다. 필리핀에서 들어오기로 했던 계절근로자 700명이 아예 들어오지를 않은 겁니다.
브로커 개입 의혹 때문이었습니다. 필리핀 정부가 한국인 브로커 개입 정황을 확인했다면서, 근로자 송출을 중단했기 때문입니다.
필리핀의 파테에시 등은 앞서 2023년과 2024년 1,000여 명의 계절근로자를 강원도 양구군으로 보냈습니다. 하지만 이 가운데 90여 명이 브로커가 수수료 명목으로 임금을 가로챘다며 필리핀과 한국 정부에 민원을 제기했습니다. 이들이 주장하는 피해 금액은 최소 13억 원에 이릅니다.
취재진은 필리핀에서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는지 직접 현지 취재에 들어갔습니다.
필리핀 파에테시는 수도 마닐라에서 3시간을 달려 도착한 인구 2만 4,000명의 작은 도시였습니다. 도시 곳곳이 집중호우에 침수돼 어지러운 모습이었습니다.
이곳의 한 공사장에서 만난 롤랜드(가명)씨를 만났습니다. 2년 전 양구에서 반년 넘게 계절근로를 했습니다. 양구행을 택한 건 한 달에 '8만 페소'의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말 때문이었습니다. 우리 돈 200만 원 정도, 하지만 현지에선 근로자 넉 달 치 월급과 맞먹는 큰 돈입니다.
| 롤랜드 씨 (전 양구 지역 계절근로자) "한국에선 한 달에 8만 페소를 번다는 이야기에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설렜습니다. …그래서 정말인지 확인하려고 직접 파에테 시청에 가서 정말로 한국에 계절근로자를 보내는지 알아봤습니다. 정말이더라고요. 그래서 그때 바로 신청했습니다." |
그는 여러 절차를 거쳐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배정된 농가에서 쉬지 않고 성실하게 일했습니다. 하지만 첫달 손에 쥔건, 약속받았던 월급 액수의 절반 정도였다고 말합니다. '수수료'가 공제됐기 때문입니다.
임금 체불 문제를 주장하고 나선 건 롤랜드 씨 외에도 수십 명에 이르렀다. 이 가운데 현지에서 10명을 만날 수 있었다.
■ "미스터 최가 수수료로 떼 갔어요"…계약서에도 없는 수수료?
여기서 '미스터 최' 라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이 사람이 첫 두달 월급에서 각각 3만 페소 씩, 모두 6만 페소를 수수료로 가져갔다고 주장했습니다. 여기에다 한국에서 일하기 위해 기간을 1개월씩 연장할수록, '연장 수수료'라며 1만 페소씩을 또 가져갔다고 주장했습니다.
롤랜드 씨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취재진이 필리핀으로 출국하기 전, 수 개월간 접촉을 시도한 끝에 2023년과 2024년 양구에서 계절근로자로 일했던 파에테 주민 10여 명을 만났습니다. 이들은 모두 한 목소리로 '미스터 최' 등이 수수료를 가져갔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한 달에 6,000페소, 한화로 15만 원 정도를 벌던 레이(가명)씨는 상황이 더 심각했습니다. 그는 "양구로 가서 일을 하려면 건강검진이나 항공료, 비자 등 행정비용은 직접 해결해야 했는데, 여기에 4만 5,000페소 정도가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이 돈을 마련하기 위해 빚까지 졌다는 겁니다. 하지만 행정 비용을 내고, 별도로 수수료까제 내고 나니, 월급을 기대에 훨씬 못 미쳤다고 말합니다. 이 때문에 당시 낸 빚을 다 갚지 못하고 있다고 호소했습니다.
이들이 양구 농민들과 맺은 계절근로 계약서를 확인해 봤습니다. '일급 78,880원' '월 208시간 보장' '월 4회 휴일' 등 근로여건에 관한 내용들이 쓰여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디에도 '수수료' 항목 관련 내용은 없었습니다.
파에테시 공무원은 “최 씨 등 한국인 몇 명이 와서 계절근로 프로그램 사업을 추천했다”고 주장했다.
■ "송출 과정 전반에 '미스터 최' 있었다 "… "양구군 공무원인 줄 알았다"
취재진은 여기서 더 놀라운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바로, 인력을 뽑아 양구군으로 보내는 과정 전반에서 양구군 공무원이 아닌 '미스터 최'가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현지에서 만난 그레고리(가명)씨는 "필리핀에서 그들이 브로커라는 걸 알았더라면, 저희는 따라가지 않았을 거에요"라며 분노했습니다. 옆에 있던 레이(가명)씨는 "필리핀에서 통역을 하던 여성과 최 씨는 같이 다녔고, 현지에서는 최 씨가 리더처럼 보였습니다"라고 거들었습니다.
