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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무릎을 베개 삼아 눕곤 했던 아들이 돌아올 것 같아 공항을 떠날 수 없어요.”

지난 23일 오후 전남 무안국제공항 2층 쉘터(텐트)에서 만난 유족 손주택(67)씨는 아들을 생각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12·29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1주기를 엿새 앞둔 이날도 공항에서 머물며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있었다.

그는 무안공항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를 묻는 말에 “세상을 떠난 아들에게 ‘네 곁을 지켜주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12·29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1주기를 앞둔 24일 전남 무안국제공항에서 유가족들이 활주로를 바라보며 추모 리본을 달고 있다. 뉴스1
12·29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1주기를 앞둔 24일 전남 무안국제공항에서 유가족들이 활주로를 바라보며 추모 리본을 달고 있다. 뉴스1
손씨는 아들 고(故) 손창국(사고 당시 29세)씨에 대해 “어느 부모나 똑같이 말하겠지만, 정말 효자였다”고 말했다. 아들은 군 복무를 마치고 대학을 졸업한 뒤 1년간 공부에 매달린 끝에 2021년 23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한국철도공사에 합격했다.

전남 순천에서 근무하던 아들은 부모가 사는 목포를 매주 찾았다고 한다. 집을 올 때마다 손씨의 어깨를 주무르고 어머니에게 안기는 애교 만점의 아들이었다. 손씨는 “내가 소파에 앉아 TV를 보고 있으면 강아지처럼 다가와 무릎을 베고 누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곤 했다”고 말했다.

사고 직전 방콕에 간 아들은 가족 단톡방에 풍경 사진을 올리며 “부모님과 꼭 함께 오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들은 결혼을 전제로 교제하던 여자친구와 함께 떠난 여행에서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12·29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1주기를 엿새 앞둔 지난 23일 전남 무안국제공항 1층 합동분향소에서 유가족 손주택(67)씨가 참사 희생자인 아들 손창국(당시 29세)씨 사진을 바라보고 있다. 황희규 기자
12·29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1주기를 엿새 앞둔 지난 23일 전남 무안국제공항 1층 합동분향소에서 유가족 손주택(67)씨가 참사 희생자인 아들 손창국(당시 29세)씨 사진을 바라보고 있다. 황희규 기자

그는 “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동안 ‘사랑한다’는 말을 한 번도 해주지 못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또 “다시 대화할 기회가 있다면 ‘아빠가 정말 사랑한다’고 꼭 말해주고 싶다”고 했다.

참사 1주기를 앞둔 현재 무안공항 2층 대합실에 설치된 쉘터 40여 동에서는 손씨를 비롯한 20가족의 유족이 머물고 있다. 이들은 “철저한 진상규명”을 촉구하며 공항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사고로 부모님과 남동생을 잃은 김유진 유가족협의회 대표도 무안공항을 지키는 유족 중 한 명이다. 김 대표 가족은 3대(代) 8명이 한집에 살아왔으나 참사로 산산이 부서졌다. 지난해 동생이 회사에서 장기근속 수당을 받아 부모님을 모시고 효도 여행으로 방콕에 갔다 사고를 당했다.

12·29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1주기를 닷새 앞둔 24일 무안국제공항 참사 현장 인근에서 유가족들이 추모 메시지를 적은 리본을 매달고 있다.연합뉴스
12·29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1주기를 닷새 앞둔 24일 무안국제공항 참사 현장 인근에서 유가족들이 추모 메시지를 적은 리본을 매달고 있다.연합뉴스
김 대표는 “참사에 대한 국민적인 관심 없이는 진실에 한 발자국도 다가갈 수 없다. 국민들께서 진실 규명에 관심을 가져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린다”며 "우리의 희생이 대한민국의 안전을 바로 세우는 출발점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유가족들은 참사 이후 극심한 트라우마를 호소하고 있다. 김 대표는 “호남권트라우마센터 등이 유가족을 대상으로 정신건강을 조사한 결과 전체 응답자의 30%가량이 심한 우울 상태, 34%가 중한 우울 상태로 나왔다”며 “조사조차 참여하지 못할 정도로 심한 트라우마를 겪는 분들도 있어 유족들이 겪는 고통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12·29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1주기를 앞둔 24일 전남 무안국제공항 내 유가족 쉘터. 뉴스1
12·29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1주기를 앞둔 24일 전남 무안국제공항 내 유가족 쉘터. 뉴스1
참사 1주기가 다가오면서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추모 발길도 이어지고 있다. 이날 무안공항 1층에 마련된 합동분향소를 찾은 한 부녀(父女)는 헌화를 한 뒤 희생자들의 사진을 보며 눈물을 훔쳤다.

추모객 김모(64)씨는 “참사로 세상을 떠난 친구를 보러 왔는데 딸의 지인도 참사 희생자여서 가슴이 미어진다”며 “누군가의 가족이고 친구이며, 우리의 이웃이 이렇게 허망하게 떠났다는 사실이 지금도 믿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12·29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1주기를 앞둔 24일 전남 무안국제공항에서 유가족들이 활주로를 바라보며 추모 리본을 달고 있다. 뉴스1
12·29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1주기를 앞둔 24일 전남 무안국제공항에서 유가족들이 활주로를 바라보며 추모 리본을 달고 있다. 뉴스1
무안공항 안팎은 참사 이후 1년째 시간이 멈춘 듯 적막감이 맴돌고 있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는 유가족과 추모객들이 남긴 편지들이 빼곡히 붙어 있다. 편지에는 ‘엄마, 누나. 꿈에라도 찾아와. 사랑해’, ‘인사 없이 가서 서운한데, 내가 참아야지. 고생 많았고 우리 애들 지켜줘요. 많이 사랑했어요’ 등의 내용이 적혀 있다.

무안공항에서는 참사 1주기를 추모하는 행사도 진행되고 있다. 지난 24일부터 시작된 ‘진실의 길’ 행사는 오는 28일까지 열린다. 추모객들이 사고 현장을 직접 돌아보고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행사다.

오는 27일 오후 2시에는 광주광역시 동구 5·18민주광장에서 ‘광주·전남 시도민추모대회’, 오는 28일에는 무안공항에서 유가족이 참여하는 ‘추모의 밤’ 행사가 열린다. 참사 1주기 당일인 오는 29일에는 정부가 주관하는 추모식이 진행된다.

☞ 재난 희생자들의 명복을 빕니다. 확인되지 않은 정보 유포나 피해자에 대한 비난을 삼가주세요. 재난을 겪은 뒤 심리적인 어려움이 있는 경우 ☎02-2204-0001(국가트라우마센터) 또는 1577-0199(정신건강위기 상담전화)로 연락하시면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 이 기사는 재난보도준칙을 준수하였습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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