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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상호 감독이 좋아하는 일본 곤 사토시 감독의 애니메이션 '퍼펙트 블루'. 디스테이션 제공
연상호 감독이 좋아하는 일본 곤 사토시 감독의 애니메이션 '퍼펙트 블루'. 디스테이션 제공




당신이 잘 몰랐던 연상호 감독<4>



지난 10월 26일 오후. 경기 부천시 원미구 웹툰융합센터에서 제27회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부대 행사인 ‘소소한 토크’가 열렸다. 장편애니메이션 ‘꼬마’를 만들고 있는 홍준표 감독이 연상호 감독과 애니메이션 제작 과정에 대해 여러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였다. ‘꼬마’의 제작 상황에 대한 질의응답이 주로 이어졌다.

‘꼬마’는 2023년 부천애니메이션페스티벌 장편 제작 지원작으로 선정된 작품이다. 제작사는 명필름과 스튜디오루머다. 연 감독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애니메이션이다. 연 감독은 부천애니메이션페스티벌에서 어떤 직함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 ‘소소한 토크’는 연 감독으로서는 꼭 함께하지 않아도 될 자리였다. 하지만 그는 여러 영화와 드라마 제작 준비로 바쁜 와중에도 짬을 냈다. 애니메이션이나 독립영화 관련 일이라면 어떻게든 시간을 내는 연 감독다운 모습이었다.

연 감독은 영화업계에서 소문난 애니메이션 마니아다. 그는 애니메이션 관련 이슈에 대해 종종 목소리를 낸다. 신동헌(1927~2017) 감독이 연출한 국내 첫 장편애니메이션 ‘홍길동’(1967)의 복원을 한국영상자료원에 요청했고, ‘홍길동’이 개봉 40년 만에 복원된 이후에는 블루레이 출시를 주장하기도 했다.

'아키라'는 연상호 감독이 공공연히 애정하는 작품이라고 밝힌 애니메이션 중 하나다. 미디어캐슬 제공
'아키라'는 연상호 감독이 공공연히 애정하는 작품이라고 밝힌 애니메이션 중 하나다. 미디어캐슬 제공


연 감독은 일본 애니메이션 덕후를 종종 자처하기도 한다. 그는 학창시절 일본 애니메이션 삽입곡들을 일본어로 부를 수 있었다고 한다. 연 감독은 오토모 가즈히로 감독의 ‘아키라’(1991)를 가장 좋아한다고 공공연히 말했고, 자신에게 가장 영향을 끼친 감독 중 하나로 일본 애니메이션 감독 곤 사토시(1963~2010)를 꼽기도 했다. 그는 2017년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애니메이션 감독을 꿈꾸는 내게 주변에선 월트디즈니 같은 작품이나 유아용 작품을 만들라고 했다. 세계관이 너무 어둡다고도 했다. 곤 감독이 없었다면 아마 흔들렸을 거다”라고 밝혔다.

곤 감독은 ‘퍼펙트 블루’(1997)와 ‘천년여우’(2001), ‘파프리카’(2006) 등을 연출했다. 현실과 비현실이 뒤섞이고, 기억과 환상, 꿈을 넘나드는 이야기 전개가 곤 감독의 특징이었다. 어두운 세계관을 드러낸 연 감독의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2011)과 ‘사이비’(2013), ‘서울역’(2016) 등에서 곤 감독의 영향을 감지할 수 있다.

연 감독은 중학생 시절 만화에 빠져살기도 했다. 공부는 뒷전이었고, 만화방에서 살다시피했다. 주로 일본 만화가 소년 연상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연 감독이 고교 진학 무렵 애니메이션 감독이 되고 싶다며 미술로 진로를 잡았을 때 부모는 반가워했다고 한다. 아들이 만화에 빠져 삶의 방향을 잃었다고 걱정했는데 뭔가를 해보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 대중문화 덕후 또는 마니아라고 부를 만한 연 감독에게 영화에 대한 인식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것들은 따로 있었다. 연 감독의 영화 이력과는 언뜻 무관해 보이는 것들이다. 무엇이길래 연 감독의 영화 인생에 큰 영향을 줬을까.

