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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넷플릭스 영화 '제이 켈리'

편집자주

주말에 즐겨볼 만한(樂)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신작에 대한 기자들의 방담. 영화 '제이 켈리'. 넷플릭스 제공
영화 '제이 켈리'. 넷플릭스 제공


“자기 자신이 된다는 것은 엄청난 책임이다. 차라리 다른 사람이 되거나 아무도 아닌 것이 훨씬 더 쉽다.”

미국 작가 실비아 플라스가 남긴 글귀로 시작하는 넷플릭스 영화 ‘제이 켈리’(5일 공개)는 다른 사람의 삶을 연기하며 살아온 할리우드 톱스타가 자기 자신과 마주하는 과정을 그린다. 1994년 TV 시리즈 ‘ER’로 스타덤에 오른 뒤 30년간 할리우드 톱스타 자리를 지켜 온 조지 클루니가 주인공 제이 켈리를 연기했다. 연출은 ‘프란시스 하’ ‘결혼이야기’로 유명한 노아 바움백이 맡았다. 넷플릭스와 독점 계약을 맺은 뒤 내놓은 네 번째 영화다.

지난 9월 베니스영화제 경쟁부문에도 초청됐던 이 작품은 켈리가 현재 제작 중인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촬영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차기작 촬영 전까지 잠시 휴식을 즐기던 그는 오랫동안 가깝게 지내던 멘토의 죽음, 옛 친구와의 불편한 조우 등을 계기로 충동적인 유럽 여행을 떠난다. 둘째 딸의 뒤를 쫓아 프랑스로 갔다가, 한번 거절했던 공로상을 받겠다는 변덕으로 이탈리아로 이동하는 여정에서 켈리는 현재와 과거를 직시하며 조금씩 심리적 변화를 겪는다. ‘제이 켈리’는 2시간 12분을 투자해 볼 만한 영화일까. 본보 문화부 기자 3인이 힌트를 전한다.

영화 '제이 켈리'. 넷플릭스 제공
영화 '제이 켈리'. 넷플릭스 제공


고경석 기자(고)
: 노아 바움백 감독은 결정적 ‘한 방’은 없지만 수작을 여러 편 만든 감독인데 ‘제이 켈리’는 그다지 마음에 드는 작품은 아니었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인물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이야기는 흔한데 이 영화만의 특별한 무언가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추천작’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운 영화, 별점을 준다면 5개 만점에 3개(★★★) 정도다.

강유빈 기자(강)
: 나는 3.5개(★★★☆)을 주겠다. 플롯 자체가 특별하지 않지만 연기와 만듦새가 좋은 영화였다. 바움백 감독 이름보다 조지 클루니를 믿고 보기를 추천한다. 감독의 전작과 같은 사회 비판적 시각과 풍자는 옅어졌지만 그보다 조금 따뜻한 시각의 조지 클루니 헌정 영화라 할 만한 것 같다.

이훈성 기자(이):
나도 3개(★★★). ‘강추’는 아니고 약간 추천하는 정도다. 동서고금의 보편적 소재이고 그걸 풀어내는 형식도 그리 새롭지는 않다. 이야기 구조도 단순하다. 그럼에도 속도감 있게 변주하는 이야기 형식이나 주·조연 배우들의 호연 덕분에 지루하지는 않은 웰메이드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제이 켈리'. 넷플릭스 제공
영화 '제이 켈리'. 넷플릭스 제공


고:
짧게 한 줄로 정리해 보자. 이를테면, ‘할리우드 스타판 크리스마스 캐럴’.

이:
‘대배우, 컷을 외칠 수 없는 인생과 마주하다’.

강:
영화 도입부 실비아 플라스의 문장이 영화 전체를 관통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기 자신이 된다는 건 엄청난 책임이다’. 송구영신 시기에 잘 맞을 듯하다.

고:
어릴 적 크리스마스 때 봤던 찰스 디킨스 원작의 ‘크리스마스 캐럴’, 구두쇠 영감 스크루지가 과거를 되돌아보며 개과천선한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관점에 따라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8과 1/2’이나 잉마르 베리만 감독의 ‘산딸기’를 언급하거나, 마지막 장면을 보며 ‘시네마 천국’ 엔딩 시퀀스를 떠올리는 관객도 많을 듯하다.

강:
보면서 영화 '라라랜드'가 떠올랐다. 할리우드, 영화 산업을 배경으로 업계 종사자가 등장한다는 점도 그렇지만 롱테이크 신,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전환 장면을 잘 쓴 점이 특히 닮았다. 켈리가 전용기와 기차 안에서 과거 인생의 한 장면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모습이 끊김 없어 이어질 때 영화에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들어 좋았다. 찾아보니 두 영화의 촬영 감독(리누스 산드그렌)이 같아서 신기했다.

