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밑 한파에 온정 전하는 전국의 ‘얼굴 없는 천사들’
폐지 판 돈으로 기부하는 부산 세 아이 아빠 가족의 선물. 부산 북구 제공
올겨울 들어 가장 추운 세밑 한파가 몰아쳤지만 전국 곳곳에서 ‘얼굴 없는 천사’들의 온정이 이어지고 있다.
25일 부산 북구 등의 말을 들어보면, 지난 23일 부산 북구 덕천지구대에 김장김치와 현금 3만5000원, 손편지가 도착했다. 손편지에는 ‘장애가 있는 첫째를 포함해 세 아이를 키우고 있는 기초생활수급자 가장’이라고 소개한 뒤 “폐지값이 많이 떨어져 올해는 유난히 힘들었지만 조금씩 (돈을) 모았다. 아이들과 특별한 크리스마스 추억을 만들고 싶어 기부했다. 꼭 도움이 필요한 아기 가정에 전달됐으면 한다”고 적혀 있었다. 이들은 해마다 어린이날과 성탄절 때마다 덕천지구대에 ‘선물’을 몰래 놓고 사라지는 이른바 ‘세 아이 아빠’ 가족이다.
2017년부터 해마다 경남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익명으로 기부하고 있는 기부자가 보내온 지난해(왼쪽)와 올해 기부금과 손편지. 경남사회복지공동모금회 제공
지난 22일 경남 창원시의 경남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무국 모금함 뒤에는 현금 5352만여원과 손편지가 놓여 있었다. 손편지에는 “힘들게 투병생활을 하고 있는 난치병 환자와 가족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는 글이 적혀 있었다. 2017년부터 해마다 연말이나 참사 때마다 그가 기부해온 액수만 올해까지 7억4600여만원에 이른다.
앞서 지난 14일에는 충남 보령시 남포면 행정복지센터 출입문 앞에서 41만4000원이 든 저금통과 양말 60켤레, 라면 30상자가 발견됐다. “벌써 1년이 지나고 연말이 됐습니다. 이날을 기다리며 용돈을 모으니 저희들 스스로도 행복했습니다”라는 내용의 손편지도 함께 있었다. 5년 전부터 연말이면 몰래 나타나는 이들은 ‘남포 기부천사’로 불린다.
충북 괴산군 문광면사무소 직원들은 지난 3일 사무실 앞에서 현금 33만원이 담긴 흰 봉투를 발견했다. 기부자 이름이나 연락처는 없었다. 전남 함평군에서도 최근 이름을 알리지 않은 기부자들이 나타나 현금 100만원과 쌀 20포대를 맡겼다.
전북 전주시는 해마다 연말에 나타났던 ‘얼굴 없는 천사’를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그는 2000년 4월부터 지금까지 25년 동안 26차례에 걸쳐 10억4480여만원을 기부했다. 그의 뜻을 기리기 위해 전주시는 노송동주민센터 근처 도로를 ‘얼굴 없는 천사도로’로 조성하고, ‘얼굴 없는 천사비’를 세우기도 했다. 전주 노송동 일대 주민들은 얼굴 없는 천사의 뜻을 기리고 그의 선행을 본받자는 의미에서 숫자 천사(1004)를 뜻하는 10월4일을 ‘천사의 날’로 지정했다.
구세군 자선냄비에도 전국 곳곳에서 온정이 전달됐다. 지난 7~8월 경남 산청군 수해 당시 구세군의 긴급지원을 받았던 한 주민은 지난 17일 경남 진주의 구세군 자선냄비에 현금 50만원이 담긴 봉투를 전달했다. 지난 15일에는 60대로 보이는 여성이 자선냄비 봉사자를 도와준 뒤 ‘별세한 언니 유산 일부를 기부합니다’라는 쪽지와 함께 610만원을 냄비에 넣었다.
“60년 전 구세군에게 받은 도움을 잊지 않았다”며 서울 서대문구 구세군 자선냄비 본부를 찾아온 기부자는 4년 동안 모은 적금 1000만원을 기부한 뒤 이름도 남기지 않은 채 사라졌다. 대전에 있는 자선냄비에서도 한 남성이 현금 100만원이 든 봉투를 건넨 뒤 봉사자들의 부름에 대답하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자리를 떠났다. 인천의 한 지역 목회자 모임에서는 헌혈증 87장이, 서울에서도 40장의 헌혈증이 자선냄비로 기부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