대학 입학 후 접한 것들

연상호 감독은 미국 영화 '칼리포니아'를 보고선 실사영화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연상호 감독은 미국 영화 '칼리포니아'를 보고선 실사영화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연 감독은 1996년 상명대 회화과에 입학했다. 어느날 무심코 빌려온 비디오가 청년 연상호의 마음을 흔들었다. 데이빗 듀코브니와 브래드 피트, 줄리엣 루이스 등이 나온 영화 ‘칼리포니아’(1993)였다. 영화는 수작이라 할 수 없었으나 분위기가 묘했다. 세계적 스타로 막 떠오른 피트가 연쇄살인마 역할을 하는 영화였다. 연 감독이 그동안 봤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는 달랐다. 실사영화에 대한 호기심과 흥미가 생겨났다. 연 감독은 “나도 영화를 해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1990년대 중반은 한국 영화에 변혁의 바람이 불던 시기였다. 1995년 4월 영화주간지 씨네21이 창간됐고, 같은 해 5월 영화월간지 키노가 첫 선을 보였다. 대학 신입생 연 감독은 ‘칼리포니아’가 자극한 호기심을 계속 이어가고 싶었다. 키노를 애독하며 영화에 대한 생각을 달리 하게 됐다.

연상호 감독은 영화 월간지 키노가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고 말한다.
연상호 감독은 영화 월간지 키노가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고 말한다.


키노는 이전 국내 영화잡지와는 결이 많이 달랐다. 스타 위주 흥미거리를 주로 기사 소재로 삼았던 기존 영화잡지와 달리 진지한 영화평론지를 표방했다. 1990년대 초반 대거 등장한 시네필들을 겨냥한 잡지였다. 키노의 초대 편집장은 영화평론가 정성일이었다(‘기생충’ 제작자 곽신애 대표가 키노 창간 후 2년 넘게 기자로 일하기도 했다). 키노는 평론으로 유명한 영국 영화월간지 사이트앤사운드, 프랑스 영화잡지 포지티브와 제휴를 맺었다. 세계 최신 영화에 대한 다양한 분석이 담긴 기사들이 적지 않게 소개될 수 있었다.

연 감독은 애니메이션에 있어서는 누구보다 더 많이 안다고 자부했으나 실사영화에 대해선 “무식쟁이”였다. 키노는 연 감독을 실사영화라는 신세계로 안내했다. 키노에 거론된 영화를 보는 날들이 이어졌다. 연 감독은 키노를 보며 홍콩 감독 왕자웨이(王家衛)와 미국 감독 쿠엔틴 타란티노를 알게 됐다. 연 감독은 “가장 큰 영향을 줬던 영화인을 한 명만 꼽으라고 하면 굉장히 힘들다”면서도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키노였다”라고 말한다.

변함없는 애니메이션 마니아

홍상수 감독의 장편 데뷔작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은 연상호 감독의 영화에 대한 인식을 바꿔놓았다.
홍상수 감독의 장편 데뷔작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은 연상호 감독의 영화에 대한 인식을 바꿔놓았다.


스물 문턱에 선 연 감독에게 키노 이외에도 영화에 대한 인식을 뒤흔드는 일이 1996년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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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121823190000357

목차별로 읽어보세요

  1. ① 당신이 잘 몰랐던 박찬욱 감독
    1. • 초보 감독 박찬욱에게 주연 배우가 던진 질문 "영화 줄거리가 뭐죠?"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91502520001939)
    2. • “내가 추천한 영화 재미없다고 발길 뚝” 비디오점 운영 실패에 유학 고민 ‘박찬욱의 시련’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92512130001927)
    3. • ‘JSA’ 대신 ‘아나키스트’ 메가폰 잡았다면… 박찬욱 운명 가른 일주일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93012450005344)
    4. • 단편영화 한 편이 '히치콕 숭배자' 박찬욱의 영화인생을 바꿨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101311000000538)
    5. • “트랜스젠더 영화 만든 그 친구 없었다면”… 박찬욱을 흔든 한국 감독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111300590001796)
    6. • 한국 영화 최초 205개국 수출… '기생충' 기록 깬 '월드클래스' 박찬욱의 존재감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112001090004144)
  2. ② 당신이 잘 몰랐던 연상호 감독
    1. • “첫 장편 애니로 오스카 가겠다”… 무명 신인 감독 연상호의 패기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112715050001783)
    2. • 야외 상영 '19금 애니'에 뛰쳐나간 관객...연상호 이름 알린 첫 작품 '지옥'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120416540003544)
    3. • “나 안 해!” 잠수 탄 연상호 감독… 처음엔 만들 생각 없었던 ‘부산행’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1211005400036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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