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文·尹정부 참여 인사들 평가
질책 이상 공개적 망신주기 경계
대통령 즉흥적 발언 공신력 우려
국민적 관심에 공직 환기 기폭제
형식적 행사에서 민주주의 진전
질책 이상 공개적 망신주기 경계
대통령 즉흥적 발언 공신력 우려
국민적 관심에 공직 환기 기폭제
형식적 행사에서 민주주의 진전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9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금융위원회·공정거래위원회 업무보고를 마친 뒤 퇴장하고 있다. 업무보고는 엿새간 28시간에 걸쳐 생중계됐다. 김지훈 기자
엿새간 28시간에 걸쳐 진행된 이재명정부 생중계 부처 업무보고는 새로운 시도였던 만큼 장단점도 분명하게 드러났다. 문재인·윤석열·이명박정부에서 대통령 업무보고에 참여했던 인사들은 큰 틀의 국정 방향보다 지엽적인 부분이 더 부각된 것에 대해 아쉬움을 드러냈다. 공무원 조직의 최말단까지 국정 방향이 공유된 점 등은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전 정부 업무보고에 참석했던 인사들이 공통으로 지적한 건 ‘탈모약 건강보험 적용 검토’ ‘달러 밀반출 단속’ 등 지엽적인 정책이 화제성을 보이며 중요 정책이 상대적으로 가려졌다는 점이다. 문재인정부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한 공무원은 21일 “새해 업무보고는 대통령과 각 부처 장차관은 물론 부처 전체와 내년 국정에 대해 호흡을 맞춰보는 자리로 해당 부처를 통해 어떻게 일이 이뤄질지 점검하는 것이 목적”이라며 “이번 업무보고는 대통령 개인의 궁금증 해소가 더 부각된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다.
과거 약 한 달에 걸쳐 부처별로 나눠서 진행하던 업무보고를 유관부처끼리 묶어 빠르게 진행하다 보니 세밀한 정책 점검이 어려워 보였다고도 평가했다. 그는 “하루에 한 부처씩 업무보고를 받아도 정책을 디테일하게 확인하기 쉽지 않았는데, 2시간씩 쪼개 하루에 5~6개 부처의 업무보고를 받는 것이 가능한 일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특정 인사에 대해 공개적인 ‘망신주기’를 한 것도 바람직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윤석열정부에서 부처 차관을 지낸 인사는 “과거에도 공무원이 미처 챙기지 못한 부분에 대해선 질책이 있었으나 특정인을 상대로 싸움하다시피 공개적으로 모욕을 주는 행태는 상상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국토교통부 산하기관 업무보고에서 이학재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에게 “참 말이 기십니다” “왜 자꾸 옆으로 새느냐” 등으로 말했었다.
업무보고가 생중계되다 보니 부처 간 이견이 큰 사안에 대한 의견 개진이 어려워 보였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 여권 관계자는 “‘응급실 뺑뺑이’ 같은 이슈는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청이 첨예하게 의견이 갈릴 텐데 생중계되는 카메라 앞에서 공무원이 솔직하게 얘기할 수 있었겠느냐”고 반문했다.
정제되지 않은 이 대통령의 즉흥 발언이 여과 없이 공개돼 논란만 키웠다는 비판도 있다. 윤석열정부 대통령실에서 근무했던 인사는 “국민 보기엔 생생한 느낌은 들 수 있겠지만 대통령이 지나치게 즉흥적인 발언을 많이 쏟아내다 보니 실수가 나올 수밖에 없다”며 “대외 공신력 하락도 우려된다”고 말했다.
문재인정부에서 고위직을 맡았던 다른 인사는 이 대통령이 업무보고 시기를 대폭 앞당긴 것을 높이 샀다. 그는 “부처 공무원들은 업무보고 이후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는데, 통상 1월에서 2월까지 한 달간 연례행사로 치러졌다”며 “업무보고를 12월 안에 끝낸 것은 이 대통령의 ‘신의 한 수’였다. 새해가 시작하자마자 공무원 조직이 바쁘게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고위직 공무원 중심으로 비공개로 치러지던 업무보고를 생중계해 말단 공무원까지 대통령의 국정 철학을 공유할 수 있던 점도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국정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졌을 뿐 아니라 공직기강을 다잡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허심탄회한 난상토론이었다는 보수 진영 인사의 관전평도 있었다. 이명박정부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인사는 “우리 때도 노타이 차림의 허심탄회한 자유토론이 일상이었고, 이를 생중계로 국민에게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면서 “이 대통령의 업무보고 생중계를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다만 “지금처럼 하급자 면박주기 형태가 된다면 소통이 아닌 일방적 업무보고로 변질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강우진 경북대 정치학과 교수는 “중요 정책 과정을 국민에게 생중계로 전달하는 건 민주주의의 놀라운 진전”이라면서도 “대통령이 모든 디테일을 지적하고 정책 담당자가 반응하면서 불협화음이 노출되는 점은 아쉽다”고 진단했다. 이어 “대통령이 전체 흐름을 잡아주는 방식으로의 운영방식 변화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