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인터뷰]
"2018년 '한미 워킹그룹'의 아픈 역사 반복, 막아야"
"트럼프 손에 들려줄 대북 보따리는 통일부·국정원이 마련"
"개성공단, 금강산관광 때도 사업 추진 후 미국 수락"
"2018년 '한미 워킹그룹'의 아픈 역사 반복, 막아야"
"트럼프 손에 들려줄 대북 보따리는 통일부·국정원이 마련"
"개성공단, 금강산관광 때도 사업 추진 후 미국 수락"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이 18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에 위치한 그의 사무실에서 대북 정책 주도권을 둘러싼 정부 내부 갈등에 대한 의견을 전하고 있다. 최주연 기자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18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미국과 대북정책을 공조하는 과정에서 외교부는 '배달부' 역할에 충실하면 된다"고 말했다. "북한을 가장 많이 연구하고 분석하는 곳은 통일부"인데, "대미 종속성이 강한 외교부가 먼저 나서 미국과 대북정책을 협의하다 보니 정작 북한이 원하는 내용을 잘 아는 통일부의 의견은 정책에 반영되기 어렵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난 16일 외교부는 한미 간 대북정책 협의체를 가동했지만, 통일부는 외교부 주도의 대북정책에 반기를 들며 불참했다. 정 전 장관은 진보 정부 당시 통일부 장관 5명과 함께 "대북정책의 주무부처는 통일부"라며 한미 대북정책 협의체 가동을 비판하는 공동성명까지 냈다. 자주파 선봉장 격인 정 전 장관에게 통일부가 대북정책 주도권을 쥐어야 하는 이유를 물었다. 인터뷰는 서울 마포구의 정 전 장관 사무실에서 이뤄졌다.
"한미 워킹그룹 아픈 역사 반복 목도하기 어려웠다"
정연두 외교전략정보본부장(오른쪽)과 케빈 김 미 대사대리가 1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 조인트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 후속 협의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스1
-한미 대북정책 협의체 가동을 반대하는 성명을 낸 배경은.
"또 한번 대북정책을 미국에 옭아매려는 외교부 움직임을 두고 보기 어려웠다. 1차 북핵 위기 국면이었던 1993~1996년 청와대에서 통일비서관을 했을 당시 외교부와 일을 하다 보니, '대한민국 외교관인가, 미 국무부 한국과 직원들인가'하는 의문이 들더라. 외교관들은 미국의 말을 받아 적어와 정책을 만들려는 경향이 강했다. 20여 년 뒤인 2018년에는 외교부 주도 '한미 워킹그룹'을 만들어 대북제재로 트집 잡아 타미플루(독감백신) 지원까지 막았다. 아픈 역사다. 반복되는 것을 막아야 했다."
-한미 대북정책 협의체의 대미 종속성이 우려됐다면, 오히려 통일부가 적극 참여해 목소리를 냈어야 하지 않았을까.
"지난달 정동영 통일부 장관과 (미국 측 수석대표인) 케빈 김 주한 미국대사대리가 만났다. 이 자리에서 김 대사대리는 △비핵화 △한미훈련 실시△북한 인권 문제의 지속적 제기 등 3가지 원칙만을 강조하고 돌아갔다. 북한이 싫어하는 내용들만 일방적으로 통보하듯 말했다. 이런 사람과 외교부가 만나 대북정책을 협의한다는 데 뭘 기대하나."
"통일부가 대북 보따리 만든 뒤 한미 협의가 순서"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이 18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에 위치한 그의 사무실에서 본보와 대북 정책 주도권에 대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최주연 기자
-왜 통일부가 대북정책 중심이 돼야 하나. 외교부의 역할은.
"북한 정치, 경제, 대외관계를 매일 들여다보고 연구하는 곳이 통일부와 국정원 아닌가. '페이스 메이커'인 이재명 대통령이 '피스 메이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손에 들려줄 대북 보따리를 통일부·국정원이 마련하고, 이를 미국에 전달하는 배달부 역할만 외교부가 하란 얘기다. 한데, 이번 한미 협의체는 대북 보따리를 제대로 만들기도 전에, 대뜸 미국과의 협의부터 하겠다는 것 아닌가. 순서가 틀렸다."
-통일부가 미국을 설득한 전례는.
"2018년 3월 특사단 방미 당시 내가 (외교관 출신인) '정의용 당시 국가안보실장만 보내선 안 된다, 북한을 아는 서훈 당시 국정원장이 함께 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천해성 당시 통일차관 등도 함께 갔다. 그 자리서 트럼프가 곧장 김정은을 만나겠다고 하지 않았나."
"대미 협의 지나치면 남북 진전 어려워"
2005년 11월 18일 오후 금강산 옥류관에서 열린 '금강산 관광 7주년 공동 기념 행사'에 참가한 정동영 통일부 장관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리종혁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과 건배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이 대북제재 해제를 반대하면 결국 통일부 뜻대로 되지 않을 텐데.
"과거 개성공단 건설 때도, 금강산관광 사업 때도 미국은 허가받고 하라고 했다. 사업이 추진되자, 결국에는 수락했다. 미국과의 사전 협의에 지나치게 무게를 두면 일의 진전이 어렵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장을 통일부 장관이 맡도록 해야 한다는 자주파 측 목소리가 큰 듯하다.
"백악관에는 통일부 장관의 카운터파트가 없다. 통일부 장관이 NSC 상임위원장을 맡게 되면 NSC 상임위원장 모자를 쓴 한국 통일부와 미국 NSC 간 직통 채널이 만들어진다. 대북정책을 우리 페이스대로 끌고 가기 위해선 남북관계 전후 사정을 미국에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대미 협의를 주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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