법무부의 계절근로자 프로그램 운영지침을 보면, 계절근로자 사업은 인력 모집과 선발, 송출, 관리까지 협약을 맺은 국내 지방자치단체와 해외 지방자치단체가 직접 하도록 돼 있습니다. 브로커 등 3자 개입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최 씨는 양구군 직원이 아닙니다. 양구군에 있던 민간 인력 중개업체 관계자입니다. 취재 결과, 심지어 이 업체는 인력 중개업체 운영 허가를 받지도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파에테시와 양구군은 어떻게 협약을 맺게 된 걸까? 파에테시 당국을 찾아가 어떻게 교류하게 됐느냐고 물었습니다.
계절근로 담당 공무원 역시 '미스터 최' 얘기부터 꺼냈습니다. 그는 "2022년에 한국인 몇 분이 필리핀에 와서 이 프로그램을 소개했습니다"라면서 이들이 스스로를 양구군 대표라고 소개해, 공무원으로 알고 있었다고 덧붙였습니다.
또, "최 씨 등이 선발과 송출, 행정 업무를 맡겠다고 해 그렇게 하라고 시켰다"면서 자신들은 홍보 업무만을 맡았다고 주장했습니다. 최 씨 등으로부터 대가를 제공받았는지 물었더니, " 시장님은 물론이고 어떤 공무원도 단 한 푼도 받은 적이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양구에서 계절근로자를 고용한 농민들은 “양구군이 브로커 개입을 몰랐을 리가 없다”고 비판했다.
■ 양구군 출장 내역 살펴보니 '길어야 4시간 체류'… 농민들 "브로커 개입 몰랐겠나"
그렇다면 업무 전반을 총괄해야 할 양구군은 인력 모집과 송출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한걸까?
2023년과 2024년 양구군이 필리핀 현지에 다녀온 출장 내역을 입수해 살펴봤습니다. '외국인 계절근로자 선발을 위한 필리핀 현지방문 결과보고'라는 이름의 자료가 연도별로 각각 남아있었습니다.
1년에 1번씩의 필리핀 출장 기록이 있었습니다. 일정은 2023년엔 2박 3일, 2024년엔 3박 4일 입니다. 길다고 보기 힘든 일정입니다.
그나마도 출장 일정 가운데 실제로 파에테시에 머물며 업무를 한 시간은 각각 2시간과 4시간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그 짧은 시간 안에 양구군 공무원이 인력 선발과 교육, 출국을 위한 행정 업무까지 모두 했다는 얘기가 됩니다. 양구군에 이에 대한 입장과 해명을 물었습니다. 하지만 수사 중인 사안이라면서 답변하지 않았습니다.
양구에서 농사를 지으며 2023년과 2024년 계절근로자를 고용했던 여금선 씨는 양구군의 관리 책임 문제를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전체적인 사업 구조상 "양구군이 불법 브로커가 개입했다는 것을 전혀 모를 리가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또, "알면서도 양구군이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서 자기네들은 불법 브로커인지 몰랐다라고 얘기를 하는 것 같다"고 비판했습니다.
고용노동부와 경찰도 수사에 들어갔습니다. '미스터 최'로 불린 일당이 양구군의 인력 송출 과정에 깊이 개입해, 2023년부터 2년 동안 계절근로자들로부터 최소 13억 원을 가로챈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이들을 중간 착취 혐의를 적용해 조사하고 있습니다.
또, 양구군청 전현직 공무원 2명도 중간착취와 중간착취 방조 혐의로 입건했습니다. 양구군 기간제 공무원은 통역 업무를 맡으면서 수수료를 가로채는 과정에 가담했고, 팀장급 공무원은 이를 묵인한 혐의입니다.
KBS는 최 씨 등의 입장을 듣기 위해 수 차례 연락했지만, 역시 수사 중이라 답변이 어렵다며 정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기사 순서]
계절근로자① 농촌 일손 부족 메우는 계절근로자…무너진 코리안드림
계절근로자② 브로커 개입 '경고음'…"국제 분쟁 비화 가능성"
계절근로자③ 지지체 '역량 부족', 정부 '느슨 관리'…갈길 먼 제도 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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