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장덕준씨 과로사 관련, ‘영상 검수시 체크리스트’도 공유
17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 열린 쿠팡 침해사고 관련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한 해롤드 로저스 쿠팡 대표이사가 의원들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왼쪽부터 조용우 쿠팡 국회·정부 담당 부사장, 로저스 대표. 민병기 쿠팡 대외협력 총괄 부사장, 김명규 쿠팡이츠서비스 대표. 연합뉴스
쿠팡은 2020년 10월12일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 장덕준씨가 심근경색으로 숨진 이후 김범석 쿠팡아이엔씨(Inc) 의장을 정점으로 총력 대응을 했던 것으로 확인된다. 국회 국정감사를 앞두고 자신들에 대한 과로사 책임 의혹이 불거질 것을 우려해, 장씨가 물류센터에서 일한 6일치 영상을 초 단위로 분석하며 ‘고강도 노동 실태’를 축소하려 한 것이다.
17일 한겨레가 확보한 자료를 보면, 쿠팡은 2020년 10월26일 국회 국정감사에 엄성환 쿠팡풀필먼트서비스(CFS) 전무가 증인으로 출석할 것에 대비해 장씨가 근무했던 대구 칠곡물류센터 폐회로텔레비전(CCTV) 관련 장비를 사흘 전인 10월23일 서울 잠실 쿠팡 본사로 이송했다.
당시 시피오(CPO·개인정보보호 최고책임자)였던 ㄱ씨는 박대준 당시 쿠팡 대관업무 총괄 책임자에게 “시스템에서 영상을 추출하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오늘(23일) 밤 대구에서 잠실로 영상 장비를 이송할 예정이고 새벽 3시쯤 도착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에 박 총괄은 “범(Bom·김범석 의장)이 내일 오후에 분석 결과를 보고 싶어 한다”고 답했다.
같은 날 ㄱ씨는 쿠팡의 보안·인사·법무·홍보·대관 등 부서를 대상으로 ‘영상 검수 시 주요 체크리스트’를 작성해 전자우편으로 공유했다. 여기엔 장씨 사망과 관련해 언론에서 제기된 쟁점을 분석하고, 이를 반박할 내용을 영상을 통해 확인하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언론 주장 포인트’로 △취약 부분에 투입돼 쉴 틈도 없이 여러 업무를 담당했다 △밤샘 근무에 만보계에 5만보가 찍혔다 △팔레트(팰릿)만 끌어도 땀이 비 오듯 흐르는데 몇시간 동안 계속했다 등이 언급됐고, 이에 대응한 ‘영상 검수 시 주요 체크리스트’로는 △카메라 첫 등장 시점 △휴식시간-물을 마시거나 화장실, 간식, 흡연, 담소 순간 등 △동료와 대화 △휴대전화 확인 등 18개 항목이 제시됐다. 전자우편 수신 참조자에는 당시 인사 업무를 총괄했던 해롤드 로저스 현 쿠팡 한국 법인 대표이사도 포함돼 있다.
이에 따라 직원들은 장씨가 숨지기 직전 근무한 6일 동안의 폐회로텔레비전 8대의 영상을 초 단위로 분석했다. 근무시간에 화장실을 이용했다거나, 음료수를 마신 시간 등이 구체적으로 적혔다. 하지만 분석 결과를 확인한 김 의장은 “그(장덕준씨)가 열심히 일했다는 내용의 메모는 절대 남기지 말라”며 분석을 다시 하라고 지시했다. 분석 항목은 8개로 좁혀졌다. 한겨레가 확보한 자료 가운데는 김 의장이 ㄱ씨에게 시그널 메신저를 통해 지시한 분석 항목을 바탕으로 장씨의 근무 현황을 정리한 엑셀 파일도 존재한다. 결국 장씨의 고강도 노동 실태를 감추려는 작업이 김 의장을 정점으로 조직적으로 이뤄진 셈이다.
장씨의 어머니 박미숙씨는 한겨레에 “아들이 죽고 4년은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았다. 쿠팡이 아들의 죽음을 이렇게 대해온 이유가 김 의장의 말 한마디 때문이었다는 것에 너무 화가 치민다. 이런 기업이 대한민국에 존재해야 하나”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쿠팡 쪽은 “5년 전 해임된 전 임원이 당사에 불만을 가지고 왜곡된 주장을 일방적으로 하고 있는 것”이라며 “관련 법정 소송에서 1심과 2심 모두 당사가 승소한 바 있다”고 밝혔다. 현재 ㄱ씨는 쿠팡에 대해 부당해고 소송을 진행 중이다.