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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상호 감독이 '부산행'(2016) 촬영장에서 좀비 연기 시연을 해보이고 있다. NEW 제공
연상호 감독이 '부산행'(2016) 촬영장에서 좀비 연기 시연을 해보이고 있다. NEW 제공




당신이 잘 몰랐던 연상호 감독<5>



“주인공 캐릭터가 감독이랑 똑같이 생김 ㅋㅋㅋ.”

어느 네티즌이 한 포털사이트에 남긴 애니메이션 ‘지옥: 두 개의 삶’(2006) 에 대한 관람평이다. 애니메이션 속 남자 주인공이 연상호 감독을 빼닮았다는 거다. 네티즌의 평가는 매우 정확했다. 연 감독이 ‘지옥: 두 개의 삶’ 속 캐릭터들을 연기했으니까.

연 감독은 ‘연기’를 겸하는 연출자다. 연출과 연기를 함께 해내는 감독이 드문 한국 영화계에서는 이례적인 경우다. 하지만 연 감독의 얼굴은 스크린에 드러나지 않는다. 분명 연기를 했는데, 그를 알아채는 이들은 영화 관계자를 제외하면 소수에 불과하다. 실사영화와는 다른 애니메이션만의 제작 기법 때문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연 감독은 대학(상명대 회화과) 휴학을 하며 만든 단편 애니메이션 ‘지옥’(2002) 때부터 연기를 했다. ‘지옥’의 후속편 ‘지옥 파트2’(2006)에서도 그는 배우의 면모를 보였다. ‘지옥: 두 개의 삶’은 ‘지옥’과 ‘지옥 파트2’를 묶어 만든 영화다. 천사가 갑자기 사람들 앞에 나타나 그들이 언제 죽을지를 통보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죽음이라는 숙명을 벌어날 수 없는 인간의 비극이 화면을 관통한다.

연상호 감독의 장편 데뷔작 '돼지의 왕'(2011). 연 감독의 연기가 곳곳에 담겨 있다. 상상마당 제공
연상호 감독의 장편 데뷔작 '돼지의 왕'(2011). 연 감독의 연기가 곳곳에 담겨 있다. 상상마당 제공


‘지옥: 두 개의 삶’을 발판 삼아 첫 장편애니메이션 ‘돼지의 왕’(2011)을 만들 때도 연 감독의 연기는 이어졌다. 그의 연기는 두 번째 장편애니메이션 ‘사이비’(2013)와 세 번째 장편애니메이션 ‘서울역’(2016)까지 계속됐다. 연 감독은 자신이 각본을 쓰고 제작까지 한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졸업반’(2016)에서도 ‘배우’로 참여했다.

연 감독의 연기력은 전문 배우 못지않다. 한 배우는 연 감독의 장편애니메이션 목소리 연기를 위해 녹음실을 찾았다가 연 감독의 연기를 접하고선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감독님이 연기하셔도 될 듯한 데 왜 저를 굳이 부르셨나요.”

연 감독은 무명 시절 애니메이션을 만들 때부터 연기를 했다. 그는 장편애니메이션 감독으로 인지도가 높아지고서도 왜 계속 연기를 해야만 했을까. 연 감독은 배우가 되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었던 걸까.

연 감독은 어쩔 수 없이 연기해야 했다

연상호 감독의 단편 애니메이션 '지옥'(2002)의 주인공 '나'(오른쪽)는 연 감독과 닮은 꼴이다.
연상호 감독의 단편 애니메이션 '지옥'(2002)의 주인공 '나'(오른쪽)는 연 감독과 닮은 꼴이다.