영화 '제이 켈리'. 넷플릭스 제공
영화 '제이 켈리'. 넷플릭스 제공


이:
스타와 매니저를 투톱으로 세운 설정이 한국영화 ‘라디오 스타’를 떠올리게 했다. ‘라디오 스타’는 한물갔다가 재기하는 스타를 다루고 매니저의 비중이 좀 더 높다는 차이가 있긴 하지만.

강:
제이 켈리 역에 조지 클루니를 기용한 건 찰떡같은 캐스팅이었다. 영화 속 연기도 물론 훌륭했지만, 그가 배우로서 긴 시간 쌓아온 필모그래피와 대중의 사랑이 켈리라는 캐릭터에 대본 이상의 서사를 부여한 것 같다. 별다른 설명 없이 클루니 얼굴을 보자마자 켈리를 이해하고 그에게 몰입할 수 있었으니까. 영화를 보는 내내 클루니가 자기 얘기를 하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이:
실제로도 높은 성취를 거둔 배우가 배역을 맡으면서 자연스럽게 몰입감이 형성되고 영화의 ‘리얼리티’를 살리는 효과도 냈다. 클루니가 10년 전 골든글로브에서 평생공로상을 수상했다는 점을 기억한다면 더욱더. 여전한 현역인 클루니가 연기하니까 멜랑콜리로만 흐르지 않고 희망적인 전망을 열어주는 느낌이었다.

영화 '제이 켈리'. 넷플릭스 제공
영화 '제이 켈리'. 넷플릭스 제공


고:
이 영화에 딱 맞는 배역인지는 모르겠다. 클루니는 켈리 역을 맡기에 너무 ‘스위트’하고 ‘젠틀’한 스타로 보여서 캐릭터를 가리는 듯했다. 극중 켈리는 성공을 위해 주위 사람들을 이용하거나 희생시키며 살아온, 조금 못된 면이 있는 인물이다. 그런 면을 클루니의 매력적인 카리스마가 덮어버렸다. 현실과 과거, 상상이 혼재하는 구성은 어땠나. 너무 길고 늘어지는 데다 반복적이어서 켈리의 삶을 입체적으로 보여주지 못한 듯하다.

강:
켈리의 복잡 미묘한 감정을 전달해야 하는 순간에 너무 클로즈업으로 때우는 느낌도 들었다.

이:
회한이라는 감정이 뭔가를 얻느라 소홀히 하고 놓친 것에 대한 한탄과 후회이니, 지금의 성취를 설명하는 '현실'과 '과거', 놓치고 만 것을 보여주는 '상상'이 이 영화의 필수요소가 될 수밖에 없다. 다만 켈리가 자기 성취에 대해 어떤 감정을 품고 있는지를 좀 더 밀도 있게 보여줬으면 어땠을까. 친구의 대사를 훔쳐 오디션을 통과했다는 데뷔 당시의 콤플렉스와 공로상을 받을 만한 대배우가 됐다는 현재의 자부심 사이에 간극이 있다 보니 회한의 구도가 연예계-가족으로 단편화한 측면이 있다. 예술가로서의 회한도 함께 묘사됐다면 주인공 내면이 입체감 있게 살아났을 텐데.

영화 '제이 켈리'. 넷플릭스 제공
영화 '제이 켈리'. 넷플릭스 제공


고:
전체적으로 이 영화가 하는 이야기가 하나도 새롭게 들리지 않다는 점이 아쉬웠다. 성공한 연예인이 나이 들고 보니 가정에 소홀했던 점이 후회된다는 이야기는 실제 인터뷰에서도 자주 듣는다. 성공한 배우가 가정생활과 교우관계까지 완벽하면, 조금 비굴한 이야기지만, 너무 불공평한 것 아닌가.

이:
시대의 속도감이 커질수록 성찰과 응시의 필요성이 커진다. 영화에서 켈리의 현재는 빡빡한 출연 스케줄에 쫓기고, 품을 떠나려는 딸의 뒤를 맹렬히 쫓는 소동극에 가깝다. 그와 대비되는 장면이 공로상 시상식장이다. 그와 관객들이 켈리가 출연한 작품을 격언 같은 명대사와 함께 음미하며 회고하는 장면. 대조적인 두 장면에서 뚜렷한 속도 차이를 느낀 관객이라면 영화의 교훈도 마음에 와 닿을 거라고 생각한다.

영화 '제이 켈리'. 넷플릭스 제공
영화 '제이 켈리'. 넷플릭스 제공


강:
‘완벽하게 잘 살아온 것 같아’라고 자부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다들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순간이 있고, 그때 더 현명한 선택을 하지 못한 데 대한 후회를 생각하며 살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공감을 얻는 듯하다. 많은 사람에게 둘러싸여 풍족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 같은 유명인도 똑같은 인간이라는 사실이 위로를 주기도 한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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