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석 쿠팡아이엔씨(Inc) 이사회 의장이 2021년 3월11일(현지시각) 미국 뉴욕증권거래소 앞에서 상장을 앞두고 서 있다. 연합뉴스
쿠팡 창업자이자 쿠팡의 모회사인 쿠팡아이엔씨(Inc)의 김범석 이사회 의장이 부사장의 리더십 평가 기준 가운데 하나로 ‘공개 질책’을 직접 언급한 정황이 확인됐다. 쿠팡의 가혹한 노동환경 중 하나로 지목되는 가혹한 평가 문화가 김 의장의 철학에서 비롯됐을 수 있다는 뜻이다.
22일 쿠팡 전 시피오(CPO·개인정보보호 최고책임자) 미국인 ㄱ씨가 한국 법원에 제출한 재판기록을 보면, 김 의장으로 추정되는 인물(BOM KIM)은 2020년 3월26일 쿠팡리더십팀(CLT·시엘티, 주요 직책자로 구성된 쿠팡의 운영위원회)에 ‘승진 심사 기준’이라는 제목의 메일을 보냈다.
김 의장은 이메일 본문에 “지난 부사장(VP) 승진 논의에서 이야기했던 초안을 공유합니다. 계속 다듬어봅시다. 의견 주세요”라며 네 가지 평가 기준을 제시했다. 김 의장은 이 가운데 하나로 ‘문화 수호 및 공개 질책’(Defend Culture & Punish publicly) 능력을 꼽았다. 그러면서 김 의장은 해당 항목에 대해 “문화는 리더가 무엇을 용납하지 않는가에 의해 정의됩니다. 잘못된 사람이나 행동을 용납합니까? 올바른 리더에게 권한을 부여하고, 조직에 메시지를 강하게 전달하기 위해 잘못된 행동을 ‘공개적으로 질책’(punish publicly)합니까?”라고 썼다. 조직 내 업무 기강을 확립하기 위해 공개적으로 평가하고 질책하는 리더십을 장려한 셈이다.
김 의장이 강조한 이런 문화가 쿠팡 조직 전반으로 확산됐을 가능성도 엿보인다. 2021년 2월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아름드리홀에서 열린 ‘쿠팡 물류센터 노동실태와 노동자의 죽음’ 토론회 자료집을 보면 김 의장이 강조한 것과 유사한 형태의 ‘망신주기 사례’ 증언이 구체적으로 언급돼 있다. 당시 자료집을 보면, 한 노동자는 “내가 직접 본 것인데, 한 50대쯤 되는 아주머니가 손이 느려서 몇번을 불려 갔다. 세번째 불려 갈 때 정말 벌벌 떨더라”는 취지의 내용이 담겨 있다.
쿠팡은 김 의장이 ‘공개 질책 능력’을 리더십의 중요한 평가 항목으로 명시한 바 있는지 등을 묻는 한겨레 질의에 해명하지 않은 채, ㄱ씨가 회사의 해고 조치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일방적인 주장을 하고 있다고 전해왔다. ㄱ씨는 현재 쿠팡에 대해 부당해고 소송을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