연 감독은 ‘지옥’과 ‘지옥 파트2’를 가내수공업 방식으로 만들었다. 각본과 그림, 편집, 음악 등 제작 전반의 일들을 도맡았다. 그가 택한 애니메이션 기법은 ‘로토스코핑(Rotoscoping)’이다. 어떤 동작을 카메라로 찍은 후 각 프레임을 바탕으로 그림을 그려 이들을 이어붙이는 방식이다. 애니메이션 프레임 하나하나를 바로 그리는 것보다 수월하게 그림을 그리면서도 인물의 동작을 실사처럼 자연스럽게 표현해 낼 수 있다. 돈이 적게 들면서도 작업을 상대적으로 빠르게 해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1인 제작으로 애니메이션을 만들어야 했던 연 감독이 선택할 수 밖에 없는 기법이다.

연 감독은 ‘지옥’과 ‘지옥 파트2’를 만들 때 등장인물들의 동작 대부분을 자신이 연기하고 이를 비디오카메라에 담았다. ‘지옥’의 경우 동영상 프레임 하나하나를 프린터로 인쇄한 후 이를 바탕으로 그림을 그려 이를 스캔해 컴퓨터에서 이어붙이는 식으로 작업했다. 어느날 갑자기 천사로부터 2시간 후 지옥으로 끌려가게 된다는 통보를 듣는 20대 남자(목소리 연기는 배우 김병철) 얼굴에 연 감독 외모가 그대로 담긴 이유다. 다른 캐릭터들 얼굴은 연 감독 게 아니라 해도 동작은 연 감독 본인의 것 그대로 담겨 있다.

연상호 감독은 두 번째 장편 애니메이션 '사이비'에서 5개 단역의 목소리 연기를 했다. NEW 제공
연상호 감독은 두 번째 장편 애니메이션 '사이비'에서 5개 단역의 목소리 연기를 했다. NEW 제공


‘지옥 파트2’는 획기적인 애니메이션 제작 프로그램 ‘미라지’가 등장하면서 조금 더 수월하게 만들어졌다. 동영상 프레임들을 하나씩 인쇄해 그림 작업한 뒤 스캔을 해 컴퓨터에 입력하지 않아도 됐다. 컴퓨터에서 프레임들을 바탕으로 그림 작업을 한 후 이를 이어붙이면 되는 식이었다. 정보통신기술 발달로 작업이 더 편해지고 빨라졌다고 하나 바뀌지 않은 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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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122520240000087

목차별로 읽어보세요

  1. ① 당신이 잘 몰랐던 박찬욱 감독
    1. • 초보 감독 박찬욱에게 주연 배우가 던진 질문 "영화 줄거리가 뭐죠?"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91502520001939)
    2. • “내가 추천한 영화 재미없다고 발길 뚝” 비디오점 운영 실패에 유학 고민 ‘박찬욱의 시련’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92512130001927)
    3. • ‘JSA’ 대신 ‘아나키스트’ 메가폰 잡았다면… 박찬욱 운명 가른 일주일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93012450005344)
    4. • 단편영화 한 편이 '히치콕 숭배자' 박찬욱의 영화인생을 바꿨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101311000000538)
    5. • “트랜스젠더 영화 만든 그 친구 없었다면”… 박찬욱을 흔든 한국 감독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111300590001796)
    6. • 한국 영화 최초 205개국 수출… '기생충' 기록 깬 '월드클래스' 박찬욱의 존재감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112001090004144)
  2. ② 당신이 잘 몰랐던 연상호 감독
    1. • “첫 장편 애니로 오스카 가겠다”… 무명 신인 감독 연상호의 패기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112715050001783)
    2. • 야외 상영 '19금 애니'에 뛰쳐나간 관객...연상호 이름 알린 첫 작품 '지옥'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120416540003544)
    3. • “나 안 해!” 잠수 탄 연상호 감독… 처음엔 만들 생각 없었던 ‘부산행’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121100540003689)
    4. • 만화방 '중딩'이 칸에 가기까지...연상호 인생 바꾼 비디오 한편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121823190000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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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121817120002174)• "은마아파트 30억 될 때 삼성전자는 380억… 그게 '진짜' 투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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